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개와 고양이가 몇마리 있다. 산에 집을 지을 때부터 멧돼지에게 놀란터라 큰 개를 두 마리 두고 있고, 고양이는 한두 마리 얻어들인 것이 때로는 다섯 마리도 되고 또 어떤 때는 일곱 마리로 늘어나기도 해 집 안팎이 온통 그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해마다 여름철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소참진드기가 나타난다. 유월쯤 개집 주변에 날려와서는 7월부터는 거의 본격적으로 깜희와 토리의 몸에 붙어 피를 빨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침저녁으로 진드기잡는게 일상이 되어버린다. 수십 마리가 보통이고 때론 훨씬 많은 놈들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진드기를 잡아내고, 개집과 주변으로 기피제라든지 크레졸과 살충제를 뿌려도 감당이 안된다. 주변이 온통 풀밭이니 녀석들 식생하기가 좋아 밤낮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고생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어린이집 교사로 있으면서 길냥이 보호를 수십 년째 하고있는 제자 K가 집에 들렀다. 그니는 동물들의 구충이라든지 생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끝에 진드기에 대해 하소연을 하자, 요즘 해충들은 개체수도 많을 뿐더러 내성이 강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제가 어렵다면서 다음에 잘듣는 약품을 가져오겠노라 했다.
며칠후 K는 그 바쁜 시간을 내어 몇가지 악품을 가져왔다. 불과 10ml 정도의 캡슐약을 목덜미 주변 피부에 싹싹 발라주라는 거였다. 두 마리에게 나눠 잘 문질러 발라줬다. 다음날 보니 과연 진드기들이 한 마리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없을뿐더러 개집 주변에도 진드기들이 보이질 않는다. 여름철만 되면 깜희와 토리는 살이 빠진다. 올해도 목줄이 헐거울 정도로 말랐다. 게다가 눈꼽까지 끼어 더위와 진드기 탓에 여름나기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진드기의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사료 잘 먹고 기력을 회복해야지. 친구집에 가서 살 발라낸 뼈다귀라도 좀 얻어다 먹여야겠다.
진드기를 구제한 일을 제자에게 소상히 알리니, K도 그것 보라며 이제 한 달은 걱정 안해도 될거라며 얼마 뒤에 또 약품을 가져오겠노라 한다. 나는 그럴 필요없이 약품 이름만 알려주면 내가 구입하겠다고 했으나 물량이 남은게 있으니 굳이 가져다 주겠다 한다. 나는 고맙다는 어정쩡한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K는 어린이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틈만 나면 자연과 함께 해주려고 애쓰는, 그 분야에서는 잘 알려진 선생이었다. 그러면서 길냥이 보살피는 일도 수십 년째 하고 있는 동물애호가이기도 했다. 들리는 말로는 길냥이들 사료는 물론 약값으로 만만찮은 비용을 들인다는,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인 것이다. 물론 길냥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도 상반된 견해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길냥이를 보살피는 일은 보통의 난제가 아닐 것이다.
만날 때마다 K에게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보곤 한다. 본인이야 취미로 한다고 둘러대나 그건 취미의 문제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일이다. 우리집 고양이 개체수가 많아 걱정을 늘어 놓았더니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선생님. 쟤들은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챙기잖아요. 먹고나면 어디서든 누워 편안히 하품하고. 그래서 제가 배웁니다. 먹이 외는 가지려하지 않는, 욕심을 내려놓는 걸 쟤들한테서 배웠습니다.
무척이나 더운 올 여름에 제자는 아니 고양이에게서 삶을 터득한 제자로부터 나는 소중한 걸 배웠다. 그러면서 제자는 선생님한테서 배운 것도 평생 간직하고 있으니 섭섭해 마시라 위로한다. 그건 짐작컨대 내 젊은 시절 좋다고 생각되는 남의 말을 빌려와 들려준 것일 터, 나는 기억조차 못하는 생명과 평화 따위에 대해 K가 지금 실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댓글 개와 고양이 기르느라 고생하십니다. 진드기 방제를 받은 동물들이 얼마나 시원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자의 정성도 고맙습니다. 좋은일 귀한일하는 제자를 두어 보람이 크겠습니다.
길냥이에게 사료를 주니 동네가 시끄럽다고 반대하는 가정을 찾아다니며 김치도 담가주고 장아찌도 갖다주는 등 애를 많이 쓰는 친구이더군요. 그래서 몇몇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한다는군요
요사이는 동물학대란 의미도 모릅니다. 사람도 마음에 안들면 마구 취급하는 사회라서 제자가 하는 일이 더욱 귀하게만 여겨집니다.
그 약품 이름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주위에도 고양이가 많은데, 쥐가 없어서 참 좋습니다.
그것말고도 좋은 철학 하나 배웠네요. 고양이만도 못한 것(인간?) 같습니다.
산에 살면서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지요. 쥐뿐 아니라 두더쥐, 뱀 등도 잘 잡아 농사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여름 무더위 만큼이나 치열한 섬백이의 치열한 삶을 소상하게 엿봅니다
곁을 지켜주는 생명들과 찾아와 주는 제자가 있어 어울렁 더울렁 행복하시리라 여겨집니다
평소 무심히 대했던 반려동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노리개 정도로 알고 있던 고양이는 참 조용하고도 끈기있는 동물입니다. 게다가 애교많고 고고해서 사람과 밀당하기 좋지요. 눈치도 빨라 어떤 녀석은 앉아 일어서를 금방 배웁니다.
그런 녀석들이 욕심이 없으니 참 곁에 있는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지요. 늘 비움을 배울 수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 아파트에도 길냥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오는 것을 봤습니다.
의아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먹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챙기지 않는다"는 말씀에
깨닫는 바가 컸습니다.
정말 깔끔하고 제 몸 잘 간수하는 동물이 고양이지요. 비록 길에는 개체수가 넘쳐나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만 적절히 중성화만 시키면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생태계 자체를 우리가 종종 잊고 있어 마냥 귀찮은 존재로 보고 말지요.
많은 사유를 동반한 수필이네요.인생은 배움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스승이지만 제자에게 배우고 제자는 또 동물에게 배웁니다.장자 제물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 만물은 동등합니다.배움으로 촘촘하게 엮여진 우주. 어찌보면 만물을 지속하게 하고 생동하게 하는 근원에너지는 배움일지도 모릅니다.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하면서 정말 마음 깊이 그런 환대를 했는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습니다. 그리고 다른 물건처럼 소모품 정도로 처리하지요. 그렇게 여기지 않는 사람도 쉽게 동참을 하고요. 왜 그럴까요. 제물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감추면서까지 동물을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