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은 멋지게 하기 위한 것(원미연)
오랜만에 계획한 자유여행이었다. 친구 동생이 사는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동유럽에 있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아들도 동반하는 장거리 여행이라 여러 가지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여행을 결정하고 한 학기는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틈틈이 여행지를 검색하며 여행 루트를 짜고 이동 수단을 알아보고, 싸고 가성비 좋은 숙소들을 검색하면서 오랜만에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해야 할 일들을 제쳐두고 여행 동호회에 들어가 클릭을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이것저것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쇼핑하는 재미도 좋았다. 그렇다,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날 생각을 할 때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사람이었다. 기다림과 설렘으로 여행 가이드북을 탐독하며 낯선 세상과의 조우에 가슴이 뛰던 젊은 날. 늘 낯선 공기가 그리웠다. 낯선 시공간 속에 던져진 순간들에 전율하고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자유를 느끼던 날들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한 동안 여행을 잊고 살았다. 이제 더는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자라는 동안 여행은 먼 세상의 일처럼 미래의 일로 미뤄두고 한 십여 년을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좀 긴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슬쩍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비행기표는 일찌감치 예약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숙소 예약을 자꾸 미루다 막바지에 무료 취소가 가능한 숙소들로 예약을 했다. 사실 젊은 날처럼 홀로 배낭 하나 메고 훌훌 떠나기엔 마음이 쓰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강이 좋지 못한 부모님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 있는 형제들도 걸리고 집에 두고 떠나는 남편과 연로하신 시어머니도 신경이 쓰였다. 그 와중에 출발 한 달을 남겨놓고 함께 떠나기로 한 친구 동생이 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이 며칠 후 오진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잠시 여행을 포기했던 친구 따라 우리도 여행을 미뤄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암담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양주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쓰러져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드라마에서나 본 병명이 나왔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연간에 친구 딸들이 다치는 소소하지만은 않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지만 그럴 수도 있다하며 불안한 마음을 내심 감추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친동생이 쓰러지니 ‘이게 뭐지?’ 제법 센 펀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일주일 쯤 입원을 하고 동생도 퇴원을 했고 뭔가 찜찜한 마음은 있었지만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몇 달 전 싸게 구입한 특가 항공권은 환불이나 변경이 불가한 상태였고, 혹여 예약한 렌트카나 숙소가 환불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여행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여행 가방을 싸기 시작하던 출발 사흘 전, 저녁 설거지를 하고 무심히 돌아서다 식탁 다리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이 끼면서 심하게 부딪혔다. 밤새 통증과 함께 발가락이 부어올랐다. 다음날 병원에 가니 의사는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새끼발가락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되도록 발을 쓰지 말아야 하고 뼈가 붙는데 거의 한 달이 소요된다는 거였다. 마치 ‘네가 이래도 갈래?’ 하고 누군가 강하게 길을 막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발가락에 과하게 반 깁스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짐을 싸려고 펼쳐 둔 여행가방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제 어쩐다. 과연 이 일들은 나에게 여행을 가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들일까? 그럴 이유가 뭐가 있는가. 주변의 상황이 내가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책상 위에 있던 ‘풍경소리’를 집어 들고 ‘어디를 펼쳐 읽어도 좋은 어머니 말씀’을 다시 읽었다.
‘무엇을 하려다가 저항에 부딪치거나 장애물을 만나거나 혹 실패하거든 (실패한 것처럼 보이거든) 그때마다 일이 좀 더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래야 되나보다, 생각하렴. 그럴 경우 너는 낙심하고 심기가 불편해지고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버릇이 있지. “쯧쯧, 또 그 모양이냐? 넌 틀렸어.” ―이러는 거야말로 진짜 바보짓이다.’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만들어 내고, 모든 일어나는 일을 거기에 연결시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일들은 내 불안한 마음이 불러들인 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근거 없는 불안에 휘둘려 발가락을 부러뜨렸구나. 공자님 말씀대로 타고나길 어리석으니 몸이 고생하여야 깨닫는구나. 발가락에게 미안했다.
아픈 발가락 대신 가볍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싸면서 이번 여행이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 될 것임을 알았다. 젊은 날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하도 걸어서 발목에 단단한 근육이 생겨나곤 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계획된 루트대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여행은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에게 유효기간이 오래 전에 지났다는 걸 잊고 있었다. 여행지의 멋진 장소들과 꼭 먹어봐야 할 음식들을 찍은 인증샷으로 가득한 여행자 카페에 들어가는 일을 멈추어야 할 때인 것이다. ‘수천 걸음을 걸어서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즐기는 것, 발걸음마다로 평화와 기쁨에 닿는 것’(틱낫한, 한걸음)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꿈꿔 본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다시 뛰었다. 다음 날 반 깁스를 한 채 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한 쪽 발을 절뚝거리며 비행기에 올랐다.
이 글은 <월간 풍경소리>(편집장 김민해 목사, 순천사랑어린학교 교장)에 원미연님이 쓴 것입니다.
첫댓글 < 풍경소리>, 지난 번에도 꽤 공감가는 글이 실렸었던 기억이 남과 동시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