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났습니다.
꽤 크게 다루는 것으로 보아 일반의 관심도 큰 모양입니다.
xxxxxxxxxxxxx인터넷 기사 내용 xxxxxxxxxxxxxxxxxxxxxxxxxx
숙정문
문화재청은 오늘 그 동안 보안상의 이유로 폐쇄돼 있던
서울의 4대문 가운데 하나인 숙정문을 조만간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숙정문은 청와대 뒤쪽 북한산 동쪽 산마루의 성북구 성북동 계곡
군부대 바깥쪽에 위치해 있어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잠겨 있었습니다.
숙정문은 태조 이성계가 1396년 서울의 도성을 축조할 때
숭례문(남대문)과 흥인문(동대문), 돈의문과 함께 세워졌다가
18년후에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폐쇄된 뒤 연산군때인
1504년에 다시 복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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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肅靖門) !
듣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왔습니다.

서울에 오랫동안 살아 왔으면서도...
보지도 못하다니..
옛날 한양성의 4대문중 하나 인데....
그것도 小門 이 아니고 大門 인데...
왜냐면 위 기사에 났다시피..
보안상 이유로 일반인 접근을 금지 했기 때문에...
1968 년 김신조 일당의 소위 1.21 사태 전에는 되었습니다.
김신조 땀시 보안이 엄청 강화되는 바람에 청와대 근처 및
내려다 볼수 있는 곳은 모두 출입금지가 되어 버렸지요.
1968년 이전 까지만 해도 그렇게 신경질 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소생이 다니던 고등학교가 청와대 옆에 있어서 잘 압니다.
청와대 정문 앞과 경복궁 북문-신무문 사이길도 68년 이전엔
걸어 다니는 데 아무 제지가 없었고 , 실재로 그 앞 무시로 쏘다녔습니다.
인왕산은 학교 땡땡이 치고 (전라남도 쪽 사투리로 빠구리 치고 ,,,)
놀기도 하고 암벽-슬라브도 타 보는 곳이지요.
그 김신조 덕에 일정 고도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요.
몇년전 다시 인왕산 능선을 걸어 보았는 데..
그때 보니 출입은 되지만 군인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적더라구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김신조 이전 -68년 이전에야 숙정문 보는 데
전혀 문제 없었겠습니다만 소생이 고등학생이라
구경다닐 새가 없었지요.
이 숙정문 위치를 네이버 검색하니 나오지 않습니다.
할수 없이 기사의 설명을 근거로 구글 위성사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구글 위성사진 내려 받는 곳 :
여기서 google earth나 google earth plus를 받으면 됩니다.
아.. 위 지도에 위쪽에 처음에 어쩌구 쓴 것은
처음 인터넷 기사 보고 제 마음대로 짐작햇던 곳인데..
그 뒤에 자세히 나온 기사보니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문인지 뭔지 잘 알아보기 어려습니까 ?
그럼 zoom 으로 한번 당겨 보지요.
여담으로 Google 위성사진 검색하는데..
영문자 아무리 쳐 넣어야 잘 안됩디다.
SEOUL 정도는 바로 나오지만.
할수 없이 ZOOM OUT 상태에서 대충 위치 잡아서
ZOOM IN 하여 세밀하게 보는 수 밖에 없더라구요.
즉 지리지식이 사전에 없으면 검색이 안되더군요.
미국 도시들은 큰도시 NEW YORK 이나 NEW ORLEANS
아니 그 보다 훨씬 작은 곳도 정확하게 TYPE 안쳐도 비슷하면
주르르 쏟아지는 데...우리나라는 검색이 되질 않아요.
공짜로 내려 받아 쓰는 처지에 불평도 못하겠고..
이거 검색방법 혹시 아는 분 없습니까 ?
이제 이 위성사진에 나온 위치를 역으로 네이버 지도에서 찍어 보았습니다.

서울 도성의 4 대문 이름 !
요즈음 들으니 동대문 , 남대문 하는 것은 일제가 바꾼 것이니
숭례문 . 흥인지문으로 바꿔야 한다고 한답디다..
할 짓 없으면 차라리 빈대떡이나 붙여 먹으며 소주나 한잔 하지..
