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스트랄 촉수를 얼마나 뻗칠 수 있느냐에 따라 인간의 다른 영적 기관들은 개발됩니다(인간, 혼, 영에 관한 지혜, 2023, 66)."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므로, 다만 드러내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더우기 인류가 그것을 배제했기 때문에 현재는 모든 곳에서, 모든 부분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것은, 배제한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영원히 인간과 함께 한다. 그것은 바로 '영'이다. 요컨대 우리가 살아가면서 궁금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영의 작업이다. 그러므로 영의 작업이 없다면, 누구도 자신의 궁금증을 풀 수가 없다. 영이 어떻게 작업하는지가 질문이다.
필자는 아주 작은 상가, 방 한 칸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장사가 안되어서 가게를 그만 둔다고 하길래 세입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세입자가 처음 상가에 들어올 때, 업종은 아이들 상대 학원이었다. 당시 세입자는, 그 분야에서는 매우 전문가로 영업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도 문제가 없어 보여서 안심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줄어서 이해는 되므로 상식선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늘 염두에 두는 말이 있다. '이 세상 일은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다란 말이다'. 법륜스님의 말씀인데 사실 옛날에 힘들었던 일도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너무 매몰되어서 몸과 마음이 다치면, 그것은 정말 큰일이다. 이 말을 늘 염두에 두면 삶이 훨씬 가벼워진다.
부부중에서 여자 사장님하고 통화를 했는데, 여기에 필자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대목이 있다. 여자사장님의 목소리가 안정되지 못해서 인듯 겨울에 부는 바람처럼 스산하고 갈라져 있었다. 마치 마른 갈대가 우는 소리처럼 멀리서 웅웅대는 듯했다. 이것은 세입자의 감정체, 아스트랄체인데, 아스트랄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라고 짐작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첫째, 뭔가 한 곳에 집중하지 못했다. 사람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지만, 그 바탕은 한 곳에 집중해 있어야 한다. 바깥이 흔들린다고 같이 흔들리면 자신의 삶이 안정되지못하므로 자신의 삶을 살기가 어렵다. 즉 중심이 서 있어야 바깥에 대하여 대응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식이 오른다고 하자 같이 따라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때 흔들리지 않아야 상황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은 돈을 벌기 어려운 상태라고 보여진다. 돈을 쫓지 말고 어떤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돈이 따라온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장에 있을 떄 아이들이 가끔 공부는 실생활에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런 공부을 해야 삶을 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공부는 뇌(마음)로 보면 일종의 간접 경험이다. 필자가 현장에 근무할 떄 외모가 굉장히 예쁘고 키도 큰 6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는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아이다. 수업시간 처음부터 끝날 때 까지 겉옷으로 머리를 덮고 엎드려 잠만 잤다. 그런 아이는 남자들의 노리개감(?)이 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필자는 그런 아이가 몹시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아이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졸업후 아이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아이가 필자를 째려보았다. 짐작하기에 당시 아이는 필자로부터 어려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머쓱했지만 어쩼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를 바랬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는 오직 자신의 삶에 매몰되어서 힘들어 한 결과일 뿐이다. 요컨대 이렇게 힘든 것은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서다. 인간의 자아가 상속에 있기 때문에 상속의 자아는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면- 온전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예컨대 등산할 때 산에 올라가는 것은 힘이 든다. 이때 힘든 것에 매몰되는 것과 같다. 힘들지만 끝까지 오르면 보람도 행복도 느끼듯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데에, 여기에서 중간에 힘든 것만 생각하는 것이 현실에 매몰되는 것이다. 되풀이하지만 이는 자아가 상속에 있기 떄문에 온전하게 판단하지 못해서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이런 감정을 살펴서 상속의 자아가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의 작업이다.
