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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 治國] 2. 節義廉退 顚沛匪虧 (절의염퇴 전패비휴)(백우)
【本文】
節義廉退 顚沛匪虧 절의염퇴 전패비휴
절의 있고 청렴하며 겸양하여 물러남은
위급존망 순간에도 훼손해선 아니 된다.
【훈음(訓音)】
節 마디 절 義 옳을 의 廉 청렴할 렴 退 물러날 퇴
顚 엎어질 전 沛 자빠질 패 匪 아닐 비 虧 이지러질 휴
【해설(解說)】
지난 번 앞 장에서는 인(仁)을 다루었는데 이번 장에서는 의(義)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에서 인(仁)과 의(義)는 제일 중요한 덕목입니다. 절의(節義)와 염퇴(廉退)는 어떤 위급한 상황, 즉 엎어지고 자빠지는 난세에서도 절의로써 이지러지지 않아야 진정한 군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절의염퇴(節義廉退) 절의 있고 청렴하며 겸양하여 물러남은 우선 글자의 뜻을 하나하나 새겨 보고 문장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절(節)은 죽(竹) + 즉(卽)의 형성자(形聲字)로, 즉(卽)은 무릎 관절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대나무[竹]가 있어 '대나무마디'를 뜻합니다. 대나무는 곧고 단단한데 확실한 마디가 있습니다. 이는 꼿꼿한 절개를 뜻하여 '절개'의 뜻으로 쓰입니다. 이 절개는 확실한 지조를 보이는 것이므로 사신(使臣)이나 대장이 가진 틀림없는 신표(信標)인 '병부(兵符)'의 의미로, 틀림없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절개'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의(義)는 양(羊) + 아(我)의 형성자(形聲字)로, 아(我)는 들쭉날쭉한 이가 있는 모양인데, 희생양(犧牲羊)을 날붙이로 잡는 모양에서, 엄숙한 의식(儀式)에 맞는 거동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위(僞)와 통하여, '사람이 짓다'의 뜻을 나타내어, 실물이 아닌 명목상의 뜻을 나타냅니다.
혹은 양(羊) + 아(我)의 회의자(會意字)로 보아, 양(羊)은 '착하고 아름답다'는 뜻이고, 아(我)는 '나'를 뜻하므로, '나의 행동이 예의에 맞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옳다', 마땅히 해야 할 도덕으로써의 의(義)를 나타냅니다.
염(廉)은 엄(广) + 겸(兼의 형성자(形聲字)로, 겸(兼)은 '겸하다'의 뜻입니다. 엄(广)은 직각으로 만나는 방 모서리의 직선을 뜻합니다. 그래서 염(廉)은 두 면의 모서리를 겸하고 있는 직선, 모퉁이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 능선이 단정한 데서, '청렴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또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다', '값이 싸다'의 뜻 등을 나타냅니다.
퇴(退)는 척(彳) + 쇠(夊) + 식(食)의 회의자(會意字)로, 쇠(夊)는 발자국이 아래로 향한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고대의 벼슬아치가 관청에서 물러나서 집에 돌아와 밥을 먹는 모양을 나타내어, '물러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척(彳)은 나중에 '착(辵. 辶 )이 되었습니다.
절의염퇴(節義廉退)는 절개와 의리와 청렴함과 물러남을 뜻합니다. 절의(節義)란 절개와 의리(義理)를 뜻하는데, 절조(節操)를 지키고 의리(義理)를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염퇴(廉退)는 청렴함과 겸양하여 물러남을 뜻합니다. 이것이 군자가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군자는 이런 덕목을 념념불망(念念不忘)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소무(蘇武 ?~BC 60)는 자(字)를 자경(子卿)이라 했습니다. 어려서 낭(郞)이 되었고, 무제(武帝) 때인 BC 100년에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체포되어 항복을 강요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의를 굽히지 않고 이를 거부하여 바이칼 호 주변의 황야로 보내져 19년에 걸친 억류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후 소제(昭帝)가 즉위한 후 흉노와의 화해가 성립되어 BC 81년 장안(長安)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제는 그의 충절을 높이 사 전속국(典屬國)에 봉했고, 소제의 뒤를 이은 선제(宣帝)도 그의 노고를 중시하여 관내후(關內侯)에 봉했습니다. 그리하여 충신들의 충절을 기리는 기린각(麒麟閣)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 재상(宰相)이었던 손숙오(孫叔敖)는 갖옷을 입고 여읜 말을 타고 다닌 청렴(淸廉)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손숙오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때가 되어도 통 밥을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손숙오는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제가 놀러 간 곳에서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그 뱀을 보는 사람은 죽는다고 하니 아마 저는 머지않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그 뱀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손숙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을 보는 사람은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 또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염려되어 죽여서 묻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아들을 위로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는 음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자에게 하늘은 보답을 준다고 들었으니 걱정할 것이없다."
