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賜物母氏表
鄭知常
伏蒙聖慈特降宣牌一道하니 賜臣母盧氏某某物者라 璇極推恩하사 玆降非常之命하시니 衡門拜賜는 實惟莫大之榮이라 省循若驚하니 感涕何已잇가 (中謝)
성자(聖慈)께서 특별히 내리신 선패(宣牌)를 받자오니, 바로 신의 어미 노씨(盧氏)에게 모모 물품을 하사하심이었나이다.
성은(聖恩)이 그지없으사 이에 비상한 명을 내리옵시니, 형문(衡門 가난한 집)에서 하사품을 배수(拜受)하옴은 실로 막대한 영광이온지라, 분수를 생각함에 깜짝 놀라운 한편 감격의 눈물이 줄줄 흐르옵나이다. 중사
* 선패(宣牌): 임금이 관원(官員)을 부를 때 쓰던 패(牌).
* 일도(一道): 한 통. *一道文記: 한 통의 문서.
* 선극(璇極): 임금의 자리나 대궐을 이르는 말.
* 추은(推恩):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 시종(侍從)이나 병사(兵使)ㆍ수사(水使) 따위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의 아버지로, 나이가 일흔이 넘은 사람에게 가자(茄子) 하던 일.
臣幼被母敎하고 來投學庠하여 有如司馬之題橋하여 慷慨而遊上國하고 所慕買臣之衣錦으로 富貴而歸故鄕이로되 而由齟齬十餘年閒하여 漂泊一千里外에 田園荒沒하고 親戚別離하며 掘井而未及泉에 功幾中廢나 爲山而不虧簣를 心或無忘이니다
신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교훈을 받고 태학(太學)에 와 입학하여 마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승선교(昇仙橋)에 글을 쓰듯 강개(慷慨)롭게 서울에서 놀았고, 주매신(朱買臣)이 비단옷을 입고 부귀롭게 고향에 돌아갔음을 흠모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10여 년간이나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천리 밖에 몸이 표박(漂泊)하여, 그 동안 전원(田園)이 황폐하고 친척이 모두 흩어졌사오며, 우물을 파다가 물 나는 데에 미치지 못하듯 공부를 거의 중도에 폐하게 되었사오나, 산(山)을 만듦에 흙 한 삼태기의 부족으로 전공(前功)을 폐하지 않으려는 마음만은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나이다.
* 司馬之題橋: 사마상여가 촉(蜀)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가면서,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다가 다리 기둥에 쓰기를, “높은 수레와 사마(駟馬)를 타지 않고는 이 다리를 다시 지나지 않으리라.” 하더니, 뒤에 과연 귀하게 되어 돌아왔다.
* 買臣之衣錦 富貴而歸故鄕: 한(漢)나라 회계(會稽)의 주매신(朱買臣)이 나이 50이 되도록 곤궁하여 나무 장사를 하니, 아내가 가난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고 가 버렸다. 수년 만에 그는 장안(長安)에 가서 회계 태수(會稽太守)에 임명되어 부임하여 오는데, 그의 전 아내는 새 남편과 함께 길을 닦고 있었다.
* 저어(齟齬): 틀어져서 어긋남. 막히다.
適丁睿廟之右文하여 遽辱賢科之第一하니 驟蒙玉色臨軒之奬하고 始慰霜髮倚門之思하고 以草萊一介之微가 從縉紳先生之後하며 庇身象魏하며 雖得逍遙나 引領江湖하여 却勞夢想이라
그 뒤 마침, 예종(睿宗)께서 문(文)을 숭상하시는 때를 만나 문득 현량과(賢良科)의 수석(首席)에 급제하여, 갑자기 용안(龍顔)이 임헌(臨軒)하시어 칭찬하시는 영광을 받잡고, 비로소 노모(老母)가 대문에 의지하여 기다리는 회포를 위로하게 되었고 초야(草野)의 한 개 미미한 몸이 진신(縉紳) 선생의 뒤를 좇아 궁궐에 드나들며 소요(逍遙)할 수 있었사오나, 늘 강호(江湖)를 그리워하며 몽상(夢想)에 시달렸나이다.
