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의 원천이기에 찬미하나이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어서 무리를 하고 연재합지요. 벗님들이 잠시나마 추억에 잠겨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왔던 거 같아요. 나 혼자 별나게, 후후후 질풍노도의 시간을 살아온 줄 착각했지만요..... *********************************************
사람은 성장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될 터이지. 키가 크면 새 옷을 사야하고 변성기를 지나면 목소리가 우렁우렁한 어른 목소리로 바뀌어가며 턱에는 거뭇거뭇 수염이 나오듯이 말이야. 로케트 라디오, 줄에 달린 집게로 형광등 소케트에 꽂으면 소리가 나오는 간이 라디오로 노랠 듣던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였던가. 신춘문예 평론이었어. 그해 당선작이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분석한 거였다네. 내 인생에, 영혼을 울리는 사건이 벌어진거야. 시벨리우스의 핀랜디아가 그랬단 말야. 핀란디아라는 음악과 시벨리우스라는 작곡가에 대해서 쓴 평론이 그때 내 수준으로 이해할리 만무였지만 내 기억에 시뻘건 불로 도장을 찍은 사건이었어. 집에 레코드 판이 없어서 음악은 한참이나 지난 뒤에 들었지만 평론을 읽은 그날부터 난 시벨리우스 팬이 된거야. 당시 데이트 할 땐 유치하지만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고 묻곤하던 시절이었지. 목소리 톤을 높이며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하며 뻐기곤했어. 생각해봐, 모짜르트도 쇼팽도 아닌 시벨리우스 하면 뭔가 대단한 음악메니아 같지 않은가? 감당 못할 내 허세였어. 그래 3학년이었을거야. 내년이면 졸업반인데 뭘 해얄까 걱정이 많아지면서 술을 마시게 되더군. 그리고 줄곧 용돈 벌이했던 고3 과외를 때려치워버렸어. 사실 과외가 용돈 벌기엔 제일 쉬운 일이었는데도 지긋지긋해지더라고. 그리곤 학교 앞 음악 다방에서 디제이로 취직했어. '잘 했어 아주 출세했구먼!' 그러지 마, 일상적인 모든 게 싫어져 때려치우고 달겨든 게 바로 선배가 군대 가며 물려 준 자리가 판돌이(DJ)였다고. 그 다방에서 핀란디아 레코드 판을 발견한 거야. 처음으로 핀란디아를 마주했던 순간을 어찌 잊을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며 판을 턴테이블에 걸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새롭고 떨린다.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는 핀란드가 자랑하는 세계적 작곡가라하지. 그를 국민주의 음악파 또는 낭만파 작곡가로도 분류한다. 국민주의 음악이란 애국심을 고무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작곡하기에 듣기에 매우 쉽다. "아름다운 교향시라고 불리는 핀란디아는 1899년 시벨리우스의 나이 34세 때 초연되었다. 당시 니콜라이2세가 다스리는 제정 러시아의 압제하에 시달리던 그의 조국 핀란드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목적으로 작곡했다고 한다. 러시아 관리가 꼬장꼬장 간섭하기 때문에 핀란드 안에서 연주가 금지될 지경으로 핍박 받았다."
핀란드란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기구한 운명의 나라야. 러시아 이전에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기에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스웨덴어를 배우고 나중에야 핀어라는 모국어를 배우는 식민지 국가의 설음을 맛보게 되었다. 그래서 처지가 비슷한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공감을 받기 쉬었을 테고. 그래서 내가 미치도록 몰두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어서 겠지. 아~ 우리 나라도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환타지아가 있지 않은가?
우선 눈을 감고 떠올려보게. 자작나무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그 아름다운 북유럽의 조그만 나라가 떠오르지 않는가?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마지막 눈이 내리는 5월 초까지 기나긴 겨울이다. 핀란드 겨울의 혹독함은 인간의 접근이나 친근감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 핀란드 사람은 동장군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어둠을 더 두려워한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다. 낮이라고 해도 밤보다 조금 밝을 정도다. 해가 나는 날이면 온통 시가지는 붐비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임에도. 햇빛이 그리운 탓에 옷을 벗고 햇볕욕을 하기 때문이다. 아니 햇볓을 쬐주지 않으면 우울증, 피부병, 비타민 D 결핍으로 야기되는 각종 뼈 질환에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야 햇빛이 무한할 정도로 풍부한데도 미용 때문에 선크림을 바르거나 심지어 복면을 쓰고 운동을 하는 여인들이 많다. 우리 나라는 순전히 미용 때문에 햇볕을 피해서 생기는 질병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 사람들이 들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 양반들은 일사량이 부족하여 비타민제를 일부러 먹어야 한다네. 햇볕 쬐기가 얼마나 힘 들면 그럴까.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독특한 풍토와 예술, 신화를 바탕으로 즐겨 작곡했다고 해. 그래서 덴마크의 닐센, 노르웨이의 그리그와 더불어 국민악파의 거봉을 이루는 존재가 되었다지. "러시아 제국에 항거하는 위대한 핀란드의 힘"이란 찬사를 받았던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드의 제2의 국가라는 핀랜디아를 한번 들어보기를 강추할까.
