위대한 유산 <최병성 목사, 평화운동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인천시 부평동입니다. 나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지만, 시골 사람 못지않게 자연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의 가난 덕분이었습니다.
아버지 이름으로 땅 한 평 없는 가난 때문에 저희 집은 주택가 가장자리의 아카시아 나무들을 베어내고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번듯한 집과 담이 없는 덕분에 집 앞에 펼쳐진 산등성이가 모두 우리 집 마당이요, 꽃밭이었습니다. 특히 꽃을 좋아했던 부모님 덕에 개나리와 진달래로 널찍한 울타리 삼은 저희 집엔 크고 작은 다양한 나무들이 가득했고, 언제나 꽃이 만발했습니다.
어릴 적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였습니다. 약 300 미터에 이르는 개나리가 울타리를 이룬 정원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집 뒷산은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통장에 넣어둔 돈은 내 돈이 아니고 내가 쓴 돈만이 내 돈’이라는 옛말처럼 저는 아버지의 가난을 통해 ‘부’란 ‘소유’가 아니라 ‘누림’이란 사실을 배웠습니다.
특히 집에서 20여 분 정도 산을 오르면 공동묘지가 끝없이 펼쳐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면 산에 올라 무덤 사이를 거닐며 산의 나무와 들꽃들과 친구가 되어 놀았습니다. 그곳에는 무덤 크기만 다를 뿐, 부자나 가난한 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누워 있었습니다. 특히 아주 작은 묘 앞에 있던 ‘못다 핀 꽃 보연의 묘’라는 묘비명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는 순서는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죽음은 어린 소녀도 불러 갔습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죽음이란 단어와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죽음은 내게 여기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언젠가 전부 다 놓고 갈 것에 불과한데, 마치 영영세세 소유할 것처럼 욕심 부릴 필요가 없음을 몸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환경운동가라고 부릅니다. 내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님이 물려 주신 가난이라는 위대한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가난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축복이었습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 눈과 죽음과의 친숙함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부자였습니다.
월든 호숫가에 살던 소로우는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화창한 날이라든가 여름날을 아낌없이 썼을 때, 정말 부자였으며, 고독과 가난 자체만으로도 풍성한 삶을 살았다’며 ‘삶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소로우는 삶을 깊게 살기 위해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리는 용기를 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는 법을 상실하고 대체재로서 소비와 소유에서 만족을 찾고자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이 내 곁에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알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엄청난 부자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돈 버는 법을 배우고 시간을 투자하듯,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놀라운 행복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난 정말 얼마나 제대로 향유하고 있는 지 돌아봅니다
맞아요.
내 소유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극복하고나면 자연과 사람과
자연속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함께 공유하고 향유한다면 그게 부자지요.
정말 소루우의 고백처럼 내삶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고 했다는
그 범주안에 이런 정신이 발휘되고 있음...
요즘 저도 조금씩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