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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본촌 소재 '덕천재(德川齋)' 에 대한 심층 고찰
이 글은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일선 김씨(一善 金氏 = 善山 金氏) 문중의 ‘덕천재(德川齋)’ 현판에 새겨진 재실 건립기(齋記)다.
글의 작성자는 일제강점기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활동했던 영남 유학의 대가이자 면우 곽종석 선생의 문인인 중재(重齋) 김황(金榥, 1896~1978) 선생이다. 성리학적 도통론(道統論)과 수류(水流)의 철학적 비유, 경전 및 선현의 명구를 깊이 있게 연구한 학자로 당대에 있어 우리나라 유학자 중에서 '甲'이었던 인물이다.
■. 德川齋記
1. 昆陽爲邑, 在嶠嶺南陬, 屬泗川郡. 曰昆明里者, 一善金氏世居也. 以其世居故, 亦多世葬墳塋, 卽其地而爲之齋所, 而供歲事之具.
2. 宿昔金氏, 其先江湖文康公之裔. 文康公之十世孫, 有諱天澄、天溢兄弟, 俱避[溢]暑其窩齋, 蓋其有違於世, 而思欲潛光晦迹也. 始自居昌南下, 卜細洞尋, 後復移居[尊]于此. 昆明之與細洞可相望也, 而今此齋之扁以德川, 取其德川下流也.
3. 天道之得於心者謂之德, 之爲德自有其源, 源地而流, 是之謂川. 脈絡分明, 而往之不息, 期竟達于江海. 朱子觀瀾詞有云: “觀川流之不息, 吾道體之無窮.” 其嗟嘆也深矣!
4. 粵若江湖先生直學之心法, 上接圃冶之傳, 下啓畢、蠹、暄、靜之緖, 觀乎居昌之有一源亭而可徵也. 迺其後裔之流落一隅者, 猶能不忘乎追先, 旣爲之齋以昭其所自來, 仍揭之扁寓諸源流之義. 升降出入, 顧瞻在玆, 薦羞燕語, 感念于是. 則雖於道體之無窮, 未敢遽言, 其在奉承先德、垂裕後昆之方, 要亦不爲無助. 可不敬哉! 可不勉哉!
5. 齋之始作, 在往歲甲寅之春, 其族人丙秀爲首[頌]擧攦, 繼又同其後孫柄璿, 來請余記, 而勗之甚勤. 不可辭, 則爲說其名義以副之.
乙卯春, 義城 金榥 記.
◐. 문단별 상세 한글 번역
[1문단 : 사천 곤명과 일선 김氏의 세거 배경]
곤양(昆陽)은 고을로서 영남의 남쪽 구석 사천군(泗川郡)에 속해 있는데, ‘곤명리(昆明里)’라 불리는 곳은 일선 김씨(一善 金氏)가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다. 대대로 살아온 까닭에 선조들의 묘소 또한 많이 모여 있어, 바로 그 땅에 재실(齋所)을 지어 매년 올리는 제사(歲事)의 기구를 갖추어 두었다.
[2문단 : 입향조의 내력과 ‘덕천재' 호의 유래]
지나온 날의 김씨 문중을 돌아보면, 그 선조는 강호(江湖) 문강공(文康公, 김숙자)의 후손이다. 문강공의 10세손에 휘(諱) 천징(天澄)과 천일(天溢) 형제가 계셨는데, 두 분 모두 와재(窩齋, 은거하는 옴집)에서 세속의 번잡함을 피하셨으니[避暑], 대개 세상의 뜻과 어긋남이 있어 학문의 빛을 은폐하고 자취를 숨기고자[潛光晦迹] 함이었다. 처음에 거창(居昌)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세동(細洞)에 터를 잡으셨고, 뒤에 다시 이곳(곤명)으로 옮겨 와 살게 되셨다[移居]. 곤명리와 세동은 서로 바라보이는 거리인데, 이제 이 재실의 현판을 ‘덕천(德川)’이라 한 것은 그곳이 덕천강(德川江)의 하류에 위치한다는 점을 취한 것이다.
[3문단 : ‘덕(德)’과 ‘천(川)’의 성리학적 의미 분석]
하늘의 도(天道)가 사람 마음에 체득된 것을 ‘덕(德)’이라 하고, 덕이 됨에는 자연히 그 근원이 있으니, 근원지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천(川, 시내/강)’이라 한다. 맥락이 분명하여 끊임없이 흘러가 마침내 넓은 강과 바다에 도달하는 법이다. 주자(朱子)의 〈관란사(觀瀾詞)〉에 이르기를, “시냇물의 쉬지 않고 흐름을 보며 우리 도체(道體)의 무궁함을 깨닫노라” 하였으니, 그 탄식함이 참으로 깊도다!
