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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2번 말씀
제목 : 친구가 되어지기
본문 : 요 15:13-1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아멘.
쉽지 않은 구절입니다. 우린 지난 몇 주간에 걸쳐서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맺으시는 열매에 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가지로써, 우리가 가집니다. 가지로써 나무가 맺는 열매를 그저 가지에 주렁주렁 달기만 하면 되는 은혜의 가지들이라 그랬습니다. 우리는요. 그런데 궁극적으로 그 열매의 정체가 자기부인이었죠, 그죠? 그 자기부인은 십자가의 다른 이름이며 순종의 다른 이름이며 율법 지킴의 다른 이름이며 사랑의 다른 이름이며 거룩의 다른 이름이에요. 기억나세요? 그렇게 우리는 거저, 값없이 열매를 맺게 되는 그야말로 부지중에 수지맞은 이들인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가? 논리적으로는 그렇다고 대답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조금 찜찜하죠, 그죠?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 나면 논리적으로는 맞아요. 그런데 뭔가 찜찜합니다. 그게 성도의 마음이에요.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친구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던 그 예수님, 성자 예수님의 순종의 삶을 닮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까지 공부를 했어요. 그래도 썩 괜찮은 그림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예수님을 쫓아가는 삶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순종의 삶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친구이신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삶인지 하나의 예를 들어서 오늘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친구가 된 우리가 친구로서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일,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가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랬어요, 예수님이. 그런데 우리는 도저히 지금도 안 되잖아요, 그것이,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시고 우리를 예수님의 친구삼아 주신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예수님의 친구가 된 우리가 그 친구이신 예수님에게 해야 할 것은 과연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보잔 말이에요, 오늘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친구를 사귀어라, 하고 권고를 하는 대목이 나오죠.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친구삼아 주시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친구 사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그 친구 사귐의 행위를 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구를 사귀어라, 라고 말씀해놓은 곳이 있어요. 거기가 누가복음 16장입니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여러분이 잘 아시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요.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특히 원어로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절대 이해가 불가능한 그런 비윱니다. 제가 여러 번 여기에 대해서 조금씩 설명을 해드렸었는데 오늘은 조금 더 여러분들에게 헬라어 원어를 풀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게 제가 규명을 해드릴게요. 값없이 거저 친구라는 신분을 받은 성도들에게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어라, 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 말은 너희들도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친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인 거예요. 그냥 잘 따라와 보세요.
후반부에 ‘없어질 때‘ 라고 번역이 된 에클리페는요 쇠하다, 죽다, 멈추다라는 뜻을 지닌 에클레이포의 가정법 동사에요. 그래서 그 가정법 동사가 호탄이라는 단어와 함께 ’재물이 다하여 없어질 때’ 이런 뜻이에요. 이 세상의 재물이 다하여 없어질 때. 그러니까 더 이상 세상 재물을 사용할 수 없을 때. 그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원한 처소라는 그 대비적인 그 표현을 볼 때요 ‘없어질 때’ 란 내세에 들어가는 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없어질 때라는 것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재물이 다 없어질 때, 세상적 재물이 없어질 때, 불의한 재물이 다 없어질 때,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내세에 들어갈 때에‘ 이런 뜻이에요. 그때에 영원한 처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의의 재물, 영원한 천국의 보화와 비교해서 그 가치중립적인 그 세속적 재물, 그 효용가치의 한계적 그 속성을 지닌 하늘의 그 보화와는 완전히 반대로 그 효용가치의 한계적 속성을 지닌 이 세상 재물을 희생해서 친구를 사귀어내야 한다는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힘은, 재물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힘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아낌없이 써서 사용하여 친구를 만들어내는 데에 쓰여야 하는 것이다, 라는 그런 뜻이에요. 제가 전에도 한번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친구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예요. 너희들 나를 친구 삼아야 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일차적으로 그 친구는 하나님이에요. 왜냐하면 그 친구가 이 세상이 없어질 때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할 거라 그러잖아요? 인간 중에 누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없어질 때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한 분이에요, 그죠? 하나님 한 분이란 말입니다. 그 친구를 사귀어라. 그 친구가 이 세상 것들이 없어질 때 너희들을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것이다,에서 그 친구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을 친구 삼아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인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잖아요? 아직도 원수처럼 사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적지는 그 하나님을 친구 삼아 그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로 변해가는 거, 성숙되어져 가는 것, 지어져 가는 것을 우리의 목표지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좀 더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릴게요. 위 구절이 들어있는 복음서의 내용 중에 가장 난해한 비유 중의 하나라고 불리우는 그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오늘 한번 다 읽어보자고요.
눅 16:1-13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눈으로 잘 숙독하면서 따라오세요]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자,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주는 거예요. 재물이라는 건 이 세상의 모든 힘을 축약하여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든 것을 재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힘,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합의해놓은 세상의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도대체 어떻게 써야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 종이 될 수 있는가? 그가 친구란 말에요. 나중에 그를 친구라고 부르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예수의 친구로 불림을 받은 우리가 이 비유를 잘 공부하면 어떻게 예수의 친구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배울 수 있단 말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그 뒤에 붙어있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와 한 쌍이에요.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열 드라크마의 비유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가 세 개가 연달아 붙어 나오죠. 그리고 뒤에 우리가 지금 잃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가 이렇게 붙어 있단 말에요. 그러니까 이 다섯 비유는 뭔가 한 맥을 가지고 지금 예수님에 의해 주어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 교회에게.
