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반 쯤 제영법사, 운경행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서는데, 아직 해가 환합니다. 길에 있는 노점상들은 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점이 보살님의 식당(삼각산)을 지나는데, 보살님이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손짓을 하며 부릅니다. 그리고 가게에서 팔던 수박화채를 한 컵씩 주면서 먹고 가라고 합니다. 아직 장사 하시는 중인데 우리가 먹으면 되느냐고 사양하니, 보살님은 한사코 장사는 이제 다 했다고 하면서 손에 화채를 들려 주십니다. 우리 세 명은 수박화채를 맛있게 먹으면서 보살님의 후한 마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칼국수로 유명한 삼각산 식당 조점이 보살님은 수요일이면 늘 독거노인들을 위해 요구르트를 보시해주십니다. 7, 8년 전에 내가 불교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독실한 불자인 보살님이 우연히 그 방송을 듣고 우리 사명당의집을 찾은 것이 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보살님은 우리가 신설동 인근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보시하는 것을 알고서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요구르트를 보시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맺은 작은 인연을 이처럼 긴긴 보살행으로 이끌어 가시는 조점이 보살님을 생각하면, 보살님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입니다.
오늘은 바나나(코스타리카 산) 300개, 백설기 250개, 커피와 둥굴레차 각 각 100여잔을 보시했습니다. 바나나는 운경행님이 낮에 2개씩 묶어서 포장을 했습니다. 둥굴레차는 제영법사가 얼음을 넣고, 선풍기로 공들여 차게해 둔 것입니다. 더운 날씨라 시원한 둥굴레차가 거사님들에게 단연 인기입니다. 여러 분들이 펫트병을 가져와 둥굴레차를 담아 갔습니다.
오늘은 퇴현 전재성 박사와 을지로거사 봉사대 해룡님, 종문님 그리고 한 분의 을지로 거사님(얼굴은 익숙하지만, 아직 이름을 묻지 못했네요)이 봉사를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지난 주와 같이 거사님들이 100여명 오셨습니다. 이제는 오시는 분의 숫자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전재성 박사는 을지로 거사님들을 보며, 세월이 흐르니 거사님들도 얼굴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니 비로소 한동안 잊고 지내던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정치나 경제동향에 대한 뉴스는 관심있게 보면서, 주위 거사님들이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했으니, 사람으로서 하늘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생명에 대한 자비와 연민을 일깨운 부처님에게 참회하며,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거사님들에게 부디 좋은 인연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