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이바 부인 이야기 (The Story about Mrs. Godiva)
존 콜리에 작 '레이디 고다이바' (Lady Godiva by John Collier.1898)
요 앞에 “시몬과 페로 이야기” 라는 게시글에 김붕래 선생님께서 댓글로 말씀해 주신 고다이바 부인 이름을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고다이바 부인 이름을 처음 듣는 분들은 웬 일본 부인인가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듯해서 간단한 소개를 통해 감동도 얻고 내막도 알면 좋지 않을까 싶어 간단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고다이바 부인을 복기하게 해주신 김붕래 선생님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긴 머리를 나부끼며 알몸으로 말을 타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애마부인도 아니고 남성들을 위한 누드화도 아닙니다. 유부녀인 그녀의 이름은 고다이바(Godiva) 부인입니다. 영어는 라틴어 및 온갖 유럽어가 짬뽕으로 뒤섞여 조화를 이루는 언어인지라 고디바 부인이라고도 하죠.
이 여인의 이름을 딴 고디바 초콜릿은 면세점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번화가에 있는 고디바 매장에서도 알몸으로 말을 타는 이 여인의 모습이 상표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누구이며 왜 알몸으로 말을 타야 했을까요. 여인은 정말 누드퍼포먼스를 한 걸까요.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습니다.
11세기 초 영국의 백성들은 북유럽 바이킹 데인족 출신의 왕인 크누트 1세의 폭정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갑니다. 크누트 1세가 정복전쟁에 나서면서 엄청난 전쟁자금이 필요했기에 과한 세금을 징수합니다. 지금도 데인족에게 내는 세금이라는 뜻의 ‘데인겔트’라는 단어가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영국 중서부 코번트리(Coventry) 지역의 영주이자 백작인 레오프릭 3세 (Leofric Earl of Mercia III)는 양선한 농민들의 고혈을 짜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크누트 왕과 같은 데인족 출신이었기에 그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 고다이바는 17세의 어린 나이 답지 않게 남편과 달리 그 누구보다 농민들의 애환을 보며 가슴 아파한 착한 여인이었습니다. 농민들의 고통과 한숨이 높아갈 때마다 고다이바는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왕실에서 내려오는 징수율을 맞추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금을 내고 나면 쭉정이밖에 남는 게 없는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고다이바 부인은 또 다시 세금을 내려달라고 남편을 조릅니다.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세금을 내려 주라고 조르는 아내에게 참다못한 영주는 소리를 지릅니다.
"저 멀리 고려라는 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소. 마른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 하지 말라고. 그리고 개 풀 뜯는 소리 집어 치우라는 말도 있소. 내가 세금을 거두고 싶어 그러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만 합시다. 혹시라도 천지가 개벽해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도는 일이 일어난다면 내려줄까 몰라도 다시는 세금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마시오.”
다른 사람도 아닌 영주의 아내가 알몸으로 말을 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웃음꺼리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영주는 아내의 입을 닫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을 상정한 것입니다.
“당신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농민소득세를 감면해 줄 수 있나요?”
정색을 하며 묻는 부인의 말에 영주는 코웃음으로 받아 넘깁니다.
“약속을 지키다마다요.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소만 과연 당신이 저런 무지렁이 농민들을 위해 그럴 자신이 있겠소? 그들을 위해 당신이 망신살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단 말이오?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 합시다.”
그 말을 들은 고다이바 부인은 번민 끝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마을을 돌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나는 알몸으로 말을 탈 테니 당신은 약속 이행으로 명예를 지키세요.”
고다이바 부인은 이 사실을 농노들에게 알렸고, 주민들은 백작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돌 때 집집마다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절대 내다보지 말자는 굳은 결의를 다짐합니다. 고다이바 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지나가는 날, 농민들은 집집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죠. 코번트리 마을은 쥐죽은 듯한 적막과 의도적 무관심에 휩싸이게 됩니다.