1절에 ‘또한’ 이라고 번역이 된 데카이라는 단어는 And also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앞의 세 비유와 뒤에 두 비유가 시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거를 개역성경은 그냥 또한 이라고 번역이 되어서 조금 이해가 미흡한데 And also 라고 번역을 하면 딱 맞아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에 의해 다섯 가지 비유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거예요. 앞의 세 비유는요 나중에 제가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하나님은 잃어버린 당신의 자녀를 반드시 찾아내고야 마신다는 것을 점층적인 기법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잃어버린 양의 비유, 열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셋 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충분히 설명을 듣지 않으면 곡해할만한 부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아니 세상에 양 아흔 아홉 마리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잃어버린 말썽꾸러기 한 마리만 찾으러 가는 게 말이 돼요? 아흔 아홉 마리는 뭐에요? 도대체? 그리고 아니 하늘에 있는 회개할 것이 없는 자들, 그들보다 잃어버린 양 하나가 돌아오는 게 하늘에서 더 천군천사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뭐에요? 다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까요? 그냥? 한 이틀에 한번씩? 하나님 기뻐하시게. 그런 이야기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건 나중에 제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릴 테니까.
일단 고 세 가지 비유는 지금 백 마리 양 중에 하나 잃어버린 거.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 잃어버린 거. 두 아들 중에 하나 잃어버린 거. 요렇게 점층적으로 점점점점 소중하고 중요한 것으로, 점층적 기법으로 설명되고 있는 거예요.
한 드라크마가 한 데나리온이에요. 그러니까 노동자 하루 품삯. 큰돈은 아니죠? 그러나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 여자가 왜 그렇게 그것을 목숨 걸고 찾았느냐하면, 유대인들의 집은 부자 집이래야 창문 하나 있어요. 그렇지 않고는 전부 꽉 막힌 곳이거든요. 그래서 낮에도 껌껌하단 말이죠. 그 여자가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찾았잖아요, 그죠? 그거는 열 드라크마라는 것은 여자들이 남편에게 혼수품으로 받았던 거예요. 그래서 열 드라크마를 하나로 묶어서 그거는 나중에 채권자들이 와서 집안을 차압을 할 때도 못 가져갔던 거예요. 여자들이 너무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 남편의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주무르면서 예전에 우리 남편이 나를 이렇게 사랑했지. 그렇고 꼭 소중하게 갖고 있던 거거든요. 그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열 드라크마의 가치는 전체가 제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죽도록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하나 잃어버렸을 때 히브리여자가 그걸 안 찾겠느냐?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거기에다가 두 아들 중에 하나가 나갔는데 그 아들 안 찾겠느냐?
그러니까 그 세 가지 비유는 뭐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찾아내신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까? 그러면 그건 전지전능이라는 속성에 위배되잖아요. 그건 하나님이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짓고 떠난 거예요. 그걸 그냥 하나님이 잃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이지 우리가 떠난 거란 말이죠. 그렇게 잃어버린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가서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And also, 또한 뒤에 이어지는 건 뭐에요? 그렇게 찾아온 하나님의 친구들은 이 땅에서 그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소유와 은사를 사용해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되는가를 설명해주는 거예요. 그 전체를 그래서 교회에게 지금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비유로.
그러니까 오늘 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는 성도는 과연 무엇을 하며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성도의 본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보자고요.
1절을 보면 마치 청지기가 주어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원문을 보면 이런 뜻이에요.
‘한 청지기를 소유한 부자가 있었다.’ 라는 뜻이에요. 정확히 직역을 하면. 한 청지기를 소유한 부자가 있었다. 그 전체 비유의 주어는 부자입니다. 부자. 불의한 청지기가 주어가 아니에요. 부자가 자기의 종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로 각색을 해놓은 거예요.
그 부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1절에서 ‘있는데’ 라고 번역이 된 단어 에이케는 소유하다, 라는 동사의 미완료 과거 능동태에요. 그러니까 그 종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주인의 소유였다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깊이 연구해보지 않고는 개역성경 하나만 갖고는 이 비유의 내용들을 올바로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시제나 성, 수, 격 이런 것들 안에 헬라어는 굉장히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거를 잘 배우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면은 그 종이 주인, 하나님에 의해 창세전부터 택해져서 오랫동안 소유되어져 있던 그런 소유된 백성이란 뜻이에요. 그것을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종이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고 있다, 그래요. 거기서 소유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휘파르콘타는 평판, 명성, 소유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소유 중에 특히 평판이나 Reputation이나 명성을 가리키는 단어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 종은 주인의 평판을 깎아먹고 있었다라고 번역을 하는 게 훨씬 더 좋은 번역이에요. 그리고 거기에서 허비하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 디아스코르피전이라는 단어는요 디아스코르피조라는 동사의 현재분사에요. 그 단어는요 분리, Separate, 라는 뜻으로 쓰이는 전치사 디아, 라는 단어와 흩뿌리다, 분산시키다, 라는 뜻의 동사 스코르피조의 합성어로써 그러니까 모아 있는 사람이나 물건들을 흩어지게 할 때 쓰는 단어에요.
그것들을 종합해볼 때 주인의 집에서 주인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종이, 근데 그 종은 오래전부터 이 주인에 의해 소유되어 있던 종이에요.
