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근육 큰 전주 코끼리들(조현)
조현 2019. 11. 26
저출산 시대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귀하디귀한 공주님 왕자님이니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부모들은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2동에 있는 코끼리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니 온실 속 화초 같은 아이들은 없다. 층층오름대 위에 아이들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걸려있다. 원숭이처럼 층층오름대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가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아이, 타잔처럼 줄을 발목에 꼬아 줄그네에 거꾸로 매달려 묘기를 부리는 아이,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없이 맨발로 모래성 앞에 물길을 내는 아이…. 교사들도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교사들도 함께 논다.
아이들이 ’노랑아찌’로 부르는 스쿨버스 아저씨는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을 배려해서 공을 일부러 차주는 법이 업다.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놀이할 때도 자기한테만 차주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다. 아이들은 노랑아찌에게 끊질지게 달려들며 공을 뺏으려는 투지를 불태운다. 보통의 유치원 같았으면 학부모들이 하나 같이 경을 칠 장면들 뿐이다. 그러나 이곳은 처음부터 ‘남의 집 귀한 자식들, 함부로 키워준다’고 공언한 곳이다. 더구나 아이 때부터 영어까지 가르치는 선행학습이 유행인 시대에 한글도 가르치지 않은 곳이다. 문맹율 최고(?)를 자랑하는 유치원은 그저 놀자판이다.
◇놀자판 아이들
아이들을 통제하지않고 마음껏 놀게하는 뒷배가 이곳에서 ‘엄지’로 불리는 유혜숙(63) 원장이다. 유원장의 교육관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편견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한테 ‘안에서 놀래, 밖에서 놀래?’ 하고 물으면 십중팔구 ‘밖’이라고 해요. 또 ‘여기서 놀래, 저기 숲에 가서 놀래?’라고 물으면 ‘숲’이라고 해요.
엄지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원없이 행복하게 뛰어놀아야 어른이 되어 힘든 일이 생겨도 그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온실의 화초는 회복탄력성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 아이들은 워낙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한겨울에도 맨발로 모래밭을 뒹굴기 편하게 엄마가 머리를 땋아줘도 다 풀어달라고 하고, 줄그네에 발을 끼우기 쉽게 아예 양말로 신지 않고 온다. 아이들이 너무 흙밭을 뒹굴어 새옷을 입혀줄 수 없다고 한다. 장시윤 엄마는 “이렇게 놀기 편하게 옷을 늘 입혔더니, 동네에서 혹시 계모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더라”며 껄껄 웃었다.
이곳 아이들 90여명은 일주일에 한번은 완주 두억 마을에서 텃밭을 가꾼다. 무려 500평이다. 이곳에서 고구마, 감자, 배추, 양파, 당근 등 온갖 채소를 직접 심어 가꾼다. 아이들은 채소가 잘 자라지 않은 것을 보고, ‘왜 그럴까’를 탐구하다가 고라니가 무청을 뜯어먹어 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은 결국 잎이 없으니 광합성 작용이 안되어 그랬다는 걸 알게된다. 긱종 오염과 미세먼지 등의 환경문제도 농작물들의 생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깨닫는다.
아이들은 무를 캐서 즉석에서 무전을 지져 먹기도 한다. 아이들이 햄이나 소시지 대신 밭에서 캐낸 것들로 즉석요리를 해먹는 것을 본 인근 농부들은 ‘별 희한한 녀석들 다 보겠네’라며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아이들은 고구마와 감자를 캐 배낭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아 집에 가져간다. 낑낑대며 메고 온 배낭을 집에 부려놓으며 ‘엄마 내가 이거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라고 고생담을 늘여놓는다. 그리고 엄마가 찐 감자를 내오면 바로 ‘이거 내 감자야’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애써 자기가 가꾼 작물에 대한 애착으로 채소를 하나도 남김없이 먹는다. 편식하는 아아란 코끼리유치원 사전엔 없다.
