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마음 사전"에서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잘 웃을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 칠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줄 안다.
고민스럽고 복잡한 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 시킬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줄 안다.
유쾌함에는 복잡함을 줄인 흔적이
상쾌함에는 불순물을 줄인 흔적이
경쾌함에는 무게를 줄인 흔적이
통쾌함에는 앙금을 없앤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때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때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때 경쾌해지고
지리한 장마처럼 오랜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될때 통쾌해진다.
나쁜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 질수는 없지만
통쾌해지기도 하는걸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이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동정 vs. 연민>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 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걸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긍심을 느낀다면,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요컨데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 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팔을 뻗어 도움을 내밀수 밖에 없을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 지라도, 내용은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호감에 대해서...>
떠오르는 단어들: 관심, 사랑, 유혹, 연모, 사모, 눈길, 매혹, 접근, 눈빛,마음, 전달,...
존경.
존경은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취하고 있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히 표출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동경하던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앞에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점때문에 질투와 존경은 동기가 같지만, 자세 하나로 전혀 다른길을 간다.
존경은 이미 겸허히 흔들고 있는 백기이며, 적어도 한수 아래임을 여실히 깨닫고 엎드리는 의식과 같다.
빛에 비추어 보면 그 백기에는 복사가 불가능 하도록 장치된 지폐의 밑그림 처럼 영원한 노스텔지어가 새겨져 있다.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선망, 그래서 감정 바깥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그만큼 깨끗하고 단정하다.
동경.
존경과 유사한 상태이지만, 존경에는있는 것들이 부재한다.
존경은 이성적인 이유들을 각주처럼 거느린다면, 동경은 각주가 없다.
근거라는 것이 언제나막연하고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이 다른곳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는 반면, 동경은 쉽게 이동한다. 단, 막막한 거리감이 늘 확보된다면, 끝없이 붙박여 있을수도 있다.
동경에는 또한, 존경보다는 좀더 복합적인 욕망이 그리고 흠모 보다는 좀더 나른한 욕망이 개입되 있다.
흠모와 열광
존경에 동경과 매혹이 재빠르게 섞여들때가 흠모이다.
존경에 열정이 화학작용을 일으킬때에는 열광이다.
흠모는 열광보다는 느리며, 대상과의 거리도 멀다. 느리고 멀기때문에 동경과 비슷하지만, 흠모가 앓고 있는 상태라면, 동경은 그렇지가 않다.
동경과 흠모는 언제나 도로교통법 처럼 대상과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진행된다.
그에 비하면, 열광은 위험하다. 질주를 해야함으로 여러차선을 넘나들며 앞지르기를 한다.
향후,호감보다 질주의 환의를 느끼게 되는것도 열광의 위험한 요소다.
옹호
존경이 저절로 생긴 마음가짐이라면, 옹호는 일종의 다짐이다.
대상이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껴안는다. 대상에 미흡한 점에 대한 이해나 적극적인 덮음 같은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다짐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미흡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미흡함을 끌어 안는 자세. 그렇기 때문에 거칠고 난폭하며 편협 하지만 그 편견에 자리에 기꺼이 서있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신뢰가 간혹 배신이라는 종착점으로 나아간다면, 옹호는 그렇지가 않다. 신뢰를 상실하는 순간에도 조차, 어떤식으로든 논리를 뒤져내 훼손된 마음을 정화시킨다. 어떤경우 가진 훼손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신뢰를 과시하는 과감함 같은것도 진정한 옹호는 행하고야만다.
좋아하다.
호감에 대한 일차적인 정서이면서도, 정확하게 분화하지 않은 상태를 뭉뚱그릴때 쓰기 좋은 말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 있을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말이 꺼려질때 흔히 쓰며, 존경에도 흠모에도 신뢰에도 매혹에도 귀속시키기 미흡한 지점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어쩌면 더 지나봐야 알수 있겠다라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해치고 지나온 곳에 대해 온정을 표하는 예의바른 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짓기에는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호감의어휘를 빗겨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좋아한다는 말은 이런저런것들에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 버려진 영역에서 싹을 틔우는 호감들을 아우르는 말임은 분명하다.
반하다.
반하다라는 말앞에는 홀딱이라는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에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100%감정에만 의존된, 의조만이 아니라 그런 선택임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 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일이 아니다.
매혹되다.
홀림이 근거를 찾아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아직근거를 찾지 못해 불안정한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이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만한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감정은 다시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 부터 자유로워 질수도 있다. 그럴땐 매혹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의 훈장과도 같다.

김영하의 '책 읽어주는 팟 캐스트에'에 소개된 책으로
"글 쓰는 사람은 단어 하나하나 그 미세한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구분해서 쓸 줄 안다"면서
그걸 잘 보여주는 책으로 김소연의 "마음 사진"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멀리 호주에 있는 손녀가 듣고 메일로 보내줘서 여기 옮깁니다.
첫댓글 위 글이 갖는 뜻만 잘 분별해도 좋은 글 쓸 수 있을 텐데요....
유괘, 상쾌, 경쾌, 통괘, 동정, 연민.홀딱 반하다.................아이고야~!^^*
'반하다'.. 한 가지만 선택해야지..
매우 유사한 단어라도 미세한 뉘앙스가 있어
말을 하거나 글을 쓸때 좋은 자료로 유용한 글 입니다.
좋은 글 내려주심에 깊은 감사 올립니다.
찹 좋은 글을 읽히시는군요.. 복사해 갑니다..
우리 카페도 상쾌한 카페가 되면 좋겠습니다.
재미도 있고 좋은 글이네요. 내 카페로 빌려가요
동정과 연민의 차이, 동정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연민은 보다 동질적인 감정이 아닌가요
좋은글 잘 읽고 퍼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