그 종이 주인의 뜻에 반하여 주인의 소유나 주인의 사람들을 반복적이며 습관적이며 지속적으로 흩어버려 그 주인의 평판을 깎아먹고 있었다, 란 뜻이에요. 굉장히 어렵죠? 어려울 거 없어요, 여러분. 이거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단순히 이런 비유를 보시면서 주인 거 떼어먹으면 큰일 나는구나, 그럼 벌 받는 거구나? 그런 이야기는 국민하고 도덕책에도 있어요. 성경이 그런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긴 이야기로 집어넣어 놓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생각을 하세요. 모든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생각해보라고 했죠, 그죠? 그렇게 번역해보려고 애를 써보라고 했잖아요. 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결코 주인의 재산 같은 것을 종이 허비했다, 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재산이나 재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겨진 선교적 사명에 관한 이야기에요.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을 거니까 너희는 가서 뭐하라? 내 증인이 되어 내 백성들을 나에게로 끌어와라, 란 뜻이에요. 이게 지금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가신 유일한 명령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왜 존재하는 거예요? 구원받았으면 그냥 천국 가도 되잖아요. 왜 존재하는 거죠? 우리의 구원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으로 확인해가면서, 경험해가면서 아, 이 구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이해를 하게 되며 우리가 성숙되어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가면서 그 과정에 아직 주님께 돌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는 도구로 쓰시기 위해 우리를 이 땅에 놔두신 거란 말입니다. 그 선교적 사명.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 하나님의 친구들을 모으는 거예요. 그 역할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걸 우리는 지상 대 명령이라 불러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바로 이 지상 대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서 아직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사명자로 존재하는 거예요. 사명자.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 은사 상황 사건 사람 이런 것들은 전부 왜 주어진 거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는 자로 지어져 가는 데에 다른 말로, 우리가 다른 이들의 친구가 되는 데에 필요한 것들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많을 필요도 없고 너무 적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자기에게 맡겨진 세상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는 데 필요한 만큼, 고만큼만 하나님이 주어준 거예요.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함께 하시면서 그 일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안에 그 예수님이 지금 계세요? 안 계세요? 세상 끝 날까지 쫓아간다, 그랬으니까. 내가 침 삼킬 동안도 안 놓치고 너 세상 끝 날까지 쫓아갈 거야, 라고 이야기하셨잖아요.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을 쫓아다니시면서 바로 여러분을 친구로 바꿔내시는 거예요. 친구가 된다는 건 뭐다? 나 이외에 다른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나를 비워낼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내시는 거예요. 그게 친구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에 의해 그 예수의 친구가 된 이들을 그 예수와 방불한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세상 사람들의 친구로 만들어내시는 거예요. 예수의 친구로 만들어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 온전히 순종하는 자로 바꾸어내시는 것이에요. 우리는 그 길에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유를 처가시기도 하고 빼앗아 가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하게 하시기도 하는 거고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기도 하는 거예요. 왜? 친구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만 복종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목숨을 바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목숨 바치고 있는 그 대상들, 돈에 목숨 바치고 있으면 고거 뺏아가고, 자식에 목숨 바치고 있으면 고거에 해를 가하고 건강에 목숨 바치고 있으면 그걸 처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구로 만들려고. 돈의 친구로 만들면 안 되잖아요. 명예의 친구로 만들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이 내 친구라고 부른 아이들이 자꾸 딴 애들하고 가서 놀고 있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을 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니까 때때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고민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사들을 하나님의 지상 대 명령에 순종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되는 거예요. 한 마디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길에 필요한 거예요. 거기에 다 써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달란트의 비유인 거예요.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여기에 보면요 작은일, 큰일 요런 대조들이 나오는데요 요게 조금 전에 우리가 읽었던 불의한 청지기에 나오는 그 대조와 정확히 같은 것들입니다. 잘 보세요]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비유를 상당히들 오해하고 있죠? 그죠? 이 비유는 자기 종들에게 무언가를 부탁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난 주인과 종들의 이야기에요. 마태복음 28장에서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곳으로 떠나셨잖아요? 그 부탁을, 너 내가 준 이 달란트로 너 많은 이익을 남겨라, 라는 그 주인의 그 명령으로 대체하여 설명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로 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대단한 일을 해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주인이 시킨 일을 주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니 뜻이 아닌, 니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그 주인이 시킨, 니가 아무리 그렇게 남겨봐야 그거 다 니거 아니고 다 주인 거 될 거 뻔한 거 알면서도 너는 그 주인이 시킨 일을 할 수 있니? 물어보는 거예요, 이건요. 이 땅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달란트로 대단한 것들을 이루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많은 이익을 남겨라, 라고 명령을 했다는 건 27절을 보면 알죠. 그죠?
너 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놨어? 취리하는 자, 이자 주는 데에 갖다 넣어놨으면 이자라도 받을 거 아냐? 마치 이 주인은 돈에 환장한 것 같애요. 그죠? 그러나 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왜 내 말을 안 들었냐를 질책하는 것입니다. 남기라고 했으면은 남겨야 되는 거예요. 그냥 달란트를 주고 가면서 얘들아 다 그냥 땅에 묻어 놔라, 그랬으면 묻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왜 너는, 쟤네들은 내 말을 듣고 그 말에 순종하여 이익을 남겨 놨다. 결과물을 만들어놨는데 너는 왜 나를 곡해하여, 여기 보면 나오잖아요?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내 주인을 곡해하고 있단 말에요. 왜 나를 곡해하여 이걸 그냥 묻어뒀다가 그냥 나한테 갖고와? 너는 내 말이 말 같지 않니? 왜 내 말에 순종하지 못했어? 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중에 뭐라 그러느냐 하면은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래요. 이거는 곤조부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있는 자는 받아서 더 풍성해지고 없는 자는 완전히 망해서 있는 것 까지 빼앗긴다는 뜻은 내가 일 안 하는 자는 나중에 그냥 다 뺏아가지고 발가벗겨서 지옥에 넣을 거야, 라는 말이 아니에요.