[4문단 : 도통의 계승과 재실 건립 숭조 정신]
돌아보건대 강호(江湖) 선생의 올바른 학문의 심법(心法)은 위로는 포은(圃隱) 정몽주와 야은(冶隱) 길재의 전수를 받고, 아래로는 점필재(畢 : 김종직), 일두(蠹 : 정여창), 한훤당(暄 : 김굉필), 정암(靜 : 조광조)의 학문적 계통을 열었으니, 거창에 ‘일원정(一源亭)’이라는 정자가 있음을 보아도 이를 증험할 수 있다. 이에 시골 한 모퉁이에 떨어져 사는 그 후손들이 오히려 선조를 추모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이미 재실을 지어 자신이 비롯된 근원을 밝히고, 이어 현판을 내걸어 근원과 줄기(源流)의 뜻을 담았도다. 오르내리고 출입하며 이곳을 돌아보고, 제수를 올리고 친족들이 담소하며 이곳에서 감회에 젖는다면, 비록 도체(道體)의 무궁함까지는 감히 선뜻 말하지 못할지라도 선조의 덕을 받들어 계승하고 후손에게 풍요로움을 물려주는[垂裕後昆] 방도에 있어 결코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며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5문단 : 건립 경위 및 발기인명]
재실을 처음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 갑인년(1974년) 봄이었는데, 그 종족(宗族)인 병수(丙秀)가 주동이 되어 일을 처리하였고, 이어 후손 병선(柄璿)과 함께 나에게 찾아와 기문(記文)을 청하며 매우 간곡히 권하였다. 사양할 수 없어 그 이름의 뜻(名義)을 설명하여 그들의 청에 부응하노라.
을묘년(1975년) 봄 의성(義城) 김황(金榥) 씀.
◐. 현판 원문 정본(正本) 및 교감(校勘) 현판 각석 과정이나 필사 과정에서 초서·행서체를 잘못 해석하여 발생한 탈자 및 오자를 바로잡아 정본으로 표기해 보았다.
( )안의 글은 현판에 쓰인 글인데 의미상 맞지 않는다.
교정한 글의 초서가 마치 현판에 쓰인 글과 비슷하여 전형적으로 오독하기 쉬운 글자들이기에 문맥이 통하도록 교정해 보았다.
가. 俱溢暑 → 俱避暑 (함께 세속을 피하여)
교감 근거 (어휘 및 자형) : ‘구일서(俱溢暑)’는 한문 어법상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은거하여 학문에 힘쓰는 유학자의 삶을 표현할 때 쓰는 ‘피서(避暑)’ 또는 ‘피세(避世)’가 맥락이다. 책받침(辶) 변이 들어가는 ‘避(피)’자의 초서체가 ‘溢(일)’자로 잘못 인출된 것 같다.
나. 移尊于此 → 移居于此 (이곳으로 옮겨 와 살다)
교감 근거 (입향 용례) : 거창 세동에서 곤명리로 거주지를 옮긴 입향(入鄕) 사실을 서술하는 대목이다. 한문 기문에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이거(移居)’라 표현하며, ‘이존(移尊)’은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초서체 ‘居(거)’의 아랫부분 형태가 ‘尊(존)’자의 복잡한 자획과 비슷해 보여 일어난 오독일 가능성이 있다..
다. 爲頌擧攦 → 爲首擧攦 (주동이 되어 일을 주관함)
교감 근거 (문중 관용어) : 재실 건립을 추진할 때 발기인이 되어 주동하는 사람을 ‘위수(爲首)’라 하고, 일을 구체적으로 차려 진행하는 것을 ‘거려(擧攦)’라 한다. ‘首(수)’자가 현판 서체에 따라 ‘頌(송)’자로 잘못 해석되는 전형적인 오획류다.
◐. 인용된 고사(故事)의 심층 해설
이 글은 유학적 깊이가 매우 높은 문장으로, 여러 경전과 성리학의 핵심 명구가 인용되었다.
가. 潛光晦迹(잠광회적)
'진서(晉書)' 외 다수의 글 : 자신의 재능과 빛을 숨기고 세상에 자취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은거함을 뜻함. 입향조 형제의 은일(隱逸)의 삶을 묘사.
경전과 성리학의 핵심 사상의 글귀 '천도지득어심자위지덕(天道之得於心者謂之德)'
나. '德者 得也 (덕이란 체득하는 것이다)' 에서 유래. 하늘의 이치(天道)가 내 마음에 온전히 체득된 상태를 ‘덕(德)’이라 정의함.