세상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가 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 그는 출세하여 초나라 재상인 영윤(令尹) 벼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직 정식으로 정치를 하지않았는데도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석 달만에 백성들의 교도(敎導)가 이루어지고 관리들의 간사(姦邪)가 없어지고 도적이 일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 번 재상을 받으면서 기쁜 기색을 하지 않았고 자리에서 세 번 물러남에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절의(節義)가 있어야 하고 청렴해야 하며 겸양하여 물러날 줄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욕심을 부려 좀더 누리고자 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욕 뿐만 아니라 지위도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老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태(知止不殆)라 했습니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글자가 퇴(退)입니다. 퇴(退)는 '물러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물리친다'는 뜻도 있습니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언제나 청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뇌물ㆍ청탁을 단호히 물리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퇴(退)라는 글자를 잘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전패비휴(顚沛匪虧) 위급존망 순간에도 훼손해선 아니 된다
글자를 보면 참으로 결연하게 보입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우선 글자의 뜻을 새겨 보고 문장의 의미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전(顚)은 혈(頁) + 진(眞)의 형성자(形聲字)로, 진(眞)은 '천(天)'과 통하여 '꼭대기'의 뜻이고, 혈(頁)은 '머리'의 뜻입니다. 그래서 '머리 꼭대기'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질(跌)과 통하여 '실족하여 넘어지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넘어지다, 엎어지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패(沛)는 수(水) + 패(巿)의 형성자(形聲字)로, 패(巿)는 '앞치마'의 뜻입니다. 앞치마와 같은 너비로 물이 풍부하게 흐르다, 늪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늪', '흐르는 모양', '큰 모양', '성한 모양'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넘어지다, 자빠지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비(匪)는 방(匚) + 비(非)의 형성자(形聲字)로, 방(匚)은 네모난 대나무상자를 말하고, 비(非)는 '둘로 나뉘다'의 뜻입니다. 뚜껑과 몸체로 나뉘는 '직사각형의 대나무상자'의 뜻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시경(詩經)부터 가차(假借)하여 부정사로 쓰여, '아니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비(非)와 통용됩니다.
휴(虧)는 우(亏) + 호(虧-亏)의 형성자(形聲字)로, 우(亏)는 물건을 깎기 위한 날붙이의 모양이고, 호(虧-亏)는 '결(缺)'과 통하여, '이지러지다'의 뜻을 뜻하여, '이지러지다, 깎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虧-亏는 虧의 글자에서 亏의 글자를 뺀다는 뜻임. 글자가 없음. ^^
전패비휴(顚沛匪虧)란 엎어지고 자빠져도 이지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지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그 뜻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전패(顚沛)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엎어지고 자빠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발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렇게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은 안 좋은 상황이므로 난관(難關)에 처한 '위급존망의 경우'를 말합니다.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이므로 뜻이 '꺾임'을 뜻합니다. 즉 '좌절(挫折)'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뀌어 '짧은 시간, 잠깐 사이'를 뜻합니다. 비휴(匪虧)는 '이지러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패비휴(顚沛匪虧)는 엎어지고 자빠지는 어려운 난관이나 위급존망(危急存亡)의 순간에도 결코 그 뜻을 훼손시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깁니다. 무엇을 그리 해야 하느냐 하면 전 절(節)의 내용입니다. 바로 절의염퇴(節義廉退)를 말합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인물중에 백이숙제(白夷叔齊)가 있습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백이(白夷)와 숙제(叔齊)는 원래 서쪽 변방의 작은 영지(領地)인 고죽군(孤竹君)의 후계자였습니다. 고죽군의 영주인 아버지는 셋째인 숙제(叔齊)를 후계자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형 백이(白夷)에게 자리를 양보하고자 했으나 백이는 아버지의 명이라고 말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숙제도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나니 사람들은 중자(中子)를 후계로 삼았습니다.
이때 상(商)나라 즉, 은(殷)나라의 서쪽에는 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되는 희창(姬昌)이 작은 영주들을 책임지는 서백(西伯)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서백창(西伯昌)이라고도 합니다. 그가 늙은이를 잘 섬긴다는 소식을 듣고 백이와 숙제는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서백이 죽었는데 아들 희발(姬發 周武王)이 그의 아버지를 문왕(文王)이라 칭하고 그의 신주를 모시고, 포악한 군주인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했습니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그의 말고삐를 잡고 간언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장사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치르니 효자라 할 수 있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는 것을 어찌 어진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하니 희발이 노하여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 강태공(姜太公)이 "이 사람들은 의인(義人)이다." 라고 말하여 그를 방면하고 벼슬을 주려 했으나 받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이후 희발은 은(殷)의 주왕(紂王)를 토벌하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되었습니다. 천하가 모두 주나라를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살았습니다.
이때 대부(大夫) 왕마자(王摩子)가 수양산에 찾아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나는 주나라 고사리를 먹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이에 백이와 숙제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끝내 굶어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절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전패비휴(顚沛匪虧)란 이러한 절박한 순간, 잠깐사이라도 절의(節義)에 이지러짐이 없어야 함을 교훈으로 보여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불교에서는 위법망구(爲法亡軀)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을 위하여 기꺼이 이 몸을 던진다는 이야기지요. 이처럼 어느 순간이라도 어떤 유혹이 있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의 초지(初志)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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