북유럽의 끝간데를 모르는 벌판에 눈이 내린다. 하얀 나무 껍질의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는 유령이 사는 듯 음산하다. 그 숲을 훑어가는 바람 소리가, 종일토록 해가 지지 않는 북구의 하얀 밤. 핀란디아의 시작은 금관악기가 나온다. 이어서 현악기의 합주가 나오는 중에 타악기 소리,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약하게 들려오더니 차츰 강하게 펼쳐진다. 드넓은 평원을 달려오는 말굽소리랄까, 아니 동토를 뚫고 올라오는 연약한 새싹의 움 트는 소리인가? 숨가쁘게 두드리는 타악기 주자 따라 호흡도 가빨라진다. 감히 부언한다면 일상에서 잠자고 있던 내 심장을 깨우며 일어나라는 운명의 노크라 할까? 금새 생명을 일깨우는 고동 소리가 내 안의 깊은 바닥에서부터 숨가쁘게 차오른다. 핀랜디아는 타악기가 압권이다. 타악기야 말로 가장 원시적인 소리가 아닌가.
내 기억, 내가 처음으로 핀랜디아를 만났던 순간에 느꼈던 감상을 불러볼까. 핀란디아라는 교향시에는 금관악기가 주제를 끌어가느라 음악 자체가 웅장하다. 간혹 목관이 나올 때는 아주 평화로운 대지를 거닐고 있는 느낌을 받지. 그러다가 타악기와 화음을 이루자, 맙소사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엇을 느꼈어. 이어지는 현악기의 세밀한 협주에서는 끝간데 없는 자유를 느낀 게 처음으로 시벨리우스를 만난 감동이야. 클라식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데 왜그리 북받쳐 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을까? 그날부터 음악다방, 청자를 찾는 손님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핀랜디아를 들어야 했어. 레코드 판돌이가 바로 나였으니까. 내 일생을 따라다닌 핀란디아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휘몰아치는 북유럽의 바람 같은 음악이 아니었을까? 아니 아니 눈에 덮인 황량한 벌판을 뚫고 올라오는 여린 새싹의 생명 같은 거. 온갖 험한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불굴의 투혼이라할까?
아~ 벗님들도 기억하실까? 다이하드 2에 나온데. 핀랜드 출신 영화감독 레니 할린이 자기 영화에 핀랜디아를 넣은 거라네. 핀랜디아에 죽네사네하지만 저도 영화 볼땐 몰랐어.
사실 그때는 매우 심란했어. 부모님 눈치 보여서 고시를 준비했지만 3학년 가을 합격자가 행시에서 고작 스물 여섯이었어. 그것도 행정직은 열일곱이었나? 세상에 그 많은 고시생 중에 스물 안쪽으로 어떻게 들 수가 있겠어. 사시는 한 사십 명 정도였던 걸로. 이제야 천 명씩 뽑나? -누가 나보고 꼴갑 떤다고하드만. 3학년이 감히 고시 합격하기를 바랬다고. 내 인내는 짧아서 무참하게 보복을 당했다. 바로 다음 해, 그해는 학생 데모대가 나라를 시끄럽게 하길레 당근으로 내놓은 것 중에 하나가 고시 문을 활짝 열어쟂힌 거야. 행시는 백 명씩을, 사법고시는 2백 명을 뽑더군.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 거반 합격하더라고. 너무 까분 거지. 조금 느긋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대학생은 삼학 년에서 사학 년 올라가는 게 제일 힘이 들고 막막하더라고. 뭔가 잡히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어. 지금보다 더 했어. 취직할만한 회사가 있던가. 중동 붐도 일기 전이었고 세상은 위수령이 내려서 켐퍼스엔 장갑차가 떡 하니 자리하고 착검을 한 군인들이 주둔했다. 우린 졸업시험도 간신히 봤다니까. 그래 냉혹한 겨울이었어.
