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통해서 자아가 일깨워지는 그 신성함에 대한 느낌을 지닌다면, 다양한 조처로 어린이들에게서도 역시 그것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방법론적 고찰, 2009, 104)."
똑같은 말을 하는데 어떤 경우는 상대방이 받아들이고, 어떤 경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가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어쨌든 대부분의 의사표현이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더욱 더 그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이것이 질문이다. 어떻게 말을 하면 상대방이 또는 아이들이 잘 받아들일까? 요컨대 언어의 중요성이 질문이다.
필자가 이런 질문을 한 배경에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물론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에 필자의 정신(자아)이 주의를 했고, 이에 에테르체가 표상을 떠올려서 연결(기억)이 되었다.
당시 신문에 크게 난 사건이다. 신문 내용에 따르면 아버지가 지방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인데 여러가지로 부정을 저지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또 신문을 장식했는데, 아들 역시 사회적으로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했고, 이에 대하여 반성은 커녕 사람들의 분노을 일으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잘못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지, 만약 안다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은 할 수가 없을텐데 하는 생각, 그래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짐작하기에 아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아들의 정신이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고, 문제는 아들의 정신이 그렇게 형성된 이유와 나아가 올바르게 형성하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 아버지 역시 아들을 사랑할 것이고, 아들 역시 아버지를 사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행동도 받아들이는가. 예컨대 친일파 중에서도 조상을 부끄러워하는 자손이 있고, 또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자손도 있다. 이 둘의 괴리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이는 그들의 영혼활동이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사랑하는 아버지(조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활동이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벗어나 올바른 영혼활동을 할 수도 있다. 차이는 이것이다. 즉 누가 올바르게 영혼활동을 했는가인 것이다. 또 나아가 누구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하게 영혼활동을 하는 것을 원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이에 대한 슈타이너의 주장이다. "어린이에게도 그 자아감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일깨울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못 일깨우면 이기주의를 더욱 부추기게 됩니다. 그것을 올바르게 일깨우면 의지에 불을 지피는 것으로 곧 바로 사욕이 없이 주변세계와 함께 살도록 합니다(위 책, 104)." 물론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이에 따라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언어는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하는 데에 비해서 언어는 누구나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자아감각이다. 즉 자아가 올바른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올바르게 전달된다. 자아감각은 그 사람의 자아가 가진 감각이다. 그 사람이 이제껏 한 영혼활동,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결과가 자아에 그대로 점착되어서 그 사람의 자아 - 감각이 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자아감각은, 올바르게 이루어진 영혼활동의 결과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말이 나온다.
이에 관한 필자의 체험이다. 어느 날 둘레길을 걷는데, 앞서가는 사람이 말을 크게 하였다. 저절로 들렸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집중해 보니, 그 사람의 자아가 혼돈 속에 빠진 듯, 말의 파장이 정상이 아니고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싸이렌을 들을 때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아가 그 사이렌 소리에 따라서 흔들린다는 것을 파악할 수가 있다. 이는 싸이렌 파장을 그렇게 만들어서 들으면 흔들리는 것이다. 반면에 정상 파장이란 인간이 소리를 들으면 정상이라고 느끼는 범위의 파장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나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짐작하기에 그 사람의 자아가 혼돈 속에서 오래 계속 머물렀기 때문이다. 자아가 그 정도까지 될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 머물러야 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순간 일었다. 누구라도 살다보면 혼돈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있다. 힘들거나 등등의 이유로 인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나 일이 닥쳤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한다. 이런 경우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 속으로 깊이 침잠해야 한다. 자신의 내부가 진정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면 어느 순간 흔들림이 멈춘다. 이 경우 명상이 크게 도움이 된다. 슈타이너는 인간이 밤에 잠을 잘 때 이런 현상들이 치유된다고 했다. 어쨌든 참 안타까운 일이다.
또 요즈음 AI가 화두인데, 네이버에서 AI 수석으로 간 하정우 수석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말의 파장이 둥글고, 밝고, 환하고, 안정되어 있다. 마치 둥근 악기, 호른에서 나는 소리같다. 들으면 누구라도 그 안정된 소리에 끌려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하정우 수석도 살면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에도 그는 영혼활동을 '그렇게' 한 것이다. 짜증내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하정우 수석이 스스로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누군가 주위에서, 또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도록 했을 수도 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지, 또는 긍정적인 영혼활동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정답은 이미 나왔다. 영혼활동을 그렇게 해서 자아감각이 그렇게 형성되어야 한다. 하나는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감각과 다른 하나는 의지를 불러일으켜서 주변세계와 함께 살도록 하는 감각이다. 이제까지를 요약하면, 그런 삶을 살아서 그런 감각을 자아가 지녀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이유를 살펴보자.
언어는 인간이 스스로 형성하지 못했다. 신이 부여했다고 한다. 즉 만약 신이 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지금도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필자는 이런 슈타이너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신이 주었다는 증거 내지는 확신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이 의문이 확 풀렸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질문자가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서 안타까운데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법륜스님은 자식에게 불교를 믿으라거나 스님의 즉문즉설에 가라고 하지 말고, 스님의 법문을 늘 조용히 틀어놓아서 자식이 듣게끔 하라고 하셨다. 필자는 법륜스님의 법문에 어떤 것이 있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변하는지 당시는 알지 못했는데, 언어를 신이 부여했다는 슈타이너의 주장과 연결되면서 의문이 풀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이 언어를 부여했기 때문에, 언어를 통하면 신으로 갈 수가 있다.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을 세뇌하는 방법이 교주의 말인 이유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도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늘 신도들의 동선을 감시한다. 그런데 누구나 신으로 가는 통로가 언어는 아니다. 여기에서 누구의 언어가 신으로 가는지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파장을 지녀야 한다. 그 파장이 깨달은 사람의 파장이다.
통상 자아가 현실의 삶에서 상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아를 감지하는 것도 어렵다. 이런 자아가 현실의 삶의 상속에서 빠져나와 본래의 자아를 먼저 만나야 한다. 그리고 본래 자아가 다시 깨달아서, 즉 깨달은 파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짐작하기에 깨달은 사람의 파장이란 우주 천체음악의 파장으로 우주 만물을 운행하는 파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파장이어야 상대방의 의지를 블러 일으켜서 주변세계와 함께 살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법륜스님의 법문, 그 소리가 상대방을 일깨울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누구나 이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정신을 수습해서 싸이렌을 듣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는 안된다. 최소한 자신의 의지를 일으키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예컨대 교사라면 자신의 의지는 스스로 일으켜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무리를 이끌려면 대중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리를 이끌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이 물질을 이끈다. 먼저 정신이 자신을 이끌고, 나아가 자신의 말을 통해서 무리도 이끄는 것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정신을 발달시키는 일이다. 정신의 속성인,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법륜스님의 말씀인데, 어떤 일이라도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일어날 만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서 노력해야 한다. 억울해 하지 말고 받아들여아 그 일이 풀린다. 그 일이 곧 자신의 정신을 발달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