있는 자라는 건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은사로 하나님이 시킨 일을 순종하여 열심히 해내는 이들에게는 이 땅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풍요와 만족과 기쁨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걸 곡해하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쓰고 있는 자들은? 그 하늘의 풍요와 기쁨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다 빼앗긴다는 뜻이에요. 자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은사로 이 땅에서 뭘 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시킨 일을 해야 돼요. 근데 하나님이 시킨 일은 뭐였어요? 딱 하나밖에 없어요. 땅 끝까지 이르러 사람들을 이 친구로 사귀어 내 친구로 만들어내라, 라는 거예요. 그게 지상 대 명령입니다. 그걸 다른 말로 바꾸면 너 만을 사랑하던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네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해라, 라는 말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에게 명령하고 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준 달란트로 바로 그 일을 해내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그 사람은 한 달란트밖에 안 줬기 때문에 삐져가지고. 딴 애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나 줘놓고 나는 한 달란트밖에 안 줘서 나는 이 작은 달란트 갖고 할 일이 없어서 그냥 묻어두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혼을 내시더라, 뭐 이렇게 소설을 쓰는데 달란트, 여기서는 금달란트라 그러죠? 금달란트를 작은 돈으로 환산을 하면 노동자가 20년 동안 매일같이 일해서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놨을 때에 그 금액이에요. 오늘날로 따지면 백만 불에서 이백만 불정도 되는 돈이란 말에요. 큰돈입니다. 한 달란트가 작은 돈이 아니란 말에요. 작은 거 줬다는 게 아닙니다. 달란트는 무조건 큰 거예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게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더라도,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달란트, 주차하는 달란트, 남들 보면 웃어주는 달란트, 가르치는 달란트 이런 모든 것들이 모양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부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들이란 뜻이에요. 그 가치 있는 은사를 갖고 너희들은 하나님의 시키는 일을 해라, 라는 뜻입니다. 어떨 때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 여러분 자신에게 얼마나 분노했어요? 그 분노가 하나님께로 이어졌죠? 왜 나는 개뿔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재주가 없어. 아뇨 여러분은 분명히 뭔가 가지고 계세요. 카리스마, 은사라는 뜻은 카리스, 은혜라는 단어에서 파생이 된 단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카리스를 받은 모든 이들은 이미 카리스마, 그 은사를 받은 거예요. 가장 큰 은사, 구원이라는 은사를 받은 거예요. 거기에 여러분이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친구로 만드는 데 필요한 뭔가의 재주들이 있어요. 근데 세상이 그걸 가치 없다고 확 밀어 놔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조차 여러분이 갖고 있는 걸 가치 없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놈의 설거지 하는 거 이게 무슨 은사야? 설거지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 교회에 없으면 여러분 예배 전체가 무너진다는 거 아세요? 밥을 기쁜 마음으로 해서 맛있게 요리를 해서 교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이가 이 공동체 안에 없으면 다른 것들도 하나, 하나 어그러져가는 거예요. 그게 없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멋지게 설교를 하고 있지만 저희 집사람이 저희 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다림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저는 여기서 설교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모든 은사는 달란트입니다. 굉장한 것들이에요. 그걸 우리가 우리의 수준에서 요건 가치 있는 거, 요건 엄청난 거, 요건 저급한 거, 요건 쓸모없는 거, 이렇게 구별시켜 놔버린 거예요. 그래서 뭐 방언이나 하고 예언이나 하면 어이구 대단한 은사. 남을 섬겨주고 봉사하고 숨어서 열심히 헌신하고 하는 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거. 이렇게 폄하를 시켜놨기 때문에 그 은사들이 하나님이 주신 그 귀중한 은사들이 지금 이렇게 홀대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든 은사는 다 합력하여 우리가 하나님 백성들을 친구 삼는 데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에게도 그 소중한 은사들이 다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
