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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전통 공연 양식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말과 노래로 풀어내는 구비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창으로 연행되는 <춘향가> 등의 다섯 마당과 함께, 창으로 전승되지 않지만 소설 등 기록 형태로 전해지는 작품들도 있다. 기록마다 레퍼토리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12개의 작품들이 연행되면서 ‘판소리 열두 마당’을 이룬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최근 판소리에 바탕을 둔 ‘이날치 밴드’가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엄격한 신분제에 기반한 조선시대에 판소리 창자들은 신분적으로는 천민으로 여겨졌으며, 그들은 기록이 아닌 스승으로부터 직접 혹독한 수련 과정을 통해서 판소리를 전수받았다. 그래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 폭포 소리를 뚫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완성해서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공연을 함으로써 실력과 함께 이름이 알려지면, 때로는 명창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조선의 고종조에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적지 않은 판소리 창자들이 발굴되어, 궁궐의 무대에 올라 왕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공연 예술인 판소리는 그 내용이 소설로도 알려져 이른바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양식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와 함께 조선 후기의 지식인 가운데 판소리 공연을 보고, 그 내용을 한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그것이 이른바 ‘관극시’라는 양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위나 이유원 등이 대표적인 관극시를 남긴 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전통을 21세기에 되살린다는 의미로 판소리 창자들에 대한 기록을 한시로 남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21세기의 관극시’라고 붙였던 것이다.
실상 더 이상 한시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형식이 아니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한시로 ‘관극시’를 남긴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가 한국철학을 전공하면서, 무형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기에 그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판소리였던 것이라 짐작된다. 판소리사에 활약한 60여명의 창자들을 선정하고, 각각의 인물들을 한시로 형상화하여 모두 64수의 작품으로 창작하였다. 그 숫자 또한 주역의 64괘에 맞추었다고 하니, 저자 나름의 의미 부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시라는 형식이 대중들에게 어렵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에, 저자는 자신과 다른 이들의 해설을 시에 덧붙여 두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인물은 이미 문학사에 거론된 조선시대 판소리 창자들로부터 시작된다. 그 처음은 고수관을 비롯한 명창들을 앞세우고 있다. 어쨌든 21세기에 한시를 통해서 판소리 명창들의 삶을 그려낸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고수관은 조선시대인 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판소리 명창으로, 자유자재의 목청을 구사해서 '딴청일쑤'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1행의 신자하는 자하라는 호를 지닌 신위를 일컫는데, 그는 당시 판소리 공연 현장을 보고 이른바 '관극시'를 남겼던 인물이다. 작가는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고수관이 춘향가 한 바탕을 연창하는 모습을 시에 담아내고 있다.
다음으로 송흥록은 조선 말기의 판소리 명창으로, 고수관과 염계달 그리고 모흥감과 더불어 '고송염모'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내용에 나오는 월광선사로부터 지침을 받아 판소리의 가사와 가락을 정리하였고, 특히 <춘향가>에서 춘향이 옥에 갇혀 소리를 하는 대목인 '옥중가'를 부를 때면 마치 귀신이 곡하는 소리와 같다고 하여 '귀곡성'이라고 칭해질 정도였다. 송흥록이 소리를 시작하면, 소리가 우렁차서 마치 바람과 비를 부르는 듯하다고 하여 '호풍환우'라 평가되기도 했다. 송흥록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느린 곡조인 '진양조'를 완성했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모두 64수의 한시와 그 해설을 통해서, 판소리사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에 주목하고 있다.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일별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잇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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