관천류지불식 오도체지무궁(觀川流之不息 吾道體之無窮) : 흐르는 물을 보노라면 그침이 없다. 나의 도체가 다함이 없다. 朱子 《사서집주(四書集注)》
다. 일원정
거창군 남상면에 위치한 정자 강호 김숙자 선생의 학문적 근원(一源)을 기리기 위해 거창에 세운 정자로, 덕천(德川)이라는 명칭이 그 근원에서 비롯된 물줄기임을 고증함.
라. 垂裕後昆(수유후곤) : '너그러움과 덕을 모범으로 내려주어 후손들을 풍요롭게 하고 길러준다' 는 뜻. 선조의 덕업을 이어받아 후손에게 덕을 물려줌을 의미한다. 상서(尙書) 주서(周書)에서 인용한 글이다.
◐, 덕천강(德川江)과 덕천재(德川齋) : 덕천강은 지리산 천왕봉 남쪽에서 발원하여 산청, 진주, 사천(곤명)을 거쳐 진양호로 들어가는 강이다. 지리적 이름인 ‘덕천’을 성리학적 ‘덕의 근원(源)과 흐름(川)’으로 승화시켜 재실의 이름을 격상시켰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찬자 김황(重齋 金榥, 1896~1978) 선생은 영남 유학의 정통을 이은 유학자로, 한말 격변기 속에서도 한학의 전통과 성리학의 맥을 지켜낸 인물인데, 사천·진주·산청 지역 주요 재실의 기문(記文)을 다수 작성하였다. 덕천재(德川齋)의 입구 문인 ‘저존문(著存門)’과 문중 모임 및 강론이 이루어지는 ‘취규당(聚奎堂)’은 유교의 핵심 가치인 ‘효(孝: 선조 추모)’와 ‘제(悌/文: 문풍 진흥과 화목)’를 상징하는 현판이다.
■. 현판의 종합적 구조
덕천재의 공간 배치는 다음과 같은 정교한 성리학적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 덕천재(德川齋) : 선조의 덕과 도통의 무궁함을 기리는 ‘본재(本齋)’
◐, 저존문(著存門) : 재실 입구에서 추모와 효(孝)의 마음을 정제하는 ‘입덕(入德)의 문’
◐, 취규당(聚奎堂) : 후손과 유학자들이 모여 문운을 논하고 화목을 다지는 ‘화목·학문의 전당’
1. 저존문 (著存門)
1) 문자적 의미
著 (나타날 저 : 현저할 저) : 신령이 눈앞에 분명하게 나타남.
存 (있을 존 : 살아계실 존) : 조상이 마치 눈앞에 온전히 살아 계시는 듯함.
"선조의 신령이 현저하게 나타나시고(著) 살아 계신 듯 계심(存)을 마음에 새기며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이다.
2) 출전 및 원문
출전 : '예기(禮記) 제24편' 제의(祭義)
원문 구절 : “致愛則存, 致愨則著. 著存不忘乎心.” : 지극한 사랑을 다하면 계신 듯 느껴지고[存], 지극한 공경을 다하면 환하게 나타나시니[著], 그 나타나심과 계심[著存]을 마음에 잊지 않는다.
3) 현판의 의의 및 맥락
유교의 제례와 추모는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손의 ‘지극한 사랑(致愛)’과 ‘지극한 정성/공경(致愨)’이 전제될 때 조상의 신령이 비로소 제 자리에 임하신다는 견해다.
주련의 ‘如見如聞(여견여문 : 모습을 보는 듯 소리를 듣는 듯함)’ 및 ‘履露履霜(이로이상)’의 경지와 바로 통하는 구절로, 재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을 바로잡고 선조를 눈앞에 모시는 듯한 삼가는 태도를 요구하는 의미다.
2. 취규당 (聚奎堂)
1) 문자적 의미
聚 (모일 취) : 한자리에 모이다, 모으다.
奎 (별 이름 규 : 규수 규) : 28수(宿) 중 15번째 별자리인 ‘규수(奎宿)’ : "문운(文運)과 학문을 관장하는 규성(奎星)이 모여들듯, 문중의 인재들과 선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문을 진흥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전당"이라는 뜻이다.
2) ‘규(奎)’의 유교적 의미와 출전
규수(奎宿)의 상징 : 동양 천문학 및 성리학에서 ‘규성(奎星)’은 문운(文運), 문장(文章), 그리고 인재(人才)를 주관하는 하늘의 별이다.
출전 및 고사 : 한서(漢書)〈고제기(高帝紀), 수서(隋書) 〈천문지(天文志)〉 등에 전하는 ‘오성취규(五星聚奎)’ 고사.