방학, 그때는 매일 방학이었어. 데모 때문에 그랬지. 4년 졸업할 때까지 데모로 어느 한해 수업을 제대로 한 해가 있었던가. 법적 수업일수는 어림도 없었을 건데 다들 졸업은 시켜주더군. 애초에 고시에 붙어도 면접에서는 낙방인 걸 뭣하러 하냐고 자포자기였어. 왜? 내가 데모 주동자 리스트에 올랐다고. 처음에 어디에 잡혀간 굴곡 많았던 학교 생활을 썼다가 빼 버렸어.
그땐 매일 술이었어. 술에 취해 돌아올때면 전봇대가 왔다갔다 하더라고. 전봇대를 붙잡고 토악질을 하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 누구는 신새벽에 '민주주의 만세'라고 쓰더만, 난 나라와 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아파했던 게 아니야. 어정쩡하게 고시도 취업도 막막했던 게 내 꼬라지가 한심해서 울었지 뭐. 연극에 미친 나보고 연극으로 전공을 바꿔서 대학원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니 그게 유일한 위안이었지. '딴따라가 될려고 에라이 망할 놈아' 하면서 나중에 아버지한테 뒈지게 혼이 났지만. 그때 말이야 연극 전공을 했더라면 한류로 날리는 제자 때문에 호강할건데. 아~ 옛날이여!
아~ 그땐 박인수의 봄비가 그렇게 좋아서 술만 먹으면 봄비를 불렀어. 부르고 또 불러서 나중에 고함이 되드라만. 그래 봄비는 노래가 아니었어. 청춘이 부르짖는 울부짖음이었고 상처 입은 늑대가 내는 신음이었어.
그래 날 위로해 준 것은 음악이었고 그중 핀랜디아가 날 구원해준 셈이야. 음악 감상실하니 종로 1가에 있던 르네상스가 생각나는군. 거기에는 르네상스다운 스타일이 있었어. 대개 시꺼먼 물을 들인 야전잠바, 군복을 입고는 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들은 제가 무슨 철학자인냥 세상의 무거운 고뇌를 다 지고 있는 듯 침울해 보였다. 탁자 위에 내놓은 담배는 으례 백조였어. 필터 없는 싸구려 담배란 말이다. 그래야 철학자한테 어울리지 않았을까. 필터 없는 담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뿜는 날숨에는 깊고도 음울한 청춘의 탄식이 담겨 있었지. 음악감상실 입구에는 자그마한 칠판이 걸려 있는데 거기에 지금 틀어주는 음악 이름이 백묵으로 쓰여져 있었지.
내 어쭙잖은 허세가 들통난 이야길 할까봐. 1학년 때였을 거야. 데이트 중인 여자가 음대생이었거든. 르네상스를 안내하면서 나도 이렇게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뻐기고 싶었던 모양이야. 상대를 잘 골라야지. 맹모 앞에서 이사짐 싼다고 내가 그런 허당일 줄이야. 음대생인 새초롬 이쁘게 생긴 여자가 르네상스는 처음이래. 커피를 마시며 필터없는 백조를 꺼내들었거든. 요즈음 같으면 몰매를 맞겠지만 그때는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거든. 호흡이 짧은 목소리로 부르는 리트가 나오는 거까진 좋았어. 내가 아는 채 했지. 겨울 나그네 좋아하세요? 하곤 곡명을 알고 있다는 걸 과시했지. 그 애도 고개를 끄덕였어. 여기까지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 무참한 비극의 시작이었어. 내가 차이코프스키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어. 이런 우라질, 병도 그런 병이 없었어. 내가 겨울 나그네를 알 턱도 없었거든. 들어올 때 칠판에 겨울나그네라고 쓰여져 있길래 통박을 쳐 본거야. 다른 곡 같으면 알파벳으로 쓰여져 있을건데.....하필 우리 말로 쓰여질 건 뭐야. 겨울나그네 하니까 추운 러시아 음악가인 차이코프스키가 떠오르더라고. 그 애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만 그래도 얌전히 차를 마시더라고. 계속 난 아는 척 온갖 꼴갑을 떨었지뭐.
