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에 평화가 눅 4장 17-18절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성탄의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탄축하예배로 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독교의 제일 큰 축제 중의 하루입니다. 한사람의 탄생이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원 전을 BC(Before Christ) 예수님 이전, 기원후를 AD(Anno Domini) 주님의 해로 나누는 것도 예수님 전후를 말하는 것이고 유대교 안에 갇힌 하나님을 해방시킨 그래서 모든 생명을 위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는 종교의 역사에도 코페르니쿠스 혁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축제를 벌이는 이유도 단순히 웃고 즐기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 의미와 기쁨을 나누자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하신 첫 설교 본문입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은 스스로 사람되는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케 하시고 깨달게 하시고 보게하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시고 열어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자가 사람되는 길은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닙니다. 소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은 또다른 물질에 노예가 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들고 더 탐욕에 노예가 되고 그 사람이 부자가 될 때 또다른 가난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초대교회의 고백처럼 저희안에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없었더라,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배고픔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어느 시인이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병이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병이 들어도 우리는 함께 돕고 사랑하면서 애정하면서 충분히 병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삶과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가 사람되는 길은 이런 복음을 무장하는 일입니다.
눈 먼자가 사람되는 길은 눈먼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영적으로 눈먼자가 사람이 되는 것은 진정 그가 다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눈 먼자가 어두워 보지 못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국가를 망가뜨리고 가난한 자들을 짓밟을 때 스스로 하는 짓에 대해 눈뜨고 스스로 하는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게 될 때 그는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전 저희 교회에서 사역을 하셨던 홍승표 목사님으로부터 유튜브 동영상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보니까 따님이 고등학생인데 그 따님이 영화동아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 동아리에서 만든 16분짜리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 뭐가 등장하냐면 언젠가 홍승표 목사님 아내 목사님이신 배윤숙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신 적이 있는데 제가 그날 그 목사님께 산세베리아 화분을 하나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화분이 등장해요. 그것도 주인공이예요. 제목이 <화분소녀>입니다. 늘 친구로부터 소외되어 혼자 지내던 아이가 그 외로움을 달랠길 없어 화분 하나를 들고 다니는데 좋은 친구가 생기면서 비로소 그 화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더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 따님이 그 영화기획의 모티브를 엄마에게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집에서 화분가꾸는 일은 늘 아빠의 몫이었답니다. 엄마는 화분가꾸는 일에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더라는 거죠. 그런데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엄마가 무척이나 우울하고 힘들어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화분을 어디서 하나 받아오더니 밤낮으로 돌봐주면서 화분을 가꾸시더라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엄마가 엄마잃은 슬픔을 화분가꾸는 일을 통해 회복해 가시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 화분하나가 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화분하나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유지하고 회복해가는데 정말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걸 모티브로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엄마를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빵이 아닙니다. 다시 보는게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랑과 위로가 자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사람이 저마다 자기다움(사람다움)의 길을 회복하는 구원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배부름이 구원이고 삶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영혼의 부유로움이 구원이고 갇혀서 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 스스로가 갇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열리는 것이 구원이요. 듣지 못하는 자는 드디어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듣게 될 때가 진정한 구원의 때이고 없는 자에게는 채움이, 배부른 자에게는 비움이, 교만한 권력자들에게는 두려움이 구원입니다.
이 땅에 저마다 자기다운 사람의 길을 선포하는 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로 모두에게 저마다의 구원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참사와 재난과 상실로 여전히 슬픔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진정한 위로와 연대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쫒겨나고 해고되고 출교당한 이들에게는 회복과 복직과 복원이 속히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여전히 미움과 증오가 있는 관계안에는 용서와 화해의 문이 열리길 소망합니다. 여전히 추위와 배고픔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배부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내몰리고 짓밟힌 현장에는 사죄와 보상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개발과 파괴로 신음하는 곳곳에는 멈춤과 회복의 시간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경쟁과 속도로 삶이 피폐해진 일상에는 느림과 공존의 삶의 철학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성탄의 평화가 온땅 온누리에 특별히 전쟁과 고통과 추위와 상실과 쫒겨남과 내몰림, 고난과 아픔속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함께 누리는 진정한 평화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탄생의 기쁨을 가슴에 안고 우리 모두의 삶이 이를 위한 아름다운 연대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