자,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을 사용하여, 우리의 소유와 은사를 다 쏟아 부어 친구를 사귀어야 되는 거예요. 주인이 우리에게 맡긴, 그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나오죠? 주인이 청지기에게 맡긴 그걸 갖고 이가 친구를 사귀었더니 왜 주인 걸 갖고 지가 친구를 사귀어요? 근데 주인이 칭찬하지 않습니까? 지혜 있는 자라고 칭찬한단 말에요. 마찬가지에요. 여러분에게 주어진 거, 여러분 거라고 착각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 거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 거예요. 백 퍼센트. 사도바울도 이야기하죠? 니가 받지 않은 게 어딨다고 니걸 갖고 자랑해? 이야기하잖아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거지만 그걸 여러분 것처럼 쓸 수 있게 해주신 거예요. 이 청지기가 주인 걸, 지 맘대로 지 것처럼 쓰고 있어요. 그걸 사용하여 친구를 사귀고 있단 말입니다. 그거 옳은 거야! 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갖고 있는 것으로 지금 친구를 사귀고 계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고 계세요? 아니면 그걸 목적삼아 그걸 더 불리려고 친구들을 깔아뭉개고 있습니까? 경쟁자로 적으로 삼아 그들을 오히려 깔아뭉개고 계세요? 아니면 그걸 사용하여 친구로 삼고 계십니까? 그거 구별해보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인간들은 뭐 대단한 재산을 모으고 대단한 일을 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도와드리려고 해요. 이 불의한 청지기가 그랬습니다. 주인이 자기에게 맡겨둔 돈으로 지 맘대로 고리대금업을 해가지고 재산을 늘려놨어요. 근데 주인은 네가 내 평판을 지금 깎아먹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네가 내 소유를 허비하고 있구나, 라는 그 말이 뭐라 그랬어요? 니가 내 평판을 깎아먹고 있구나, 란 뜻이란 말에요. 왜 내가 맡긴 그 재물로 모으라고 했던 내 소유, 내 사람들을 왜 네가 오히려 흩어버리고 있느냐? 그리고 그 일로 말미암아 왜 주인인 나의 평판을 네가 오히려 깎아먹고 있느냐? 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심판대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일갈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걸 지금 우리에게 미리 들려주시는 거예요. 미리. 너희들마저 그렇게 끝까지 살겠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절 후반부에 보면 아주 중요한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단순히 주인의 재물을 축낸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종을 질책하는 그런 비유가 아니라 마지막 종말 때 하나님의 회계와 정산과 결산과 심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힌트하고 있는 단어가 나와요. 1절뿐만이 아니라 2절 3절 계속해서 심판의 언어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6장 1절 후반부를 한번 볼게요.
눅 16:1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여기 보면 그 청지기의 소행이 주인에게 ‘들린지라’ 라고 그러죠, 그죠? 여기서 ‘들린지라’ 라고 번역이 된 이 헬라어 디에블레떼는 디아블로의 수동태에요. 디아블로는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디아블로. 데보.,이게 밀고 되었다, 고발되었다. Was accused 그 동사에서 참소자, 디모데전서 3장 11절에 보면 나오죠? 참소라는 단어 나오죠? 그건 주로 누가 하는 거예요? 참소하는 자? 사단 마귀가 하는 거잖아요? 고 단어가 거기 쓰이는 거예요. 디아블로스 그게 참소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 디아블로에서 나온 거거든요. 70인역 성경 LXX 그거는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거잖아요?
그 LXX 에 보면은 그 디아블로스라는 단어가 어디 나오는지 아세요? 욥기에 나오잖아요. 욥기 1장 9절에 사단이 욥을 참소하잖아요, 그죠? 참소자. 그 단어에요, 디아블로스가.
이 단어는 신약에서 유일하게 여기 한 곳에만 쓰였는데요. 왜 누가가 사단의 참소를 의미하는 이 디에블레떼라는 단어를 굳이 여기에 썼겠느냔 말에요.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지금 이 이야기는 단순히 주인이 종의 잘못을 지적하고 내가 니가 저지른 그 잘못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라는 그런 평번한 이야기를 하는데 굳이 왜 이 사단과 관련 있는 이 심판의 언어를 여기에다 갖가 쓰냔 말입니다. 딱 한번밖에 안 나와요, 여기에 신약성경에. 그러니까 다른 성경기자들이 거의 안 쓰던 단어를 누가가 일부러 끌어다가 지금 여기에다가 기록을 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는 지금 이 불의한 청지기의 이야기는 마지막 심판 때에 사단의 참소를 받고 있는 우리에요, 우리. 모든 인간은 사단의 참소를 받아요. 그러나 그 참소를 예수 그리스도가 막아주는 것뿐이지, 우리도 참소를 받아야 돼요. 우리의 이 행위 사단이 참소하죠? 그러나 예수님이 미리 우리 대신에 벌을 받았기 때문에 없어지는, 기각이 되는 것이지 우리도 사단으로부터 참소를 받는단 말입니다.
그 마지막 때에 그 사단의 참소를 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 경계와 경고의 말씀이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도 분명히 이런 참소를 받게 될 텐데 너희들 자신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그렇게 살고 있니? 묻는 거예요. 마치 주인이 준 금달란트를 갖고 그 종들이 행한 일을 판단 받는 그 달란트의 비유와 흡사하죠? 거기서도 심판이 일어나잖아요? 너는 왜 내가 시키는 일 안 했어? 너는 잘했네, 심판이 일어나잖아요? 그 이야기가 요 단어 하나에 다 들어있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이 비유는 주인이 맡긴 것을 갖고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한 종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비유인 거예요. 이 비유는 이 시대의 교회에게 하나님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메시지이기도 한 거예요. 교회야, 너희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뭔데? 도대체 너희들 지금 뭐 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똑바로 들으셔야 됩니다.