허나 부인의 알몸을 훔쳐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긴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톰이라는 노총각 양복장이였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고다이바 부인의 알몸에 대한 유혹을 참지 못해 문틈으로 고다이바의 알몸을 훔쳐보고 말았습니다. 그 황홀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톰은 눈이 멀어버리게 되고, 이 사건은 새로운 영단어를 탄생시킵니다. 즉 ‘훔쳐보는 톰’이라는 어원을 가진 관음증(Peeping Tom)이 그것입니다. 또 고디버이즘(Godivaism)이라고도 하죠.
저택의 창문에서 알몸으로 말을 타는 아내의 숭고한 모습을 조용히 내다보던 영주 레오프릭은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아내의 사랑스런 나신을 보며 비로소 백성들을 사랑하는 여민사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징수율을 낮추어 주민들의 조세부담을 크게 줄여줍니다. 게다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돼 마을을 잘 다스렸다고 하는군요.
벨기에 생산 고다이바 쵸콜렛 상자 이미지. 고다이바 부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존 클리에가 작품
으로 남겼고, 벨기에의 쵸콜릿 회사는 아름답고 고결한 고디바의 이름을 따 회사 이름을 지었다.
고다이바 부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고다이바 행진’은 1678년부터 영국 코벤트리 박람회의 정기행사가 되어 지금도 수년마다 치러지고 있답니다. 현재 영국 코번트리에는 고다이버의 알몸 동상(하단사진)이 있으며 해마다 고다이바 축제가 열려 (살색 스타킹으로 몸을 감싼 것이긴 하지만) 알몸으로 말을 타는 퍼포먼스가 열린다고 하네요. 벨기에는 고다이버의 이름 딴 '고디바' 쵸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생산해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이 같은 고다이바의 알몸 행진은 실재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농노들의 세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알몸으로 말을 타고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지나는 고다이바 부인 사건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죠. 다만 농노에게 자비를 베푼 고다이바 부인의 일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유난히 영웅적 전설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에 의해 재가공되어 만들어진 전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고다이바 부인의 일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었던 고다이바의 정신은 숭고해 보입니다. 지배자들의 권위와 힘에 정당하게 저항하는 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건 지배계층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읗 하면서 아래에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존 콜리에 작품 몇 점을 소개합니다.^^
존 콜리에 (John Collier, 1850~1934)
여성의 전신상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던 영국의 존 콜리에(John Collier, 1850~1934)는 당대 뛰어난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나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은 유명인의 초상을 그려서 알려지기도 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화나 전설에 기반한 소재들을 그의 작품에 끌어다 쓰는 것으로 더 명망이 높았다.
뱀이 이브(Eve)의 다리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그린 '릴리스'(Lilith, 1892)라는 작품도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다. 특히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 1898)도 그의 작품이다.
'레이디 고다이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도시에 순결과 기품의 상징인 백마를 등장시키고 간결하고 고전적인 구도로서 그녀의 희생정신을 보여주고 있는데, '레이디 고다이바'는 전설에 기반한 소재를 작품에 끌어다 쓴 것이다.
첫댓글 고디바 초콜릿도 생겨났군요.
혹 유럽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몇통 사다가 바렌타인데이 선물로 쓰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영원한 여성적인 것들이 남성들의 야만성을 잠재우는 이치를 새롭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정복하는 건 남자지만, 그런 남자를 정복하는 건 여자라는 말이 있나보군요.ㅎ
외국에 나가는 일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면세점에 들르는 일도 거의 없어
고디바 쵸콜렛이라는 게 있는줄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아이스크림도 있고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나갈 일이 있으면 제가 일부러라도 프레전트 샵이나 마트에 들러 찾아보겠습니다.^^
그림에 관한 평도 자료도 듬뿍 올려주시면 세상살이 짐도 가벼워지실 듯 해요 자연스레 이치를 생각하면 ㅎㅎ
고다이바의 누드도 작품 속 여인들의 나신도 눈부시게 아름다와요 저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ㅎㅎ
아네.. 그런 시절이 있으셨군요..므흣.. (이상 노코멘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요. 그림에 관한 평도 자료도 듬뿍 올리니까 세상살이 짐이 점점 무거워지더라구요.ㅋ
다음에 외국 나가면 고디바 쵸콜렛 한 상자 사다 드릴게요.
3천원 넘으면 못 사구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