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가 아닌 영물이기 때문입니다. 신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사도 사람과 같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두 종류의 존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는 영적 존재이고 또 하나는 사람입니다. 영적 존재를 우리는 ‘영’ 또는 ‘천사’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입니다. 육체를 가지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습니다. 육체가 없는 영체는 그런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가장 뚜렷하고 두려운 차이는 ‘죽음’입니다. 사람은 생명에 제한이 있습니다. 곧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죽지 않는 천사가 죽을 운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영화 ‘시티 오브 엔젤’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스’는 천사입니다. 그런데 사람인 ‘메기’를 사랑합니다. 메기가 전혀 다른 존재임을 알고는 세스에게서 도망칩니다. 세스는 원하던 대로 사람으로 변하여 다시 나타납니다.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그러려니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야기에서도 그런 준재가 등장합니다. ‘스프라이트’가 그 역을 맡았습니다. 왜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요? 죽을 수 있는 제한적 존재가 될 것을 알면서도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스와 마찬가지로 스프라이트도 사람처럼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랑, 참으로 묘하다 싶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적할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언어도단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짓을 합니다. 사람 또한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 류의 사람을 역사 속에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신을 자처 해봐도 결국 시간이 되면 한계가 드러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천사가 그런 야망을 품는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죽지 않는 영물이니까요. 사실 성경은 한 천사의 그 터무니없는 야망으로 빚어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단, 마귀’라는 존재가 그래서 등장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찌 보면 이 거대한 영화 이야기가 성경을 꿔다가 사람의 상상을 버무려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신의 노리개인가? 창조주이면서 절대적이고 전능하기에 인간을 창조하였고 그 인간의 삶을 주관합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은 뭔가? 그 창조주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존재란 말인가? 신앙생활 하면서 오랜 동안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처음과 끝을 규명하지 못합니다. 소위 신의 소관입니다. ‘인명재천’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우리 뜻과는 무관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생명이 있는 동안만 책임지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창조하셨지만 당신 마음대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는 않으십니다. 그건 ‘인생’이 아니지요. 말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차라리 ‘신생’이라 할 것입니다.
만약 창조주라고 피조물을 당신 마음대로 주장한다면 세상에 마귀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에게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소위 ‘자유의지’를 허용하셨습니다. 결국 그 영의 세계에서 한 무리가 피조물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자기 야망을 펼치다가 창조주로부터 벌을 받아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요. 아무튼 여기서 ‘셀레스티얼’은 우주를 나타내는가, 신을 나타내는가? ‘아리솀’은 어떤 존재임에는 틀림없는데 절대적 존재인 신은 아닌 듯한데 신적 존재로 느껴집니다. 아리솀이 셀레스티얼을 지배하는 존재인가요? 그의 명을 받아 열 명의 히어로인 ‘이터널스’가 지구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열 명이 한 팀이 되었으니 당연히 리더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리더를 잘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또 리더라고 꼭 올바르게 이끄는 것도 아니니 때로는 서로의 의견을 묻고 규합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 사이에 사랑과 갈등이 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여건들을 조정하며 힘을 모아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지시자인 아리솀의 명령이 처음과 달라진다면 그래서 이행하던 목표와 달라진다면 어찌 해야 합니까? 어쩌면 지시자와 수행자의 목적 성취의 개념이라든지 범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수행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어찌 보면 지시자의 또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결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찌 해야지요?
그런데 참으로 난해합니다. 물론 이런 ‘마블’ 이야기를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고 보고 연구한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거의 관심이 없다가 좋아하는 배우도 나오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하여 신기함을 체험하고자 아이맥스로 관람하였습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이 어렵지 않게 지나가기는 하였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매우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 개인의 탓입니다. 영화가 끝나면서 뒷이야기가 있으리라는 예고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배우는 죽음으로 끝났으니 다음에는 보기 힘들겠습니다. 그러니 후편이 나와도 저와는 멀어질 공산이 크겠지요. 영화 ‘이터널스’(The Eternals)를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