그 1절 후반부를 개역성경에서 빠져있는 접속사 그 카이와 지시대명사 후토스를 살려서 다시 번역을 하면, 이래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에게 고발이 되었다.’ 라는 뜻이에요. 내가 네 잘못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이렇게 번역이 돼 있잖아요? 그 말을 정확히 번역하면 빠져있는 단어 다 넣어서 번역을 하면, ‘근데 이 사람이 그에게 고발이 되었다’라는 뜻이에요. ‘그’ 가 누굴까요? 안 밝히죠?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마귀인 거예요. 사단. 그것은 청지기의 불의는 결국 심판 날에 주인에게 모두 알려지게 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사단은 여러분이 저지른 모든 일을 낱낱이 하나님 앞에 가서 다 고할 것입니다. 다 일러바칠 거예요. 근데 그 참소하는 자가 예수 때문에 땅에 떨어졌다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 참소가 이제 여러분을 어떻게 못해요. 일사부재리의 원칙.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예수에게 이미 벌을 해버리셨어요. 그래서 한 사건으로 두 번 기소가 안 돼요. 할렐루야! ㅎ. 큰일 날 뻔했죠?
그렇게 주인에게 실망을 안겨준 종에게 주인이 어떻게 탄식하는지 보세요.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돼요. 2절 보면,
눅 16: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이게 의문문 같이 보이죠? 감탄문이에요. 원어를 보면, 내가 사단이 참소해서, 사단이 고발을 해서 너에게 대해서 들었다. 근데 네가 나에게 어찌 그럴 수가 있어? 탄식하는 거예요. 감탄문.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사단에게 마귀에게 너에 대해서 들었는데 네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내 앞에서 그렇게 살을 수가 있어? “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실망과 탄식이 강하게 담겨 있는 어절인 거예요. 누가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절절이 전달하는 거예요. 심판대 앞에서 당신의 자녀를 참소하는 사단의 고발을 받아야 하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미리 작은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나중에 내가 사단의 참소를 받고 너에 대해서 이렇게 탄식을 하면 어떡할 거야? 우리에게 물으시는 거예요. 2절 후반부로 가면 이 장면이,
눅 16:2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회계와 결산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더 선명해지는데 거기에 보면 주인이 종에게 ’네 보던 일을 셈하라‘ 라고 이야기하죠? 네 보던 일을 셈하라. 거기에서 ’보던 일‘ 이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가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직분‘, 이런 뜻이에요. 오이코노미야스. 하나님에 의해서 맡겨진 직무. 이런 뜻이에요. 그 단어가 어디에 쓰였는지 한번 볼까요? 고린도전서로 가면 그 단어가 똑같이 쓰인 데가 있어요. 제가 공동번역으로 읽어드릴게요. 공동번역이 요 부분을 해석을 잘했더라고요.
고전 9:17 <공동번역>
만일 내가 내 자의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의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 입니다.
이 전체가 다 오이코노미야스에요. ‘네 보던 일.’ 그러니까 바꿔서 말하면 이런 말이죠. 하나님이 너에게 직무로 주신 일, 그거 인제 고만, 끝! 왜? 심판 받아야 되니까요. 네, 그 단어가 여기에 똑같이 쓰였어요. 거기에 ‘셈하라’ 라는 단어도 역시 심판의 용어에요. 그 어구는 헬라어로 아포도스 턴 로건이에요. 그 어구가 쓰인 곳을 찾아보면요, 그 어구가 심판의 용어라는 것이 훨씬 선명해져요.
벧전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그 심판자 앞에서 그들의 죄를 직고 하리라에서 이 ‘직고 하리라’ 가 똑같은 단어에요.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보면,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이 단어가 똑같은 단어에요. ‘심문을 받으리니’.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정확히 이제. 다 뜻을 아셨으니까 이제 여러분이 아는 지식으로 다시 번역을 해보세요. 너에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그 직무를 이제 그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심문 받을 준비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심판의 용어들을 갖다가 누가가 이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먹으라고. 헬라어에 능통했던 사람들은 그 단어들을 접하면서 이게 어떤 뜻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겠죠? 그런데 여러분은 모르니까 가르침의 직분을 준 사람에게 배우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직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종말의 일을 미리 알게 된 종이 자신이 심판을 당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됐어요. 다시 누가복음 16장 그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로 가서 4절을 보세요.
눅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자, 주인이 그 종의 잘못을 직접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 종이 아이구 내가 여태까지 헛수고했구나?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었네. 이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알았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때부터 뭘 해요? 이 사람이? 빚진 자들을,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전부 불러서 지 맘대로 장부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일을 가리켜 주인이 참 지혜로운 자네? 참 잘했다. 라고 칭찬을 해주는 것입니다. 고기에서 많이들 헷갈리잖아요? 그런 악한 놈을 왜 칭찬했을까? 그러지 않습니까?
눅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여기서 기름이라고 번역이 된 엘라이로는 감람나무를 가리키는 엘라이야에서 나온 단어에요. 그러니까 감람유죠. 왜 그게 감람유인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냐면은, 감람나무 기름은 굉장히 비싼 것입니다. 감람나무 기름 백말은 감람나무 92그루에서 150그루, 그 정도에서 나온 열매를 짠 기름이에요. 그게 백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무 150그루에서 나온 감람열매를 따다가 그걸 짜면 겨우 백말 나오는 거예요. 그 가격이 천 데나리온입니다. 굉장히 큰돈이에요. 노동자가 3년을 죽어라고 일해야 돼요. 다 모아서 고 백말 살 수 있어요. 엄청난 돈을 빌린 거죠? 뿐만 아니라 밀 백석의 그 ‘석’, 코르스의 원형, 코르스는 삼백육십 리터에요.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은화 25데나리온이죠. 그러니까 밀 백석은 2500데나리온이죠. 그러니까 팔년에서 구년을 죽어라고 일 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에요.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돈을 빌렸어요. 빚진 자에요. 그건 누구를 상징할까요?