* 慰霜髮倚門之思: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왕손가(王孫價)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문에 기대어 기다리고[倚門而望], 저물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거리에서 기다린다.” 하였다.
* 초래(草萊): 황폐(荒廢)한 토지(土地).
* 상위(象魏): 서울의 문. 대궐문. 대궐.
閒有遂庭闈之勤省이로되 尙何親晨夕之旨甘이닛가 見先人之弊廬에 感松栢之猶在하고 念南陔之反哺에 曾烏鳥之不如라
그 동안 간혹 정위(庭闈)에 귀성(歸省)할 기회는 있었사오나, 어떻게 조석으로 감지(甘旨)를 받들었사오리이까. 선인(先人)의 헌 집을 보고는 송백(松栢)이 아직도 있음을 느꼈고, 남해(南陔)의 반포(反哺)를 생각함에 제 몸은 까마귀만도 못하였나이다.
* 지감(旨甘): ①어버이를 봉양(奉養)하는 음식(飮食). ②맛좋은 음식(飮食).
* 남해지반포(南陔之反哺): 남해는《시경》의 편명(篇名)인데, 피리에 연주(演奏)하는 것으로서 소리만 있고 글은 없는 것이다. 진(晉)나라 속석(束晳)이 보충하여 지었는데 그 글에, “까마귀도 효도하여 새끼가 자라서는 먹을 것을 물어다가 어미를 먹인다.” 하는 말이 있다.
迺際休明에 方深眷待하여 莅官未效에 而秩彌峻하고 從事無能而祿愈多라 未甞獻千秋之一言하고 又無他技로 所及過曾參之三釜하니 只自甘心이요 莫遑賦淵明之歸來하니 其敢效老萊之匍匐가
이제 성대(聖代)를 만나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은혜가 바야흐로 깊으시어 벼슬에 나아가 공로가 없었는데 지위가 더욱 높아지고, 일에 무능한데도 녹(祿)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간관(諫官)의 직책으로 전천추(田千秋)의 한 마디 말씀도 드린 적이 없었사오며, 또 다른 재주도 없으면서 녹을 받음이 증삼(曾參)의 삼부(三釜)보다 지났으나 다만 마음으로 달게 받았을 뿐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을 겨를이 없었으니, 감히 노래자(老萊子)가 어버이 앞에서 어린애처럼 기던 일을 본뜰 수 있었겠습니까?
* 권대(眷待): 돌보아서 잘 대우함.
* 千秋之一言: 한 무제(漢武帝)가 태자(太子)를 죽게 하였는데, 고묘 침랑(高廟寢郞) 전천추가 글을 올려 임금의 뜻을 깨우치게 하였더니, 곧 불러서 10일 동안에 재상(宰相)으로 삼고 후(侯)로 봉하였다.
* 曾參之三釜: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처음 벼슬할 때에 삼부(三釜)의 녹을 받아서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하였다. 부(釜)는 6두(斗) 4승(升)이다.
* 老萊之匍匐: 초(楚)나라 노래자가 자기의 나이 70이 되도록 양친이 살아 있었는데, 그는 어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그 앞에서 어린아이 노릇을 하여, 채색옷을 입고 물그릇을 들고 가다가 자빠져서 옹옹 울기도 하고 온갖 재롱을 부렸다 한다.
