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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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5-6)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라
우리는 누가 평화의 아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이 평화를 전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평화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그건 우리 탓이 아니니 우리의 평화를 잃지 않을까 염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빌어 준 평화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 사람보다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른다면, 그와 우리에게 다 유익한 일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
✝️ 성인 / 영적 글 묵상✝️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1
신성의 어두운 면
이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제 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실체를 부여받은 한 사람과 똑같습니다. 이 실체가 사람에게 존재와 생명을 줍니다. 그것은 지성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스스로를 지성이 있는 존재로 이해하고, 모든 질료적인 것과 형상들을 여읜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사리를 아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여의고 자신에게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그들은 지성을 갖춘 모든 것을 외부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그들은 참으로 사람답게 될 것입니다.
모든 형상과 표상을 여의되, 외부의 어떤 방해나 우리 자신의 변화 없이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단순해질 때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자신을 여의고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는 자신 안에 있는 다양성을 더 단순하게 알아채고, 자신 속에 변함없이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보에티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자기 속에 머무르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에 의해서도 움직여지지 않지만 만물을 움직이는 부동의 선이다.” 단순한 앎은 순수합니다.
그것은 아무런 중재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신적 존재를 알아냅니다. 이러한 신적 존재가 쇄도할 때, 단순한 앎은 신적인 본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천사들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천사를 보기 위해 지옥에서 일천 년을 기꺼이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앎은 너무나 단순하고 밝습니다. 천사마저도 이 빛 속에서 보여진 모든 것으로부터 솟아오를 것입니다.(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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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제5주간 생태 회심 주간✝️
<금주간 성서 읽기> 요한 1서 전체
<생태 회심 주간> 생태적 묵상
✝️ 목요일 성모님의 날✝️
4. 프란치스코와 곤충(구더기, 벌, 매미) 그리고 꽃
과연 누가 하느님의 소유인 모든 피조물에게 품었던 그의 위대한 사랑을 표현해 보일 수가 있겠는가? 삼라만상에서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지혜와 힘과 선을 명상할 때에 그가 즐긴 그 감미로운 느낌을 누가 말로 할 수 있으리오? 진정 창조주의 지혜와 힘과 선을 관조하면서 해를 쳐다볼 때, 달을 바라볼 때, 그리고 별과 창공을 응시할 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경이로운 기쁨에 자주자주 도취되곤 하였다. 오, 단순한 경건이여, 경건한 단순성이여!
그는 구더기 한 마리를 보고도 큰 사랑에 불탔다. 그는 거기에서 구세주께 대하여 씌어 있는 말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그러므로 그는 구더기를 길에서 집어 들고, 행인들의 발에 밟힐까봐 안전한 곳에다 옮겨 주었다.
그는 겨울에는 벌들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꿀이나 질이 좋은 포도주를 공급해 줄 정도였으니, 다른 하등동물에 대한 그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그는 벌들의 완벽한 일 처리와 탁월한 기술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칭찬하였고, 벌이나 다른 피조물들을 찬탄하며 하루를 온통 보내곤 하였다. 옛날에 유다인 세 청년이 불가마에서도 모든 피조물들을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도록 권유하였듯이, 이 사람도 하느님의 기운이 마음에 가득 차서 피조된 삼라만상에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지배자이신 분께 끊임없는 영광과 찬미와 축복을 바쳤다.
뽀르치운꿀라에 있는 프란치스코의 방 곁의 무화과나무에 매미가 앉아서 노래하곤 했는데 그 노래는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자극했던 것이다. 이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피조물 안에서도 그는 창조주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프란치스코가 매미를 불렀다. 매미가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의 손으로 뛰어 내려와 앉았을 때 프란치스코가 "노래하라, 나의 자매인 매미야, 너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라" 하고 말하자 곧 매미는 울기 시작해서 프란치스코가 매미에게 원래 늘 있던 가지로 돌아가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겨우 그쳤다. 거기에 매미는 남아서 일주일 내내 그의 청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매일 왔다가 가곤 했다. 마침내 성인은 동료들에게 "우리는 자매인 매미에게 자유롭게 날아가 버리도록 허락해 주어야 하오. 매미는 노래로써 우리에게 충분한 기쁨을 주었으며 우리에게 일주일 내내 하느님께 찬미하라는 깨우침을 주었소"라고 말하였다. 그가 매미에게 떠나라는 허락을 주자 곧 매미는 그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감히 어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사라져서는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중에서-
성인께서 아름다운 꽃의 자태를 보고 향긋한 방향(芳香)을 맡을 양이면, 이 꽃의 아름다움이 얼마만한 기쁨을 그의 마음에다 부어 넣었는지를 독자 여러분께서 생각할 수 있을는지? 그는 사고(思考)의 눈을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피어나와 봄날에 빛을 주며, 그 향기로 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검들을 부활시킨 바 있는 그 꽃의 아름다움으로 돌리곤 했다. 그는 꽃무리를 보게 되면 꽃에게 이성이 있는 양 설교를 하였고 주님을 찬미하도록 권하였다. 같은 식으로 그는 잡곡밭, 포도밭, 돌, 숲 그리고 들에 있는 예쁜 열매들, 흐르는 샘물, 동산의 푸른 풀이나 나무, 땅 그리고 불, 공기, 바람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꺼이 하느님께 봉사하도록 가장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권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피조물들을 형제자매라고 불렀고 아무도 알 수 없는 탁월한 방법과 예민한 감성으로 사물의 숨겨진 비밀을 간파하였다.
역시 마찬가지의 의미로 정원을 돌보는 형제에게도 야채를 재배하는데 땅 전부를 경작하지 말고 “나는 고작 사론에 핀 수선화, 산골짜기에 핀 나리꽃이랍니다.(아가 2,1)로 불리우시는 주님을 위한 사랑으로 계절마다 꽃피울 땅 약간을 따로 남겨 놓으라고 하였다. 사실 정원지기 형제에게 언제나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어 여러 가지 향기 짙은 풀과 꽃을 재배하도록 일렀다. 그래서 화초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싶어질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오 인간이여,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을 위해 나를 만드셨습니다.“라고 선포하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지내는 우리는 그가 모든 피조물에서 내적 외적 기쁨을 느끼는 것을 보아 왔다. 그가 그들을 어루만지거나 바라볼 때는 이 지상에 있다기 보다는 천국에 있는 듯이 보였다. 그가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피조물을 통해 받은 많은 위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조물의 노래”를 지었다.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