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 여행은 지금까지 없었던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바로 '안에서 새던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을 종종 하시던 현곡께서 공식 일정으로 한국을 벗어나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밖에서 작정하고 새어보기로 하신 것인지, 선생님의 뜻은 언제나 그렇듯 새롭고 불안했다. 안에서 새는 것은 어딘가 구멍이 뚫려 새고 있다는 것만 알지만 밖에서 새는 걸 보면 어디에 구멍이 뚫려서 무엇이 얼마큼 새어 나오는지 눈에 보이게 알 수 있다.
자신 안에서 자꾸 새어나가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볼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겠다. 그게 너무나 눈에 보이게 나타났기에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건 그저 해외여행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 가기 전부터 무척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지쳤고 짜증을 자꾸 내었다.
그 이유는 3월 마지막 주의 문명 없이 살기부터 해서 봄꽃 창작 축제와 존재의 선언식으로 끝나는 연이은 각종 행사에 주말도 못 지내고 나름 힘들어하고 있던 것도 있다. 뭐가 힘드냐고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놀기만 했지만, 점점 노는 것조차 힘들거니와 이젠 노는 것도 잘 놀아야 하는 일정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서 묘한 강박적인 압박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민엽이, (박)시은이와 함께 봄꽃 창작 축제와 그의 2탄인 일본 여행의 프로젝트 조장을 맡았다.
신경을 안 쓰려 해도 그런 이름을 받은 이상 계속 잘 하겠다는 강박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심란한 마음을 안고 내 마음 같은 바닷길에 올랐다.
여행하며 화는 점점 울긋불긋해졌다. 여태까지 우울함이나 무기력으로 지낸 적은 있어도 분노에 가득 차서 일상을 보낸 적은 없었는데 낙엽이 떨어져도 화가 날 것 같은 상태로 여행을 계속했다.
그렇게 여행하다 보니 화를 내고 싶어졌다. 곧이어 화를 낼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은 선생님들이었다.
여공이나 현곡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통째로 맘에 들지 않았다. 왜 말을 저런 식으로밖에 하질 못하실까. 왜 저렇게 행동하실까. 그들의 모든 것이 미워졌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 자주 그랬듯이 싫어하는 사람을 머릿속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고, 때리고, 밀쳤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모습을 상상한다. 처참히 망가져서 구슬프게 오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사람이 덜 미워졌다. 너무 불쌍해서. 내가 실제로 덤비지 못할 사람들을 그렇게나마 내 발아래에 두곤 했다.
정말 어렸을 때 했던 건데 나는 어린애처럼 굴었다. 툴툴대고 이겨 먹으려 들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나를 자꾸 어린애처럼 대하니까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것이 또 화가 나서 화를 내고 삭이려 애쓰고 그랬다. 나는 정말 어렸다.
숙소에서 학교 들어온 지 1년 이내인 친구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여공께서 방 곳곳을 돌아다니시면서 화가 난 상태로 없는 애들을 찾으시며 각자 방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여행 첫날에 당신들도 여행이고 우리들도 여행인데 왜 당신들만 우리 뒷바라지를 해야 하냐고 말씀하셔서 그런 일 안 생기게 노력했건만 아무 설명 없이 우리 뒷바라지를 해주셔서 나는 당황했다. 우리 모두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촬영할 기분도 아니고 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서로 얘기를 시작했다. 선생님들 얘기, 학교 사람들 얘기, 프로젝트 얘기 따위를 하다가 현재 학교에 선배 역할을 하는 사람 얘기를 했다.
나는 내가 선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대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지금은 그런 역할의 흐름이 어떻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중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냐고.
돌아온 대담은 가히 낙담할 만한 답이었다. 그들이 느끼기에 나는 어차피 학교를 나갈 거니까 마음 안 쓰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가 예상범위의 최대 답변이었는데 벗어나고도 한참 벗어난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탁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는 정말 멋진 선배가 되고 싶었다.
현곡께서 가끔 제대로 된 선배 한 명만 있어도 학교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그 역할일 줄 알았고 그런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을 견제하고 했던 게 얼마나 주제 파악 못 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나에겐 언제나 이전 선배들보다 못한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선생님들도 이전 선배들과는 우리를 대하는 게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정도로 완벽한 삼무곡 내 사람이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이젠 잘 모르겠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는 왜 삼무곡을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그리고 남을 나만큼 사랑하지 못할까? 한번은 그런 얘기를 했다. 어차피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다른 사람한테 일부로라도 기대를 안 하고 정도 안 붙인다고. 아직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는 왜 남을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가요?
사랑에도 정도가 있니? 누군 더 사랑하고 누군 덜 사랑하고 그게 무게가 잴 수 있는 건가?
애초에 사랑이란 것은 비교할 수가 없단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일 뿐이야. 너는 남을 너만큼 사랑할 수 없어,
너만큼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거든. 사랑은 그냥 하는 거야.
그럼 화는 왜 나는 거예요?
네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나 봐. 너는 여기서 그냥 떠날 사람이잖아? 네가 그런 마음이면 다른 이도 그런 마음이겠지.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정말 고양이처럼 숨만 쉬어도 귀여움받고 싶은데, 난 자꾸만 뭘 하려고 한다. 아직도 계속. 그리고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노력에 대해 대가라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나를 이렇게 지치고 힘들게 한 건 이걸 배우게 하기 위해서가 맞다. 아니라고 못 하겠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게 싫지만,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거 같지만 그만큼 난 어린 사람이고 깊이 반복해서 새겨야 하므로, 그리고 결론적으론 내가 그렇게 선택했기에 오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잊어버리고 다시 잊어버리지만 기억하기 위해서. 망각이 없으면 기억 또한 없기에 오늘도, 이번에도 열심히 까먹는다.
오늘도 잊어버린 오늘을 다시금 맞이한다.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일본 돗토리 현' 후기 끝
첫댓글 머리를 감싸고 쥐어짜도 다시금 왔던 곳으로
핑 돌아 튕겨서 제자리 반복
소모품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밤도 아 돈 노
틀렸단 걸 알지만 그의 눈엔 무의미해 보여
Be like 톰 소여 뛰어 소년이여
오만함이 낳은 겸손이 보이는 걸
당신이 꼬였다면 그건 똬리 튼 거지
허나 몸에 남겨두지 않아 독따위 구르는 주사위
숫자는 무의미 무엇이 나오든 원했던 것이니
미니마니모 가위바위보 따위로 정해두지 않아
김하온 팀대표 결정전 가사 중...
이 얘기를 이정민 너에게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