退溪(퇴계) 李滉(이황)과 肥遯(비둔)
경남유교대학 4월 10일 강의는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조민환 교수였다.
강의 주제는 '貨幣(화폐)에 담긴 儒敎思想(유교사상)'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통용되는 지폐속의 인물을 보여주면서 누구누구인지 묻기에 내가 선뜻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묻기를 성씨와 관련을 물었다. 유생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교수께서 李씨 성과 관련이 있다. 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황, 이이, 세종대왕 본명 이도, 신사임당 남편 이원수 모두 李氏성을 가졌다.
그러면서 모두 유학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세종대왕과 유학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실 때 음양오행설에 기반을 두고 자음을 만들었는데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이 그것이며 발음기관 모양을 따서 만들었다. 했더니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에서 다뤘으면 좋겠다고 하며 끝냈다.
이황을 설명하면서 ‘肥遯’ 이라 적고 한자 ‘遯’자를 지적하며 무슨 글자인지 묻기에 내가 ‘숨을 둔’이라 말했다. 그렇다고
하면서 ‘肥遯(비둔)’을 설명하기를 ‘물러나서 숨어 지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진 모습’이라 했다.
사실 肥遯(비둔)은 退溪(퇴계) 李滉(이황) 선생의 유교적 처세 철학인 '지지(知止 : 그침을 앎)'와 '隱居(은거)'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개념이다.
또, ‘遯’은 주역(周易)의 33번째 괘인 천산둔괘(天山遯卦)에서 유래했다. 천산 둔괘(䷉)의 상괘는 '乾'괘 즉 하늘(天)을 의미하고, 하괘는 '艮'괘 즉 산(山)을 의미한다. 문왕은 이 괘를 [陰長將盛之象(음장장성지상) : 음이 장차 왕성하게 자랄 상. 君子退藏之義(군자퇴장지의) : 군자가 물러나서 숨어서 지냄]의 뜻. 으로 규정했다.
이황의 호 退溪(퇴계)에서 ‘退’자를 차용함도 천산 둔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퇴계 선생이 평생 추구했던 삶의 태도를 잘 보여 주는 용어가 ‘肥遯’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肥遯(비둔)의 한자 낱자 의미를 풀이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둔'에서 비(肥)는 '넉넉하다', '여유롭다'는 뜻이며, 둔(遯)은 '물러나다', '은거하다'는 뜻이다. 즉, 세상의 명예나 권력에 미련을 두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 기분 좋게 은거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肥遯, 无不利’ : 여유 있게 은거하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이는 억지로 숨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 때가 되었을 때 미련 없이 물러나 자연과 학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초연의 경지다.
이는 곧 퇴계의 처세 원칙이다.
나아가는 것은 어렵게 하고, 물러나는 것은 쉽게 한다. 는 군자의 도리와도 일맥상통한다.
퇴계의 이와 같은 처세 철학에 대해 오늘 날 정치인들은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몸담았던 당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 선량으로 뽑혀 관직을 누리다가 물러났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야 함이 마땅한데도 욕심을 부려, 자신이 그렇게 저주했던 정당에 연줄을 대어 변두리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모리배들을 볼 때면 과연 그들이 정의로운 사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오늘 내가 주선하는 모임이 있어서 조민환 교수의 강의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둘째 시간 중간에 빠져 나왔는데 몹시 아쉬웠다.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에 의미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