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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표 환란’ 연재 시리즈 (5)>
“승리의 이름으로… 그러나 누구의 승리인가?”
1. 환란의 목적: ‘정결함’인가, ‘자기희생적 사랑의 완성’인가?
김 목사님은 짐승의 표 환난을 “하나님의 교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 편의 시험”이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회를 정결케 하신 것은 환난이 아니라, 자기 몸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자기를 위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고자 하셨다” (엡 5:25–27)
핍박이 교회를 정결하게 한다는 논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정결을 보조적인 방법으로 격하시킵니다. 고난은 정결의 수단이 아니라 정결 받은 자가 감당할 수 있는 훈련의 도구일 뿐입니다. 만일 환난이 없으면 교회가 불순하다는 전제를 깔면, 평화와 사랑 안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과 멀어진 교회입니까? 주님의 피 흘림만으로는 부족하단 말입니까?
2. 교회를 가르는 것: 일요일 법령인가, 십자가 복음인가?
김 목사님은 “일요일 법령이 교회를 가르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요일이 아닌, 십자가에서의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일어났으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1–32)
십자가가 복음의 심판 기준이지, 요일이나 제도나 법령이 아닙니다. 일요일을 지키는가 아닌가가 구원의 기준이 된다면, 그 복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율법의 정죄로 변질됩니다.
복음은 “누가 어느 날을 지켰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느 날에도 예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따라 살았는가?”에 의해 갈립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안식일을 지킨 자가 아니라, 이웃을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한 자를 알곡으로 불렀습니다.
3. 짐승의 표와 매매금지: 사랑이 통제받는 복음인가?
김 목사님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이 “경제적 매매 금지, 죽음의 위협”을 당할 것이라 경고하며, 디지털 화폐·일요일 휴업법·탄소 배출 억제 등을 그 증거로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핵심 메시지를 본질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구체화시켜, 종교적 음모론과 결합된 종말론으로 퇴화시킵니다.
계시록은 종교·경제 체계의 음모를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 짐승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피와 그 증언으로 이긴 자들’을 선포하는 복음의 책입니다 (계 12:11). 계시록의 중심은 “짐승의 표”가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양”의 승리입니다 (계 5:6).
짐승의 표는 외적 제도나 법률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거절하고 자기 이익과 권력을 따르는 영적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손과 이마에 표를 받았다는 것은 삶의 행위(손)와 내면의 가치(이마)가 짐승적 사고—즉 자기 중심, 폭력, 통제—에 굴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랑이 억지로 통제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강제가 아니라 초청이요, 협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짐승의 표는 일요일이 아니라, 예수의 길을 거절하고 권력의 길을 선택한 인간의 표식입니다.
4. ‘이겨야 한다’는 반복된 외침: 누구의 힘으로 이기는가?
김 목사님은 “계시록 2–3장의 이기는 자”에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이겨야만 구원받는다는 공로적 개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김의 주체를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믿음은 우리의 결단이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 존재를 의탁하는 자기 포기입니다. 계시록에서 이긴 자들은 스스로 무장해서 싸운 자들이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양을 따르며,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계 12:11).
“이기라”는 말은 강해져라가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지키고 싸우라는 초인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어린양의 길, 십자가의 길, 죽는 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처럼 사랑하기를 선택한 자들이 이긴 자들입니다.
5. 복음은 두려움으로 예언을 성취하지 않는다
김 목사님은 “재앙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 올 것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교회가 박해당할 것이다”, “일요일을 거부하면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다”, “디지털 화폐로 통제될 것이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순종을 강요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몰아내고 인간의 공포심을 부추깁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 4:18)
진정한 복음은 공포의 박해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자발적인 자기희생이 그 중심입니다. 주님은 징계와 환난으로 성도를 길들이는 사육사가 아니라, 자기 몸을 찢어 내어주며 자녀들을 품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결론: 승리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승리는 일요일을 거부한 자의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승리이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제자들에게 “요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적 문자 안에서 사람을 죽이려 했던 자들을 향해, 사랑의 법을 선언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바리새인처럼 ‘지켜야 산다’고 가르치지 않고,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짐승의 표를 이기는 자란 누구입니까?
*일요일을 지키지 않은 자입니까?
*아니면 칼날 앞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자입니까?
복음은 말합니다:
“짐승과 싸우되, 어린양이 이기나니 이는 그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심이라.” (계 17:14)
그 어린양이 이겼다면,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전장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는 십자가 아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계시록이 말하는 진짜 승리입니다.
[기도문: 주여, 우리는 요일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으로 이기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 당신 앞에 무릎 꿇습니다.
당신이 두려움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안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은 외칩니다.
요일을 지켜야 산다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그러나 주님, 당신은 외치지 않으셨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 이제는 너도 사랑하라.”
주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날짜가 아니라 당신의 심장이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일요일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배반하는 우리의 차가운 신앙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는 때로,
종교적 지식으로 복음을 가리고,
율법의 해석으로 은혜를 막으며,
예언의 암호로 예수의 얼굴을 감추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우리는 복음을 외쳤으나, 공포를 심었습니다.
계시록을 해석한다고 하며,
죽임당한 어린양 대신 짐승을 더 크게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의 복음은 어떤 법령보다 높고,
당신의 사랑은 어떤 짐승보다 강하며,
당신의 십자가는 어떤 환난보다 더 크고 깊은 승리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기도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피 묻은 손이 말씀하게 하소서.
“내가 너를 위해 죽었노라.
그러니 이제는 사랑으로 이기라.”
주님,
우리가 다시는 일요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법령을 복음보다 크다 말하지 않게 하시며,
다시는 예수님 없이 짐승만 외치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계시록의 환난 속에서도
심판이 아닌 사랑을 붙잡게 하소서.
표를 피하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자로 서게 하소서.
주여,
디지털 통제보다 더 강한 것은
사랑 없는 심령입니다.
일요일 법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의를 복음보다 앞세우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안에서
율법의 자랑이 죽고,
사랑의 복음만 살아나게 하소서.
골고다 언덕에서 모든 공포는 꺾였습니다.
거기서 승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사랑 안에서
우리도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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