屬玉鑾之西顧하여 享景命之一新에 臣在此時에 恭隨法駕하여 非特盡菽水之養이요 足以爲桑梓之光이니 其又何求잇가 斯之萬年이니 豈知下恩照於雲霄之上하여 錫珍奇於蓬蓽之中하여 寒谷地窮에 得陽春之一煦하고 覆盆天遠도 蒙日月之餘光까 喜浹一門하고 榮生九族이니다
저번에 어가(御駕)가 서경(西京)에 행차하시어 국정(國政)을 일신(一新)하셨는데 신은 그 때에 어가를 공손히 따라 다만 숙수(菽水)의 봉양(奉養)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족히 상재(桑梓)의 영광이 되었사오니,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오리이까? 그것이 곧 만년(萬年)의 영예(榮譽)라 생각하였더니, 뜻밖에도 특별하신 은혜를 하늘 위에서 내리시어, 진기한 물품을 봉필(蓬蓽 가난한 집) 가운데에 주시어 땅이 궁벽하고 차디찬 골짜기에 양춘(陽春)의 따뜻한 볕을 얻고, 하늘을 못 보던 엎은 동이[覆盆] 속에서도 일월(日月)의 남은 볕을 받게 되오니, 기쁨이 일문(一門)에 가득하고 영광이 구족(九族)에 미치옵나이다.
* 숙수지양(菽水之養): “가난한 자가 부모를 봉양하는 데는 콩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으로 봉양하면서라도 그 환심(歡心)을 지극히 하도록 하면 이것이 효(孝)이다.” 하였다. 《禮記》
* 상재지광(桑梓之光): 《시경》에, “뽕나무와 재목(梓木)도 반드시 공경(恭敬)한다.” 하였는데, 이 말을 고향에 대하여 인용한다.
* 봉필(蓬蓽): 가난한 집.
* 寒谷地窮 得陽春之一煦: 연(燕)나라에 찬 골[寒谷]이 있어 초목이 나지 못했는데, 추연(鄒衍)이 음률(音律)로 양기(陽氣)를 불어넣으니 따뜻해졌다 한다.
* 覆盆天遠 蒙日月之餘光: 일월이 아무리 밝아도 엎어 놓은 동이 밑에는 비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此盖聖上以河海之量而含其垢하고 以父母之愛而示其情하시며 謂臣循公忘私하여 僶勉一節이라하시고 察臣移忠於孝하여 庶幾兩全이라하시어 肆於不意之中에 霈此無前之澤하시니 其在母子에 歡慶難言이요 大哉乾坤을 報酬無所니이다
이는 대개 성상(聖上)께옵서 하해(河海)와 같은 도량으로, 그 때를 덮어주시고[含垢]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그 정(情)을 보이시어 신이 사(私)를 잊고 공사(公事)를 따라 한결같이 힘썼다 이르시고, 신이 효도에서 옮겨 충성으로 양전(兩全)하였다고 살피시어, 이에 뜻밖에도 이 공전(空前)의 은택을 내리시니, 저의 모자(母子)에 기쁜 경사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건곤(乾坤)의 큰 은혜를 갚을 길이 없사옵나이다.
* 함기구(含其垢): 《좌전》에, “나라 임금은 때를 머금는다[國君含垢].”는 말이 있는데, 더러운 것도 포용해 준다는 뜻이다.
惟是赤心之不二하여 至於白骨以益堅하여 生不憚其捐軀하고 死猶圖其結草하리이다<東文選 卷之34>
오직 한결같이 적심(赤心)을 지키고 백골(白骨)이 되어서는 더욱 굳게 지켜서, 살아선 목숨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결초보은(結草報恩)하겠습니다.
* 적심(赤心): 정성(精誠)스럽고 참된 마음.
* 死猶圖其結草: 진(晉)나라 위과(魏顆)가, 자기 아버지가 죽을 때에 첩을 무덤에 같이 묻어 달라는 유언을 실행하지 않고 그 첩을 개가(改嫁)시켰더니, 뒤에 장수가 되어 진(秦)나라와 싸우는데, 한 노인이 진(秦)나라 군사가 다닐 풀밭에다 풀을 맺어 진(秦)나라 장수 두회(杜回)가 맺은 풀에 걸리어 생포(生捕)되었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와서, “나는 네가 개가시킨 첩의 아버지이다. 너의 은혜를 갚았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