하늘의 다섯 별(금·목·수·화·토)이 규수(奎宿) 별자리에 일렬로 모이는 현상을 ‘오성취규’라 하며, 이는 천하에 문풍(文風)이 크게 일어나고 뛰어난 문사(文士)와 인재가 대거 배출되는 대길(大吉)의 징조로 여겼다.
■. 재실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
이 주련(柱聯)은 앞서 다룬 덕천재(德川齋)의 기문(記文) 내용과 정밀하게 호응하며, 문강공(文康公) 강호(江湖) 김숙자 선생의 덕업 계승, 제례에 임하는 효심, 그리고 성리학적 도체(道體)의 무궁함을 6구(3연의 대구)로 나누어 노래하고 있다.
◐. 주련 한글 번역 및 해설
제1연 : 선조의 덕업과 효훈 계승
祖述文康之大德(조술문강지대덕) : 문강공(文康公) 선조의 위대한 덕을 조술(祖述)하여 이어받고,
憲章愛日之嘉謨(헌장애일지가모) : 愛日堂 선조의 훌륭한 가르침을 본보기(憲章)로 삼을 지어다.
일선 김씨의 문중을 일으키고 사림 학통의 효시가 된 강호 김숙자(시호: 文康) 선생의 성리학적 덕망과, 어버이가 살아계신 시간을 아끼며 정성을 다했던 '애일(愛日)'의 효행을 후손들이 본받겠다는 다짐이다.
제2연: 제례에 임하는 효심과 정성
感時而履露履霜(감시이이로이상) : 계절의 변화에 감회에 젖어 이슬을 밟고 서리를 밟으며,
將事而如見如聞(장사이여견여문) : 제사를 올릴 때에는 선조의 모습을 보는 듯 목소리를 듣는 듯하도다.
세월이 흘러 봄이 되어 이슬이 내리고 가을·겨울에 서리가 찌면 선조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며, 제례를 올릴 때는 마치 선조의 음성과 모습이 눈앞에 환히 살아있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제례의 본질을 표현했다.
제3연 : 덕천강의 수류와 도체(道體)의 무궁함
請看德川之不息(청간덕천지불식) : 저 맑고 푸른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덕천강 물을 보라,
須知道體之無窮(수지도체지무궁) : 우리 도체(道體)의 무궁함을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리라.
재실 앞을 흐르는 덕천강(德川江)의 끊이지 않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성리학의 학통과 우주 자연의 진리(道體) 또한 영원히 그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함을 깨우치는 구절이다.
◐, 주련 구절별 경전 및 고사 인용 출처
★, 祖述 / 憲章 중용(中庸) 제30장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공자께서는 요순의 가르침을 조술하시고,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헌장으로 삼으셨다.)
선대의 가르침을 조술(조상의 업적을 받들어 계승함)하고 헌장(법도로 삼아 준수함)한다는 유교의 근본 계승 의식을 담았다.
★, 愛日之嘉謨
서경(書經) 〈대우모〉
“孝子愛日” (효자는 어버이를 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여 하루의 시간을 아낀다) + “嘉謨嘉猷” (훌륭한 계책과 교훈)
어버이에 대한 효성을 아낌없이 다하라는 지극한 효훈(孝訓)을 뜻한다.
★, 履露履霜《예기(禮記)》 〈제의(祭義)〉
“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春 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
서리와 이슬이 내릴 때 군자가 이를 밟으면 선조 생각에 절로 슬프고 애통한 마음이 생긴다는 구절에서 비롯된 추모의 대표적 성어다.
★, 如見如聞
예기(禮記) 〈제의(祭義)〉
“祭如在 祭神如神在” (제사 지낼 때는 조상이 계신 듯이 함) “肅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 (정성을 다하면 선조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함)
제사를 지낼 때 신명이 감동하여 조상의 모습과 목소리가 실제로 느껴질 만큼 지극정성을 다하는 태도이다.
★, 請看~ 須知~
주자(朱子) 〈관란사(觀瀾詞)〉
“觀川流之不息 吾道體之無窮” : 시냇물의 쉬지 않고 흐름을 보며 우리 도체의 무궁함을 깨닫노라
공자가 시냇가에서 "逝者如斯夫" :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라고 탄식한 이래, 주자가 이를 성리학적 본체론으로 정리한 명구를 덕천강의 지명에 맞게 집어넣어 대구로 완성한 것이다.
우리 문중이 지닌 '德川齋'에는 이러한 심오한 뜻이 숨쉬고 있다. 의미를 다시한번 새기고, 나를 있게한 근원인 조상에 대한 숭조(崇祖)의 정신을 잘 계승했으면 하는 의미에서 종합적으로 조명하여 이 글을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