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jVqsIZNKg4?si=qPACKmV2aSAfmo-Y
복된 삶의 길 마태복음 5장 3-12절
24년 갑진년 신년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올 한 해 동안도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과 삶과 관계와 모든 것들을 지켜주시고 하늘의 평화와 생명의 기운들이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가정과 일터 모두에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한해가 시작되면서 새해 벽두부터 제1야당 대표가 백주 대낮에 거리에서 흉기에 찔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구선생님의 암살이나 여운형님의 정치적 테러를 보아왔던 한국현대사에서 정치적 혼란과 미성숙의 시대의 일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 거리 한복판에서 그것도 고도의 살인에 훈련되어 있는 것 같은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이 사실은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저게 정말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한 것이라면 그것도 심각한 문제이고 그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한 시민의 일탈된 행동이었다해도 저는 매우 심각하고 생각합니다. 근원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이재명을 죽여야한다는 극도의 증오와 광기가 적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슨 백색테러단과 같은 광기가 느껴집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용과 대화와 존중의 문화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에 놀랍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치를 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관용과 배려와 협치와 대화를 보여줘야 하는데 서로의 생각을 듣고 소통하면서 어려움이 뭔지 문제가 뭔지 삶을 경제를 살피면서 살아야하는데 온통 나라가 정치권도 언론도 한사람 죽이기 담론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거부하고 무시하고 아예 타인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고 폭력적이며 권위적이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은 그래서 자신이 아닌 타인은 다 틀리고 틀린 사람은 심지어 죽여야하는 문화를 낳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고독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사법부 행정부 온통 이재명 죽이기 밖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법권력으로 하다 안되니까 수치와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언론에 세워 자살이라도 하게 만들려고 하는 방식으로도 안되니까 이제는 죽이기 담론을 양산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이제 선거가 다가오는데 행정을 하는 행정부 사람들, 살림하라고 자리에 앉혀놨더니 죄다 총선에 출사표를 내요. 나라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 사법후 행정부의 견제기능이지 사적 보호수단이 아닙니다. 국가 지도자들에서부터 법을 우습게 알고 사람을 우습게 여기니 함부로 찔러도 되고 함부로 짓밟아도 되고 감히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 같은 야만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시대 가난한 자, 혐오당하는 자들, 죽임에 내 몰린 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야할 종교조차도 오히려 부자들의 종교가 되고 혐오와 증오와 광기의 앞잡이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우리를 더 절망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해방후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시면서 그분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다시 읽어도 가슴벅찬 글입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최고의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데 있다. 최고의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은 우리 민족의 각사람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을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
김구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문화의 힘은 자비와 사랑의 힘으로 빅텐트를 쳐가면서 온 생명을 품는 스케일을 키우는 민족, 돈이나 힘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 관용과 존중으로 모두가 함께 사는 대한민국을 꿈꾸셨습니다. 오늘 예수님 식으로 표현을 하면 비움의 능력을 키우고 공감의 능력을 키우고 자비의 능력을 키우고 평화의 힘을 키우고 공존과 배려와 공생의 힘을 키워가고, 삶의 순수함과 진실함을 키우고 정의롭고 상식적이면서도 책임질 줄 아는 그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그리고 진흙에도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같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몸소 걸으셨던 이 길을 힘있게 걸어가시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한편으로 안식의 해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함께 안식하는 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문을 닫자는 것은 아닙니다. 올 한해는 모두 몸에 힘을 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없다고 보다 많은 책임감을 느끼면서 몸에 힘을 넣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근육이 뭉쳐서 자기도 통증을 겪고 타인에게도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힘을 빼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일들을 제외하고는 일 중심이 아니라 관계안에서 어려운 곳, 빈 틈새들을 보아주고, 평소에 맘담아 이야기 한번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따듯하게 챙겨갈 수 있는 <관계중심>의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기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에 책임을 강요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만큼 <돌보고 사랑하고 챙기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한해> 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 년말에 윤영학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행복한 삶을 전하는 편지>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우체부가 들려주는 손으로 쓴 편지와 관련된 세가지 이야기 인데 가족과 함께 보기 참으로 좋은 영화입니다. 그중에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집의 한 꼬마 남자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가난한 집안의 이 아이는 부모가 없습니다. 친구들의 따돌림속에서 삶에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아이들이 좋아가는 로봇이나 소방차를 가지게 되면 친구가 생길거라는 희망을 품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것들을 간절히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가난한 산타할아버지는 사탕 몇 개 정도를 사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고민과 고민끝에 옆집 이웃을 찾아가 자신이 참전 후 받은 귀한 기념품과 로봇선물을 교환해 줄 것을 청하지만 결국 이 조차도 무산됩니다. 년말이 지나고 새해 어느날 이 꼬마에게는 로봇은 아니지만 매일 사탕하나가 주어지는 마법의 양말을 선물로 받습니다. 꼬마아이는 너무나 크게 실망을 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사탕이 생기는 그 양말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때로는 자기가 먹지만 때로는 친구를 주고 때로는 이웃을 줍니다. 작은 사탕하나지만 조금씩 조금씩 관계를 열어주고 삶을 열어줍니다. 그렇게 그는 그렇게 어려웠던 어린 시절 날마다 사탕하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먼훗날 이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 할아버지는 이제 80순을 훌쩍 넘긴 노년의 어르신이 됩니다. 그런 어느 날 이 청년이 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신비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던 할아버지에게 마법의 양말을 선물해 줍니다. 그리고 그 마법의 양말에서는 매일같이 하나의 사과가 생겨납니다.
기적은 믿는 자의 것이고 삶에는 신화와 낭만과 신비가 필요합니다. 이런 양말이 존재하느냐를 증명하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성서의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이냐 허구냐를 증명하는 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신화든 이야기든 그 안에는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이 삶에서 꿈틀거리고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모든 신화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도 사실 / 과학 너머의 신화가 필요합니다. 낭만과 사랑과 신비와 신화가 필요합니다. 퍼도퍼도 나오는 화수분처럼 끊임없는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꿈틀거리는 신화들이 필요합니다. 올 한해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이런 신화를 써내려가고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