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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고구려의 건국 서사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고구려의 건국 시조 동명왕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동명왕편>은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가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에 대한 일대기를 한시 형태로 지은 것이다. 대체로 신화나 전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내용은 상상력에 기반하여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의 이해를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세는 없을 터이기에, 그러한 내용이나 모티프가 품고 있는 상징을 해명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던 당시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하늘의 뜻으로 간주했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규보 역시 처음 동명왕의 이야기를 접하고, ‘처음에는 환상이고 귀신의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거듭 읽어보니 성인의 일이며 신이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신화가 고구려의 것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국 고대의 신화와 역사를 제시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구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으면서 <삼국사기>와는 다른 ‘구삼국사’를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해당 구절에는 그 내용을 주석으로 상세히 달아놓고 있다. 따라서 ‘동명왕편’을 통하여, 우리는 이미 사라져버린 ‘구삼국사’의 동명왕 신화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규보의 <동명왕편>을 소개한 번역본이 다수 출간된 바 있으나, 대체로 기존의 번역서들은 말 그대로 번역에 치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간순히 번역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구절의 의미를 주석과 해설로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다. 특히 해설에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신화와 설화를 동원하여 비교함으로써, 고대 건국신화의 전승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건국신화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의 지적인 역량이 이 부분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번역자는 동명왕편이 몽고의 침입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는 기존의 평가에 덧붙여, 젊은 시절 이규보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문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서 관직을 구하기 위한 ‘구관시(求官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고려의 무인정권 시대에 관직을 얻기 위해서, ‘무력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 고주몽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적절한 소재’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나아가 창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당대 고려 사회의 시대정신을 표현하기에’ 동명왕의 이야기가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규보의 선행 작업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으며, 이 책의 말미에 ‘구삼국사’의 동명왕 신화를 기반으로 한 <세종실록지리지>의 관련 기사도 함께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서사-본사-결사’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동명왕편’은 먼저 서사에서 중국의 신화에도 허황되고 환상적인 내용이 많음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형식이 고구려의 신화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어지는 본사에서는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과 주몽의 신이한 탄생담, 그리고 동부여의 압박을 피해 남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서술되고 있다. 마지막 결사에서는 중국의 한고조 유방과 후한의 광무제의 사적을 제시하면서, 동명왕의 신화가 단지 신화에 그치지 않고 당당한 하나의 역사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본사에서는 주몽의 영웅적 능력과 부모인 해모수와 유화의 신성한 면모를 부각시키는 화소들이 제시되면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본격적인 번역과 해설을 겸비한 이 책을 통해 ‘동명왕편’의 내용과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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