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즐기다-김기석목사(서울 청파교회)
느슨한 산책을 허용하지 않는 도시에서 나는 기어코 산책의 기쁨을 누리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은 일종의 소심한 저항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백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급적이면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이 팽팽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음이 팽팽해지면 다른 이들을 너그럽게 대하기 어렵다. 게으름을 찬미할 생각은 없지만 게으른 사람들이 매사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중간에 공원이 있다. 가급적이면 매일 공원을 한 바퀴 돌려고 애쓴다. 가슴에 뭐라도 걸린 듯 답답해지면 일부러 시 구절을 읊조리며 걷는다.
"꼬리로 바다를 치며 나아간다. 타아앙…"
몇 번 같은 구절을 반복하다보면 가슴 가득 경쾌한 '타아앙' 소리가 울리면서 마음이 시원해진다. 그러면 저절로 "나는 이미 바다이고 바다는 이미 나이다"(박남철, <고래의 항징> 중에서)라는 구절까지 떠올리게 된다.
마음이 가뿐해지면 공원에 있는 것들이 다 정겹게 보인다. 나뭇잎에 가만히 내려앉는 저녁 햇살도, 꽃잎을 어루만지는 바람도 모두 낯익은 이웃이 된다. 연못 가득 올챙이가 나타날 무렵이면 어디선가 청둥오리도 날아와 풍경을 다채롭게 만든다. 어떤 때는 고니도 찾아온다. 숨죽여 바라보노라면 녀석들의 몸짓이 고요하고 의젓하다.
터줏대감인 까치가 다가와 자기 영역에서 나가 줄 것을 위협적인 몸짓으로 요구해도 못 들은 체 할 뿐이다. 꽃창포가 흐드러지게 핀 연못가는 비의의 정원이다. 손자손녀와 함께 공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아기들에게 사물들을 소개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정겹기만 하다. 흙을 만지기 위해 재빨리 다가서는 아이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지지..' 하고 외치지만 장난꾸러기 녀석은 금지된 것을 행하는 즐거움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손 가득 흙을 움켜쥐고는 재빨리 바닥에 내던진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무릎을 굽힌 채 두 팔을 벌려 아기를 안으려는 이들의 모습도 평화롭다.
장기를 두는 노인들, 훈수를 두다가 한 소리 듣고는 머쓱해하는 사람들...이 느릿느릿한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평화이다.
일과 일 사이에서 길을 잃기 쉬운 인생, 잠시 무위無爲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소중한 일이 또 있을까. 해야 할 일을 잊고, 잠시라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안식이 찾아 온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가급적이면 천천히 걷는다. 누가 보면 하릴없는 사람이라 하겠지만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는 집, 감나무가 멋진 집 앞에서는 일부러 멈춰서기도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산딸나무, 배롱나무, 불두화, 수국, 자귀나무, 벚나무, 소나무, 아까시 하나하나 마음으로 어루만져 준다. 며칠 전부터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예쁘게 익어가는 앵두였다. 담장 밖으로 뻗은 가지 끝에 달린 열매가 발갛게 익어가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나무는 누군가의 손을 타고 말았다. 발갛게 익은 열매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던지 누군가가 따고 만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나무 전체가 붉게 물들 것임을 알면서도 불쑥 분노가 일어났다. 그 손이, 그 마음이 미웠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누릴 기쁨을 사유화해버린 것이다. 욕망은 그처럼 비루하다. 몇 해 전 교회 마당가에 포도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꽃이 피는 봄부터 열매를 맺는 여름,
그리고 검붉게 익어가는 가을까지 포도나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찹찹하게 해주었다. 어느 날 아이 하나가 사무실로 울며 뛰어들어왔다.
"어느 아저씨가 포도를 따먹어요."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사람은 간 데 없고, 빈 가지만 홀로 쓸쓸했다. 욕망이 문제다. 욕망은 결핍에서 촉발되지만, 과잉을 지향하기도 한다.
욕망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름을 더하게 만드는 소금물과 같다. 옛말에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족한 줄 알면 욕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욕망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꾸만 남을 위해 좋은 것을 남겨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은 소비사회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함께 누려야 할 것을 사유화하는 것을 일러 죄라 한다.
죄罪라는 글자는 '그물 망罒'과 '아닐 비非'가 결합된 단어이다. 죄는 우리를 그물에 갇힌 듯 부자유하게 만든다. 진정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자꾸 과잉에 대한 욕망을 흘려보내야 한다. 천천히 걷는 일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