여자사장님의 아스트랄체가 이렇게 된 것도 현실에 매몰되어서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고 오랜 시간 허둥(매몰)댔기 때문이다. 6학년 여학생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여러움을 가만히 살펴서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학창시절에 공부를 왜 하느냐고 물었던 아이도 이런 현실 상황에 휘둘리지 않을려고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휘둘리지 않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질문이 생긴다. 한 마디로 영을 발달시켜야 한다. 학창시절 공부 역시 이런 영을 발달시킬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인류가 영을 배제했기 때문에, 늘 되풀이하지만, 영이 발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망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셋째, 그렇다면 어떻게 발달시키는가? 먼저 어떤 일이 닥치면 가만히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내부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고 대답도 듣기 어렵지만 차차 대답도 듣고 또 정확해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부와의 끈, 연결을 놓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슈타이너 역시 항상 인간 내부와의 연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주장하는 대부분의 교육방법도 인간내부의 발달이고, 그렇게 할려면 인간 내부와 연결을 끊지 않아야 한다.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찰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순간 그렇게 아스트랄체가 마른 갈대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나아가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깨우기 때문에 아스트랄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에테르체도 깨우지 못하고, 이는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인간의 몸주위를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다. 7-14세 사이에 이 아스트랄체가 인간의 몸안으로 서서히 들어온다. 호흡을 타고 신경쳬계를 따라 척추를 중심으로 들어와서 뇌까지 올라간다. 온전하게 몸안으로 다 들어오게 되면 남자는 소리가 변하고, 여자는 생리를 한다. 이것이 아스트랄체의 탄생이다. 아스트랄체가 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활동을 촉진시켜주는 존재가 음악이다. 특히 부는 악기는 아스트랄체가 호흡을 타고 몸밖 악기로 흘러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런 경험을 슈타이너는 몸이 확장되는 경험이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경험하지 못했다. 또 소가 되새김을 하는 과정이 아스트랄체가 움직이는 과정과 같다고 한다. 그런 움직임의 아우라가 소의 되새김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담인데 법륜스님께서도 소의 되새김을 본적이 있는가 물으면서 슈타이너와 같은 주장을 했다. 깨달은 분들은 같은 경험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이 아스트랄체를 발달시켜야 한다. 그 방법으로, 슈타이너의 주장은 모조 씨앗과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을 두고 가만히 집중해서 씨앗속에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씨앗이 싹이 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을 느끼는 일이다. 슈타이너는 씨앗속에 가장자리는 푸르나 가운데는 노란색에 가까운 붉은 색의 흐름을 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힘으로 삼라만상이 자란다. 이 힘이 커지면 인간은 열한 번째 감각, 열두 번째 감각, 열세 번째 감각이 생긴다. 일종의 챠크라로 이마 가운데, 후두 부분, 심장 부분이다. 이것이 아스트랄체의 기관으로, 발달해야 영적 활동이 이루어진다.
아스트랄체는 그 촉수가 통상 인간 내부를 행하고 있으나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 그 촉수가 외부를 향한다고 한다. 이렇게 외부를 향해서 나아가는데, 방해가 없으면 계속 나아간다고 한다. 발달된 정도에 따라서 그 촉수가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 다른 영적 기관. 예컨대 에테르체, 그리고 육체도 발달한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발달하면 그 정도에 따라서 영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인간의 영적 활동은 어떤 경우에 이루어지는가가 질문이다. 먼저 말하면 인간의 의지가 발현되는 순간 이루어진다. 의지는 아스트랄체의 영역이다. 인간이 의지를 내면 아스트랄체가 움직인다. 에테르체는 시간의 기류를 타고 흐르는데, 아스트랄체가 의지를 내면 자아가 등장한다. 자아가 에테르체의 기류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의지를 내면 뭔가 행동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자아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 에테르체의 지혜를 자아가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영적활동, 지혜이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에 영적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아스트랄체가 정돈되어있지 않고 혼란스럽다면 에테르체의 지혜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될려면 인간의 감정이 의지로 전환해야 한다. 전환 즉시 영이 들어가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의지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성인들이 늘 말씀하기를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그때 의지가 발현되고, 영적 활동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사실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실한지, 또는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이 검증되지 않으므로 결과론 적으로 갈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그 사람이 진실되고 의지를 가지고 일을 해왔다면 분명 목소리에서도 그것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영적 작업이 중요하고, 그래야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꾸준히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자신의 삶을 살 때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늘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또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언제나 진리로 여기에서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소크라테스의 부활이 아니고, 영혼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필자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육체는 죽지만, 또 그렇게 영혼은 사는데, 그것이 겉으로 현실에서 물질세계에서는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영적활동이 없다면, 인간은 어리석게 살게 된다. 영적활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아스트랄체가 발달해서 척수를 뻗는 정도에 달려 있다. 예컨대 필자가 세입자의 소리에서 아스트랄체를 느낀 것은 필자의 아스트랄체의 촉수가 뻗었기 때문이다. 발달시키는 방법은 의지를 내서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켜야 하는 기본 계율을 지키고, 꾸준히 한다면 아스트랄체는 발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