이 아이들은 한겨울에 무주로 3박4일 캠프를 가는 것을 비롯해 걸핏하면 캠프를 가는데, 그런 연수원에서 교사나 학부모들의 도움 없이 조막만한 아이들이 캠핑도구와 짐들을 옮기는 것을 보면, ‘아동 학대 아니냐’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나 자기 물건은 자기가 옮긴다는 아이들이다. 그런데도 이 유치원은 경쟁율이 너무 쎄서 입학하는게 하늘의 별따기다. 더구나 학부모들 직업군 가운데 압도적 1위가 초등학교 교사다. 초등학교 교사 학모모들은 ‘받아쓰기는 꼴등인데, 인기는 짱인 이 유치원 출신 아이들 눈여겨 보게 된다’고 했다. 이 아이들은 뒤늦게 뭔가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면 남다른 지구력을 발휘하곤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만이 아니라 학부모가 달라진다
유치원에서 일회용품 안 쓰기 등 환경적 삶이 몸에 배인 아이들은 집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부모를 가르치기 일쑤다. 또한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해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고사리손을 호호 불며 연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아이들이니, 부모인들 달라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기만 살고, 제 자식만 살리려다 보니, 세상이 이 지경’이라는 엄지는 ‘코끼리’의 학부모라면 적어도 2~3개의 엔지오를 후원할 것을 권유한다. 우리가 달라졌으니, 세상을 달라지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 욕심으로 자식의 앞날을 망치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우라고 한다.
김승수 전주시장도 세 자녀를 모두 ‘코끼리’에 보냈다. 김시장은 “큰아이가 고교 1학년때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1년 뒤 제 길을 찾았다며 국립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견해했다.
지난해엔 유치원들이 도매금으로 비판을 받자 엄지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며 유치원을 접으려들자 현코(재학생 코끼리)와 졸코(졸업한 코끼리) 학부모들까지 총출동해 ‘붕어빵 교육이 아닌 코끼리만의 특성 교육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며, 십시일반으로 1억 원 가량을 갹출해서 위기의 ‘코끼리’를 살려냈다. 이런 성원에 엄지는 관허가를 반납하고 ‘꼬마코끼리 가는 길’이란 이름으로 정부지원 없는 공동육아로 ‘코끼리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28일은 코끼리유치원 창립 30돌 행사가 전주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엔 6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졸코들은 목걸이 선물을 들고와 어려서부터 마음근육을 키워준 엄지에게 감사를 표했고, 20년 넘게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동거동락해 온 스쿨버스기사 두 ‘아찌’에게도 감사의 선물을 안겨줬다. 그많은 인원이 야외파티를 여는데도 도시락을 먹으며 아무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아 역시 ‘코끼리들’란 소리를 들었다. 이 행사엔 ’코끼리’가 이제 정부·교육청과 무관한 민간단체가 됐는데도 진보교육감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직접 와서 ‘코끼리의 존재 이유’를 축하했다.
◇금암동, 전주를 변화시키는 마중물
‘코끼리’ 교육이 유치원에서 끝나기를 원치 않은 졸코부모들이 집단으로 움직여 완주 삼우초와 진안 장승초를 혁신학교의 대명사로 키우는데 일조했다. 또 전주시가 사람사는 생태도시로 키우기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야호 아이숲, 야호 생태숲, 야호 유아숲 등의 사업은 모두 ‘코끼리 교육’이 준 영감에서 비롯됐다고 김 시장이 공공연하게 밝힐 정도다. 2023년 8월 새만금에 전 세계 청소년 5만 여명의 스카우트들이 모여 펼칠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한 주역인 이동훈·김유빛나라 등의 스카우트들도 ‘코끼리’ 출신들이다.
이동훈(34)씨는 엄지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며 4년 전 금암동에 내려와 사무실과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코끼리 가는길’ 이란 커뮤니티센터를 열었다. 그곳에서 ‘코끼리’의 교육을 더 잇고 싶어하는 아이들 8명을 모아 ‘8살 인생학교’를 열어 요일별로 판소리와 농사, 사진 등을 함께한다. 젊은 그가 등장하면서 오래된 골목길에 생기가 돈다. 그의 선배 김효빈 씨가 지난해 해달별이란 카페를 열어 벌써 젊은이들이 적지않게 몰려들고 있다. 공방도 생겼다. ’코끼리’ 출신 부부인 오영빈(전북대병원 의사)·소문정(기업은행 행원) 부부 등 여러 젊은이들이 자주 ‘코끼리 가는 길’에 모여 작당을 시작했다. 전주에 또 하나의 명소 ‘코끼리들의 마을공동체’가 탄생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