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0년, 전원일기(기영윤)
기영윤 농협구례교육원 교수
(전략)
프랑스의 철학자 기 드보르는 68혁명의 한 복판에서 ‘스펙타클의 사회’가 도래했음을 간파했다. 물론 기 드보르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물자체와 표상의 개념을 차용해 노동자를 소비의 세계로 유혹하는 자본주의의 소외문제였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만 하더라도 인물 사진을 포함한 모든 사진은 기본적으로 피사체가 지닌 이론적으로 무한한 이미지 중 오직 한 가지만 포착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빗대어 표상과 직접 경험했던 것과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자본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며 소비자가 자신을 가장 탁월하게 지각 가능하게끔 만드는데 스펙타클을 활용한다는 것이 드보르의 지적이다. 미디어의 스타들이 광고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보르가 살았던 시대보다 지금은 미디어의 기술 발전이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에 맞추어 사회는 더욱 시각이 지배하고 있다. 백 번을 소문으로 듣던 군대내 가혹행위를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전 세대를 관통하는 울림을 가져다준다.
인류는 보이지 않는 신이 주인인 종교, 보이지 않는 경계로 구획된 국가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집단의 크기를 키워왔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시각을 중요한 감각의 수단으로 삼기에 가시성은 통치자들에게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막대한 재정을 부어가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 냈다. 신전, 피라미드, 극장, 각종 의례와 기념일은 결국 동일한 하나의 개념이다.
같은 논리로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감각하지 못할 뿐이다. 디피를 보고난 후 존재하되 감각하지 못하는 세계 하나가 떠올랐다. 전원일기다.
최장수 드라마였던 전원일기가 2002년에 종영된 이후 농촌을 이야기하는 이렇다 할 드라마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방송도 자본의 힘이 작용하는 한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우리 국민이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을 농촌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실질적인 농업소득은 감소하고 식량자급률은 OECD회원국 중에서 제일 낮아졌다. 초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에 청년농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머지않아 농업의 위기 수준을 넘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예산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 존재하는 위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과 농촌, 그리고 오늘 하루의 삶에 충실한 농업인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전원일기가 현실에는 존재한다. 다만 미디어에서 볼 수 없을 뿐이다. 전원일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농업이 지금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공감이 우선이다.
스펙터클 사회
기 드보르는 1963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스펙타클의 사회에선 자아와 세계의 경계,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소멸"되며 "가상의 조직이 믿게 하는 허위의 이미지는 개별적 인간에 의해 경험된 모든 진리를 억압하며, 스펙터클에 지배된 사람들은 그 이미지에 휩쓸린다"는 사실을 설파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