하나님 앞에 상상할 수도 없는 빚을 진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그 주인은 누굴까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턱없는 액수들이 여기에 등장을 하는 거죠. 당시 기름은 일 년에 100% 이자를 내야 한다고 그랬죠? 밀은 일 년에 25%의 이자를 받았어요. 그거는 역사서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율법에 고리대금업을 못하게 하게 되어 있었었는데 굶어죽는 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다 허락을 해줬다고 그러죠? 그때에 받은 관례적으로 받은 이자가 기름은 100% 밀은 25%. 그러니까 기름 50말을 빚진 사람은 100말을 빚진 것으로 미리 기록을 하고 가져가는 거예요. 왜? 걸리면 안 되니까. 나중에 이자까지 빌린 걸로 계산을 해서 차용증서를 쓰는 거예요. 그걸 이자 까고 50말로 그냥 원래대호 적어준 거예요. 밀은 25%니까 80석을 빌리면 100석을 빌렸다고 쓰는 거예요. 그거 20석을 깎아서 80석이라고 적게 해준 거예요.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주인에게는 손해가 없어요. 근데 이 종의 열심이 특심하여 이렇게 하면 주인이 기뻐할 줄 알았던 거예요.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많은 소유와 물질과 은사들이 있습니다. 달란트들이 있어요. 그거 갖고 여러분 하나님을 도우려고 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고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면서 내가 부인이 되고 다른 이들이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져 가는 데에 필요한 도구로 주신 것이지 그걸로 하나님의 일을 뭔가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물론 그게 하나님의 일을 돕는 건데, 하나님이 그렇게 쓰시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이 그래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열심히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뭘 받아내서 그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게 고지론입니다. 내가 뭔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고 큰 부자가 돼서 하나님을 유익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 그 자체가 오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거 원치 않으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로 그러니까 우리의 됨됨이를 지켜보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얼마나 도와줄까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안 도와주는 게 일하기가 훨씬 편하세요. 근데 우리를 도구로 써서 일하시기로 결정하신 것뿐이지.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어떤 일을 열심히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애들이 와갖고 그거 도와준다고 망치질 깨작깨작하면은 어떻게 돼요? 그 일 금방 망칩니다. ㅇㅇ 집사님이 그러더군요, 프로들이 일하는데 아마추어들이 오면 일이 더 더뎌진다고. 그런 거예요. 하나님만 프롭니다. 우리가 거기에 무슨 도움이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중에 우리에게 상줄 거리를 만들기 위해 동업자로 불러서 거추장스럽지만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것처럼 동업자로 우리를 불러주셨대요. 동업자. 이런 영광이 어딨습니까?
보세요, 우리가 조금 전에 확인한 것처럼 그 주인의 뜻은 그 주인이 맡긴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거였어요. 그 친구는 일차적으로 주인입니다. 근데 왜 이것이 지금 주인과 또 그가 친구로 사귀는 다른 사람들과 자꾸 이렇게 동일시되어서 표현이 되는가?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마태복음에 나오죠? 25장 31절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친구 삼는 그 일이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표현이 되어지는지가 나오는 거예요.
마 25:31-40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심판이 나오죠, 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보세요. 예수를 친구 삼으려 애쓰는 이들은 그것이 이 세상에서 다른 이웃들에게 투영이 되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친구 삼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는 것은 자기가 부인이 되어져 가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때에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그 길에서는 반드시 내가 나만을 위해서 살던 그 삶에서 돌이켜 다른 이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대로 여러분에게 다 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예수를 친구로 삼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나만을 위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고리대금을 해서라도, 그들을 밟아서라도 내 소유를 챙기려고 하고 그 일로 하나님께 뭔가를 띠어서 그분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 거예요.
그거는 성도의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삶은 바로 그런 거예요.
우리는 열심이 특심이어서 자꾸 하나님의 일을 돕겠다고 나서지만 하나님은 그것보다 먼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절대 이렇게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친구로 불림을 받을 수 없었다는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은 자라는 것을 오히려 굳게 붙들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동안 힘으로 여겼던 거, 그리고 이런 것으로는 하나님께 도움이 되겠지, 라고 우리가 쌓아놨던 것들 이런 것들을 오히려 헐어 나 이외에 다른 이들에게 섬김의 도구로 내어놓는 것이죠. 그걸 우리가 헌금이라고도 하고 봉사라고도 하고 구제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야기를 하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의 힘들에 착념하지 않고 그 힘들을 사용해서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친구가 되는 일이에요. 그렇게 종이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친구가 되고 있을 때 그 주인이 그 종을 어떻게 칭찬하는지가 굉장히 재밌습니다.