그걸 뭐라고 시비거리를 삼습니까 ?
왜놈들이 잘못 한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그렇다고 전혀 해당도 없는 얼토당토 않은 것
-다 끌어다 쪽바리 탓하면,정작 꼭 해야할
친일청산작업을 코메디- 희화화 시키니 문제라는 겁니다.
4대문은 조선초기 이미 현판에 써 놓기야 흥인문이니, 숭례문이니
써 놓아도 일반인들이 부르기는 동대문 , 남대문 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 고려 때도 개경성문에 붙은 현판이름에 상관없이
백성들이 부르기는 동대문, 남대문으로 불렀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흥인문이면 흥인문이지 흥인지문은 또 뭡니까 ?
동대문 현판에야 '흥인지문' 이라고 써 있긴 써 있습니다만
그것은 풍수지리설의 비보 이론 때문에 -한양성 동쪽이 풍수상
허하기 때문에 그 약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의미도 없는 글자 '갈 之"
하나 더 넣은 것이지..보통 부르기는 흥인문 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시내 나가 도로안내표지판 보니 굳이 갈 지(之) 를 넣어
흥인지문 이라고 써 놓았더라구요 !
자...
숭례문은 남쪽에 있고 , 흥인문은 동쪽에 있었다
하고 외우려니 어렵습니까 ?
요즈음 이거 일삼아 외우라 그러면 짜증 나겠습니다만,
옛날 선비들은 한양성에 숭례문 있고 흥인문, 돈의문 있다고 들으면
아 .. 숭례문이야 당빠 남쪽에 있을것이고
흥인문은 동쪽, 돈의문은 서쪽 에 있겠지 !
하고 바로 알아챘던 것입니다.
왜냐면 숭례문이라는 글자 안에 이미 남쪽이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조선 아니 동양에서는 모든 사물을 오행(五行)에 따라 분류했으니...
동쪽은 오행으로 목 (木), 색깔로는 청(靑) ,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 중에는 仁 이고
그러니 동대문에 興仁之門 하고 가운데에
인(仁) 이 들어가지요.
서쪽은 오행으로 금 (金), 색깔로는 백(白) ,
오상(五常) - 인의예지신 중에는 義 로서
서대문은 돈의문 (敦義門) 하고 가운데 의(義) 가 들어가지요.
이 돈의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쪽은 오행으로 화 (火), 색깔로는 적(赤) ,
오상(五常) - 인의예지신 중에는 禮 로서
남대문엔 숭례문 (崇禮門) 하고 가운데 예(禮) 가 들어가지요.
북쪽은 오행으로 수 (水), 색깔로는 검정-현(玄) ,
오상(五常) - 인의예지신 중에는 지(智) 가 들어 가야 하는 데....
숙정문의 정(靖) 짜가 지(智) 와 뜻이 서로 통한다고 합니다.
즉 하나의 파격을 준것이지요.
자.. 이렇게 숙정문은 4대문 중 하나지만
첫머리 기사에도 났다시피 지금은 물론 조선시대도
거의 쓰지를 않았지요.
그건 풍수 이론도 있겠고..
또 한양의 지형상 그쪽 문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
열고 나가 보아야... 나무에 바위에 산인데..
북쪽문을 쓸 일 있으면 북소문인- 창의문 을 쓴 것이지요.
이 문은 지금 효자동에서 세검정 넘어 가는 잿말량에 있습니다.
아.. 하나 뺐군요.
그럼 오상-인의예지신 중 나머지 하나 '신(信)" 은 어디 갔을까요 ?
방위중 가운데-중앙은 오행으로는 토(土),
색깔로는 황(黃), 오상으로는 신(信) 으로...
한양성에서 이 信 -즉 중앙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보신각(普信閣) 입니다.
지금은 광화문 네거리가 서울 중심입니다만
조선시대에는 보신각을 중심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첫댓글 바로 이곳을 9월4일 일요일에 삼청각 옆 홍련사입구 철조망 앞에서 군인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가며 갔었드랬지요.. 군인 아저씨가 설문지를 돌렸었는데, 어쩜~~~~~바로 개봉 박두군요.. 군인아저씨 말씀은 보초(?)서는데 애로사항(?)이 있다고 하던데 열리게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