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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본 형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했을 때, 김구는 이 말을 듣고서 ‘뭉우리돌의 정신’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일본 형사의 말에서 지주는 일본이며, 뭉우리돌은 농사에 방해되는 존재로서 곧 일본에 항거하는 조선 사람들을 가리키는 의미였을 것이다. '뭉우리돌'은 밭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일컫는 말이지만, 이처럼 김구에 의해서 일본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뭉우리돌처럼 박혀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을 찾아서 기리며, 사진과 글로 그들의 행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 책은 사진작가인 저자가 해외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후손을 만나고 유적지를 기록으로 남겨놓은 작업의 산물이다. 인도와 멕시코 그리고 쿠바와 미국을 찾아서, 그들의 후손을 만나고 현재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해방이 된 지 70년을 훌쩍 넘은 지금 이 시점까지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했던 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당시 일제에 항거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에게 여전히 이념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훈장을 주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른바 '신친일파'들의 무례한 언동을 지켜보면서, 새삼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한편, 독립운동에 대한 우리의 시야가 좁았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와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저자가 답사한 인도와 멕시코 그리고 쿠바 등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후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에 한국광복군이 파견되고, 그들이 연합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상당한 전공을 세웧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더욱이 1943년 인도에 파견되어 연합군을 이끌며 싸웠던 독립운동가 한지성은 사회주의 계열 정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후 숙청되었지만, 그러한 전력으로 인해 여전히 독립운동가로서 서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의 경력과는 상관없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가 찾은 두 번째 행선지는 남미의 멕시코인데, 이곳은 애니깽이라고 불리던 선인장 농장의 노동자로 이민을 갔던 것을 잘 알려져 있다. 1905년 이민 브로커에 속아 달콤한 꿈을 꾸고 도착한 멕시코에서의 삶은 애니깽 농장에서의 노예생활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1990년대 영화 <애니깽>이 만들어져 그 내용을 통해 당시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한때 그들과 후손들의 삶이 조명되기도 했었다. 비록 힘든 노동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기원하면서, 한인회를 조직하고 독립자금을 모으면서 무장투쟁을 준비하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의 흔적을 좇아 멕시코를 답사하면서, 이제는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당시의 기억들을 간직한 이들을 찾아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덧 3세대 혹은 4세대가 이민자 후손의 대부분을 이루면서, 이제는 그들에게 멕시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일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럼에도 그들 가운데 일부는 한인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저자를 맞아 선조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억들과 후손들의 현재의 모습까지 그대로 보여줬던 것이다. 답사했던 지역의 자연풍광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때로는 쓸쓸한 흔적만이 남겨져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유적지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자가 찾은 세 번째 나라는 바로 쿠바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비록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이지만, 쿠바는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멕시코의 가혹한 애니깽 농장에서 벗어나, 다시 살 길을 찾았던 이들의 당시 역사가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지닌 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이제는 그 흔적조차 희미해진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는 저자의 작업은 그래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남미의 혁명가로 잘 알려진 체 게바라와 함께 투쟁을 했던 이를 포함헤서, 쿠바에서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저자는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인해서 한국과는 아직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지 못하지만,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그곳에서 활동을 했던 이들에 관한 연구와 조사가 이뤄져 제대로 기록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 행선지인 미국은 상대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활동했던 이들에 관한 기록이 풍부하고, 여전히 당시를 증언해줄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한인들의 조직과 활동이 활발하지만, 또한 각자가 누리고 있는 경제력이나 정치적 입장도 적지 않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용만과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서로 상반된 활동의 흔적과 이념의 찌꺼기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막강한 단체의 후원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독립운동의 흔적으로 찾아다니는 저자를 '공신력 없는 사진가'라고 치부하는 어느 노신사의 말 한마디가 그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서재필과 이승만의 '과와 공'을 논하면서 슬쩍 박정희를 들먹이는 그 노신사와 헤어지면서,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미국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인도와 멕시코 그리고 쿠바에서 저자가 접했던 사연들에 대해서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를 겪었던 이들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직접 현장을 답사하여 사진과 기록으로 남긴 저자의 작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이 더욱 적실하게 기억되는 다가왔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흔적을 좇아 사람을 만나서 기록하고, 또 당시의 유적을 사진에 담으면서 저자는 '그동안 우린 이런 역사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만 같다'고 고백한다. 이 책을 읽고 인도와 멕시코 그리고 쿠바 등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 독립투쟁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삶을 접하면서 독자인 나 역시 그러한 생각에 동의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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