그 뒤 얼만가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학교 앞 음악 다방에 갔거든. 누구랑?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연극 동무인 후배랑. '넌 공부하러 다녔니 데이트하러 학굘 다녔니?' 가만 들어보라고. 디제이한테 쪽지를 넣었지. 차이코프스키의 겨울 나그네 하고 말이야. 목소릴 착 깔고 디제이가 그러데. 겨울 나그네는 차이코프스키가 아니고 슈베르트 작품인데 많고도 많은 겨울 나그네 중에서 뭘 들으려 하는지 소 제목을 붙여달라고 방송을 하더만. 내가 신청한 줄 눈치를 챌까봐 뚝 시치미를 땄어. 식은 땀이 나더구먼. 생각해봐. 겨울 나그네는 짤막한 노래가 열 몇곡이 넘지 아마. 연가곡집이라는 걸 몰랐을 터 내가 무슨 아는 채를 해서 이런 망신을..... 그래서 그랬던가 르네상스 함께 갔던 음대생은 그 다음부터 연락이 되질 않더라고. 진짜로 크게 각성했어. 위인전을 읽어보면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계기(실수)를 만나서 대오각성하여 큰 인물이 되는 과정이 있잖던가. 그런데 난 그냥 그 꼬라지로 살았어. 대신 도서관에 가서 음악관련 책을 읽고서 제대로 된 음악 상식을 쌓아둔 덕에 다음엔 그런 망신스러운 일은 없었지. 그만해도 다행이지 뭐. 그땐 그랬어. 내 좋아하는 노랠 듣고 싶다고 들을 수가 있나. 다방에 가든가 감상실에 가야 음악을 접할 수 있었거든. 라디오 한 대도 없는 불학무식한 촌놈이 무슨 클라식을.
그래도 불타는 내 허영심이 이렇게 날 키웠다고 봐. 나중에 비엔나 신춘 음악회에서 라데스키 행진곡을, 베를린에서는 생전의 카라얀을 만났거든. 어때 나 출세했지. (이럴 땐 박수를 쳐줘야지)
클라식에 시벨리우스 하나만 가지고 이야길 끝낼 수 없지. 세종문화회관 개관한지가 제법 되었지. 옛날에는 시민회관에서 내한한 후랑크 코랠리 공연엘 갔다. 음악 좋아하는 시골 친구랑 녹음한다고 금성사 모노카셋트를 외투에 숨겨 들어간 거는 지금도 식은 땀이 다 난다. 스위치를 누를 때 철커덕하며 소리가 났거든. 생각해봐 금성사 카세트, 덩치는 주부생활 잡지책만한 했고 스위치를 누를 땐 철커덕하니 유난히 소리도 컸다. 연주가 끝나고 들어보니 소리가 나왔겠어. 직직~ 하니 잡음만 나더군. 아직도 난 성악가는 코랠리가 제일 좋더라. 직접 실물을 봤으니.
시민회관이 불타고 새로 지은 세종문회회관은 정말 대단하더군. 시민회관이 풀로 전기를 사용하면 인구 10만 명이 사는 소도시만큼 전기를 사용한다고 해. 개관 기념으로 한달도 넘게 각종 공연이 열렸는데 정말 화려했다. 티켓을 살려고 숫제 매일 점심을 굶었다. 직장 초년생이 무슨 돈이 있겠어. 점심 굶어서 아낀 돈으로 런던 로얄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다가 헤르만 프라이의 리트 공연. 번스타인의 교향악......몇 개 더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못말리는 호사라고? 표는 명동 성모병원(지금의 가톨릭회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대한음악사에서 샀다.
핀랜디아를 들으며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까나? 풋치니, 베르디......아~ 베를린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베토벤의 운명을 들었던 거 자랑해얄까. 라스칼라에서 라트라비아타를 감상하는 기쁨도 아직 새롭구먼.
누구나 사람이 성장기에 거쳐가는 질풍노도의 시간이 있을 터. 하기사 요즈음은 고등학생을 일러 질풍노도의 시간이라더만 우린 조숙하지 못해서 학교를 나오고 장가 가기 전까지 전체를 일러 질풍노도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 성장통을 겪을 땐 잠이 오질 않았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자리까지 오다니. 돌아보면 아찔해. 그래도 우린 살아냈잖은가?
자꾸만 추억으로 달려가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기는 들었나봐. 유럽에 갈 때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핀랜드를 이젠 버스킷 리스트에 올려 둬야 할까부다. 언제나 핀란드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무엇이 있어. 웬지 고향 같은 거, 그래 내 청춘의 고향이 거기에 있다고.
힘 빠지는 일이, 낙담하여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면 핀랜디아를 들어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벗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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