눅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은 이 세대의 아들들을 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이 세대의 아들들은 이 세상의 힘으로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잖아요? 그거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세상의 힘으로 이 세상의 미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지혜롭게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주신 그 은사와 소유를 갖고 하나님의 친구들을 사귀어 너희들의 진짜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라는 거예요. 그들이 더 지혜롭다. 너희들은 왜 그 일을 안 하고 있어?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자기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해낸 어떤 존재에게 아이, 잘했어 내 아들. 잘했어 내 딸. 이렇게 칭찬해주는 그 단어에요, 이게. 찬양하다는 뜻이에요. 네가 드디어 내 뜻을 알았구나? 하는 이야기에요. 언제 이 말을 해줬어요? 불의한 재물을 갖고, 이 세속적인 재물을 갖고 친구들을 사귀는 데 애를 쓰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하다보니까 그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더라는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뭐 대단한 거 하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미래를 준비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시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일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2절에 보면요 거기에 진실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줄 자가 누구냐? 라고 나오고,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이란 단어가 나오잖아요? 거기서 종이 그렇게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잘 나누어주는 것을 하는 것을 ‘이렇게 하는 것’ 이라고 이야기하죠? 그죠? 여기서 그 ‘하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포이에오인데 그 단어가 뭔지 아세요? 창조하다, 치유하다란 뜻이에요.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단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소유와 은사를 갖고 그것이 쓰여질 적당한 곳에 제대로 우리가 나누기 시작하면 거기에서 새 창조가 일어난다는 거. 하나님의 친구들이 새롭게 하나님의 친구로 창조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하나님의 친구들인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친구로써 어떻게 친구를 사귈 수가 있어요? 내 것을 털어내는 것입니다. 내 것을 챙기려고 했던 그 마음가짐에서 내 것을 털어내는 자리로 바꾸어져 가는 거예요. 근데 잘 안 되죠? 정말 잘 안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인생채찍 사람 막대기 시험, 고난 등을 때때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 복된 결과물 열매를 얻어내게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아니 여러 가지가 아니라 모든 일은 전부 합력하여 뭐를 이룬다? 선을 이루는 거예요. 여러분을 친구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친구로 만들어내기 위한 그 일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점철이 되어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아는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거죠.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힘든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일이 합력하여 나의 선을 이룬다는 것이 내가 배워서 알기 때문에 거기서도 기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짜 이게 복되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이 되겠죠, 그죠? 그러나 거기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이들은 절대 그렇게 못 살아요.
여러분 보세요. 도저히 우리는 안 되는 이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원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친구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죠? 그런 존재가 못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친구를 사귀어라, 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내가 반드시 너희를 내 친구로 만들어냈으므로 내가 너희도 예수와 같은 친구로 만들어낼 거야, 라는 결연한 의지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그렇게 고달픈 것입니다.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여러분은 지금 점점점점 늘 이기려고만 했던 자리에서 내려와 조금씩 지고 있어요. 그렇죠?
오늘도 제가 우리 교인 한분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옛날 같았으면 절대 포기할 수 없고 질 수 없는 건데 지금 나를 돌아보니까 내가 지고 있다는 것이죠. 신기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그 일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을 너무 폄하하지 마세요. 너무 여러분을 평가절하해서 이런 인간은 죽어도 싸. 절대 너는 불가능해. 이렇게 여러분을 평가절하하지 마세요.
여기서 ‘칭찬하다.’ 라는 이 단어, 에파이네오라는 이 단어는요 정확하게 Prase라는 뜻이에요. 찬양하다.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러분은 존귀한 분들입니다. 가치 있는 분들이에요. 지금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요. 하나님의 의지가 이렇게 결연해요. 그리고 반드시 여러분을 친구로 만들어내신대요. 지난주까지는 좋았죠? 그냥 아 예수가 그냥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었으니 우린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다. 근데 아니에요. 친구로 만들어주고 난 다음에 혹독하게 친구로 만들어가세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많이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 섬겨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죽으세요, 여러분. 우리가 한번 죽을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친구가 한 명 돌아오고. 우리가 두 번 죽을 때 하나님의 친구가 두 명이 돌아오고. 우리가 세 번 죽을 때 하나님의 친구가 세 명이 돌아오고. 그런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그까짓 거 뭐.
잘 안 될 땐 어떻게 해야 돼요? 기도하셔야 돼요. 잘 생각해보세요. 어떤 두 분이 싸웠어요. 절대 지기 싫어. 웬수가 됐어요. 그중에 누가 질 수가 있을까요? 절대 둘 다 못 지는 사람이에요. 기도하는 사람이 백 프로 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싸울 때 지고 싶으면 기도하세요. 이기고 싶으면 기도하지 마세요. 지고 싶을 때 기도하세요. 왜? 여러분이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백 프로 여러분에게 니가 져라, 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야, 너 가서 죽도록 밟어, 내가 책임질게! 하나님은 절대 안 그러세요. 백 프로 네가 져라, 라고 이야기하세요.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항상 져요. 그러나 그게 진짜 이기는 것입니다. 안 될 때 기도하세요. 여러분 기도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시면 안 됩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셔야 돼요.
여러분 그 기도를 하다보면요 그 기도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그 기도가 주는 은혜. 거기에 빠지면 여러분 철야하지 말라고 해도 철야하고요 금식하지 말라 그래도 그냥 기도하느라 밥을 안 먹게 돼요. 뭔가 목적이 있어서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 여러분 여러분이 뭔가에 은혜를 받고 뭔가에 매력을 느끼면 저절로 됩니다. 여기서 고스톱이나 빠찡코 하느라고 밤새고 밥도 안 먹고 이 삼 일 산 사람들 있죠? 여러분은 고스톱에게 은혜 받은 겁니다. 저절로 철야가 되죠? 저절로 금식이 돼요.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아보세요. 기도와 말씀 앞에 은혜를 받아보세요. 저절로 철야 돼요. 저절로 금식 됩니다, 여러분. 그리로 가야죠. 죽으세요. 안 될 때 뭐 하라?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