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주고받으신다.
요 며칠 동안
한숨 주무신적이 없다고
친구분에게 이야기 하신다.
왜
그러한지 도저히 알 수도 없다.
옆에 계시던 친구분이
따뜻한 물로 목욕해 보라고 권한다.
모든 것을 다 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하신다.
이야기 끝에
남편이 내 명의로 만든 체크카드를
아들에게
주고 나니 아들이 통장에서
모든 돈을 다 인출해 갔다는 것이다.
남편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는 분이라고 하신다.
나는 한 푼도 안 주는데,
언제나 남편에게 부탁하고
오십이 넘은 아들은
어려울 때마다
아버지에게 돈을 타 간다고 하신다.
두 분의 결론은 둘 다 미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미치겠다는 말을 건넨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빌릴 수도 있고
한번은 실수 할 수가 있다.
한번 한 실수에서 연구가 없다면
두 번째는 더 큰 어려움이 오고
세 번째는 감당할 수가 없는 어려움을 자초한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면
어머니는 자신이 넘어진 것처럼
아픔을 같이 느끼신다.
아이를 달래려고 앉아주고,
사탕을 주면서 잘 걸어가는 방법도 가르쳐준다.
그렇게 성장한 아들은
이번에는 세발자전거에 도전하고
그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진것을 발판으로 멋진
어른으로 성장을 한다.
그 모습이 보면서
우리 부모님들이 힘을 얻으신다.
아직 얻어먹는 아들에게는
손자가 둘이나 있다.
돌아보면
훗날
우리 부부가 죽고나면
저 아들은 나이가 팔십이 넘어서도
손자에게 돈을 빌리려 갈것이다.
손자들이
자기 아버지를
구박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것을 보면서도 모른다면
할머니 아들은
할머니가 연구하라고
밤에 잠이 오지않는 이치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얻어먹는 거지로 만들 것인가?
명분 없는 돈이라면
자식도 망치고,
사회도 망치고,
오만 어려움을 겪는 만큼
어머니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노력 없이는 누구를 도울 수 없는 이치를 깨치고
연구해 보는 일이다.
2024년9월26일
흥부와 놀부전을 보면서
아프리카를 생각해 본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아이들을 주렁주렁 낳는다.
오늘 먹을 끼니도 없으면서
공부를 가르친다는것은
상상도 할수가 없다.
왜 그러한지 필요한 교육이 홍익인간
인성교육이다.
그런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