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원고작품 ; 수필
미나리
최옥분
우리들의 봄은 미나리를 먹으면서 시작된다. 미나리, 이름만 들어도 고향의 전경이 떠오르고 남편 병간호하던 때가 생각난다. 대구근교에는 미나리 재배단지가 한재, 정대, 팔공산등이 있다.
오늘은 친구가 갖고 온 명함을 보고 행선지를 정했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갔는데 꽤나 멀었다. 하양을 지나고 금호를 통과해 신녕면 치산으로 갔다. 아직 산 빛은 회색이지만, 시골집 담 넘어 간간히 매화가 피어있고, 산수유는 노랗게 피어 봄볕에 방실방실 웃고 있다. 친구들도 지난 가을에 만나고선 이제야 만났으니 가는 길 내내 수다가 끊어지지 않고 웃음꽃이 피었다.
치산 마을의 수호신 당산나무를 보니 어릴 적 고향의 당산나무 곁에서 미나리를 키우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마을 앞 저수지 끝자락에 당산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우물이 있다. 엄마는 우물가에 미나리꽝을 만들어 냇가에서 야생미나리를 캐다가 심어놓고, 물을 길으러 갈 때마다 미나리에 물을 주어 키웠다. 갓 심었을 때는 볼품없던 미나리가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조금씩 자라 숲을 이루었다. 잎은 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하고 대궁은 나무젓가락 굵기만큼 자라면서 자주 빛을 띠었다.
우물에 간 엄마는 미나리를 베다가 고추장과 식초, 마늘,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주셨다. 미나리의 향기가 입 안 가득 풍기며 아싹하게 씹히는 맛은 지금도 생각하면 침이 고인다. 이제는 그 미나리꽝도 기억 속에나 담겨 있을 뿐이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당제를 지내던 당산나무는 저수지 확장공사로 베어버리고 우물도 사라졌다. 어른들의 쉼터요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그곳, 수많은 이야기도 함께 물속으로 다 숨어 버렸다.
젊은 날 남편은 B형 간염을 앓았다. 모태로부터 받은 간염은 수년간 치료를 해도 잘 낫지를 않았다. 지인이 건네준 ‘건강 다이제스트’에 소개된 안현필 선생님의 자연건강식 교육을 받기 위해 대구에서 첫차를 타고 안양시 석수동으로 갔다. 첫째 날은 교육을 받고 음식으로도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이 의아했다. 숙소로 돌아온 남편은 이름난 한의원에서 지어온 한약을 먹었다. 둘째 날 교육을 받고는 좋다는 약을 먹기가 찜찜했다. 셋째 날 교육을 받고는 자연식에 대한 확신이 들어, 자연식식이요법을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약탕기에 정성들여 다려 온, 값 비싼 약을 하수구에 쏟아버리고, 양약도 버렸다. 일주일간의 교육이 남편과 나를 변화 시켰다.
정기적으로 다니던 병원 대신 아침마다 땀 흘리며 조깅을 했다, 미나리와 돌냉이 컴프리를 섞어 생즙을 내어 날마다 마시고, 나물로 묻혀먹고 전도 부쳐 먹었다. 계절음식과 현미식, 소고기 보다는 생선과 콩을 더 많이 먹었다.
정홍규 신부님이 우리 먹거리를 위해 농촌 살리기와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했다, 환경단체인 푸른 평화 단체에 가입해 유기농 식재료와 우리 밀을 구입해서 먹으면서 식이요법을 계속하니, 간염 수치도 조금씩 낮아지고, 기미가 끼었던 얼굴도 서서히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정성을 다한 식이요법은 2년 만에 간염 수치가 정상이 되었다.
이처럼 미나리는 남편과 나에겐 특별한 존재였다. 그동안 야생미나리를 구하기 위해 봄이면 시골 개울가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깨끗한 미나리와 농약을 덜 친 제철 채소를 사기위해, 아침 일찍 대구 역 부근 번개시장을 사흘이 멀다 하고 다녔다. 번개시장은 시골할머니들이 심어 가꾼 채소를 보퉁이에 이고지고 완행열차를 타고와 아침 일찍 팔고 간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미나리와 농부들 덕분에 남편은 지금도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신토불이 우리 미나리는 슈퍼 푸드 음식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누가 돌보지 않아도, 뿌리가 없어도, 수분만 있으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마디에서 뿌리내려 잘 자라며 번식력이 대단한 식물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 같은 채소다. 숙취 해소를 위해 콩나물 해장국에도 미나리, 해독 작용으로 복어 탕에도 미나리, 제사상 나물에도 미나리를 올리지 않는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혈액정화에도 좋고 중금속정화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한다. 황사가 심한 봄철에는 필히 먹어야할 채소가 아닐까.
네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린다. 미나리를 먹겠다고 참 먼 길을 왔다. 한적한 산자락에 미나리 심은 하우스가 여러 동이 보인다. 식당에는 벌써 여러 팀이 미나리를 먹고 있다. 우리도 미나리와 돼지고기를 주문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제한에 따라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구이 돌 판에 불을 켜고 삼겹살을 얹어 지글지글 노릇하게 구웠다. 미나리와 구운 돼지고기를 잘 싸서 한입 가득 넣어 볼록볼록, 잘근잘근 씹는 맛은 일품이다. 밥 한 공기, 삼겹살 한 팩, 미나리 한소쿠리, 김치 한 접시 쌈장이 전부이지만, 왕후 밥상이 부럽지 않다. 배가 부른데도 남은 고기와 미나리를 잘게 썰고 김치와 밥을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미나리를 예찬하며 고향의 추억도 맛깔스런 양념이 되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요즘 뉴스는 미나리 영화가 화제다. 한국배우가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미망인으로 강인하게 살아온 영화 속 윤여정은 그의 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딸의 요청으로 손주를 돌보러 미국까지 간 친정엄마는 남은 힘과 사랑을 다해 손주를 돌보듯이 나 또한, 딸네 집을 월요일새벽 ktx첫차를 타고 서울 가서 손주를 돌봐주고 금요일에 딸이 퇴근하면 늦은 기차를 타고 대구로 와 주말을 보내는 반복된 생활이다.
한국에 어머니들은 미나리처럼 어디를 가든지 강인한 심성과 모성애로 잘 살아간다. 윤여정이가 받은 상은 우리어머니들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나리를 먹고 봄맞이 했으니 다음은 미나리 영화가 개봉되면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미나리! 강인한 생명력 이름도 예쁘고 향기도 좋거니와 빛깔 또한 생기발랄하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신토불이 미나리처럼 나의 삶도 강인하고 향기롭게 살고 싶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우리는, 미나리 한 단식을 사 차에 실었다. 오늘도 친구들과 추억 한 장 남기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먼 고향 하늘에 고향의 봄을 그릴 듯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섰다가 치산을 뒤로 한 채 둥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