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라보이는 진지한 소설. 임철우, <사평역>(소금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그려가는 세상이 행복한 모습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와 반대인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고달프기 그지 없을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겠지요.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 보곤하지요. 과연 내 삶에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전자일까, 아니면 후자에 가까운 것일까 하는. 지금의 제 모습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무대 위가 아닌 어두운 뒤안길에 서 있는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부정하며 늘 나를 꾸짖으며 살고 싶지는 않지요. 좋은 일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일도 있듯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말이지요. 여기 세상을 한없이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소설가 임철우이지요. 이 소설은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되었지요. 그 전엔 전 임철우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지요. 집에 <아버지의 땅>이라는 소설책이 있었는데도 읽지 못했었고. 소설가 임철우는 <사평역>에서 펑펑 눈 내리는 겨울날 시골의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잔잔하게 묘사하며 그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더군요. 열차를 기다리며 대합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따뜻할 수 있도록 톱밥가루를 가져다 불을 피워 주는 역장의 마음처럼 말이지요. 관념적 소설을 접할 때에는 도통 무슨 소린지 알아듣질 못할 때가 많지요. 워낙에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데다가 이해가 안 되면 될 때까지 그 페이지를 붙들고 있지요. 이런 책 읽는 습관은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내면 속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작품들을 읽을 때면 더욱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지요. 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지 않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있었고, 그때그때 가슴 구석구석 여운을 주는 메세지가 전달되었지요. 전, 소설가들 가운데 황석영, 오정희, 공선옥의 소설을 좋아하지요. 그 중 황석영의 단편 <삼포가는 길>에서 정씨와 영달 그리고 백화.이 세 사람의 여정에서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는데, 사평역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지요. 그들이 가는 삼포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요. 사평역도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간이역이라지요. 누군가는 남도의 나주인가 그곳의 남평역이라는 곳이 사평역의 무대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확실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병든 노인과 출소한 사내, 운동권대학생, 장사치 아낙, 술집 잡부, 미친 여자. 그네들의 삶은 후락한 역사처럼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삶 속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더군요. 어두운 뒤안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경로로 시골의 초라한 간이역인 사평역의 대합실 톱밥난로 앞에 모이게 된 것이지요. 그들 가운데 누구하나 쫙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없었지요. 모두가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는 아웃사이더들이였지요. 그들의 삶의 모습을 몇 마디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내면 깊숙이 하고 싶은 말들은 아무도 꺼내지 않았지요. 대합실엔 침묵만 흐르고 그들의 차가운 몸이 이따금씩 역장이 피워주는 톱밥난로 위에서만 따뜻하게 번져 가고 있었을 뿐이지요. 사평역에 모인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들이 바로 우리네들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삶이란 것은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아주 작은 것들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두 시간이 흐른 후 열차가 도착하자 대합실에 있던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각자의 갈 곳으로 흩어지지요. 역장은 열차를 타지 않고 대합실에 그대로 있는 미친여자를 위해서 톱밥난로의 불을 끄지 않지요.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차가운 의자위에 누워 있는 여자의 삶 또한 그곳 사평엑에 모인 사람들의 삶처럼 그다지 순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 소설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더군요.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각박한 사회 속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삶이 저무는 황혼기에 가선, 지난날의 흑백필름 속에 담긴 자신들의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기 이전에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사노라면"이라는 노래가 있지요.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좋은날이 오겠지요. 삶이 무엇이냐구 묻는 사람도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자신의 삶과 똑같은 대답을 하지는 못하겠지요. 삶이란 다 그런 거니까 말이지요.
요즘 한겨레신문에 연재중인 임철우의 <우리 사이에 강이 있어>라는 연재 소설일 읽고 스크랩을 해 나가고 있답니다. 또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해서 조금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