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가 선정한 한 편의 시
---남상진의 <맹그로브 >
맹그로브
뿌리로 숨을 쉬는 생도 있다
척박한 땅에 난생의 몸으로 떨어져 망망한 대해를 떠돌다 다다른 지표면
붙잡을 피붙이 하나 없는 물컹한 진흙 바닥에 그래도 단단히 뿌리 내렸다
눈물보다 짠 바닷물이 푸른 혈관의 통로를 지나 두꺼운 손가락 마디 끝
꽃잎으로 빠져나오는 수변
성성한 자식들 뭍으로 내보내고 맨몸으로 파도를 견뎌온 나무
밀물과 썰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간석지에서
나무로 살아가는 일이 속내를 숨기고 혀를 깨무는 여정이라지만
얼마나 숨쉬기 버거웠으면
혀를 뿌리처럼 물 밖으로 밀어 올려
가쁜 숨을 내뱉았을까
울먹이는 누이의 손을 잡고
어둑한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는 저녁
요양원의 긴 복도를 따라
수면 위로 뿌리를 드러내고 가쁜 숨을 이어가는
맹그로브 뿌리같이 수척한 아버지
이불같은 밀물이 밀려와
머리끝까지 아버지를 덮고 있다
임현준 시인
변하되 변하지 않는 것, 서양에서는 부동의 동자라 일컫고 우리네에서는 이기론의 근본으로 삼는 가치이다. 이데아라고도 하고 시원이라고도 한다. 남상진의 <맹그로브>는 ‘아버지’라는 시원 · 이데아를 살았던 나무 같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척박한 땅에 난생의 몸으로 떨어져 망망한 대해를 떠돌다 다다른 지표면’에 오랫동안 ‘붙잡을 피붙이 하나 없는 물컹한 진흙 바닥에 그래도 단단히 뿌리’ 내리는 삶은 흡사 ‘혀를 깨무는 여정’과 같다. 한 곳에 머무르되 ‘맨몸으로 파도를 견뎌온’ 삶을 살아가는 것, 매양 아버지의 삶은 ‘어둑한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가는 저녁’처럼 습하고 가쁘지만 일면 장중하고 숭고하다. ‘혀를 뿌리처럼 물 밖으로 밀어 올’리는 아버지의 처절한 삶을 우리는 사랑의 보편으로 여긴다. 누구나 그러하리라 믿지만 ‘나의’ 아버지만이 그러한 이데아가 되는 것이다.
나무를 열렬히 숭배하는 종족은 인간밖에 없다고 할 때, 차마 인생이란 게 매양 한 나물에 한 고봉밥이면 질려 숟가락을 놓게 된다. ‘맹그로브’는 그러한 의미에서 나무이면서 나무의 이단 격이다. 나무의 이데아는 뿌리를 위로 ‘밀어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의 이데아인 아버지를 ‘요양원의 긴 복도’를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삶의 이율배반, 그 모순같이 맹그로브는 삶의 이데아를 대하는 우리들의 이율배반을 표상한다. 사실 ‘숨쉬기 버거워’ ‘혀를 뿌리처럼’ ‘밀어 올’리는 그로테스크함은 생의 본능이다. 본능은 기괴하고 역행하고 버겁다. 삶은 ‘밀물과 썰물이 수시로 드나드는 간석지’와 같이 강물과 바다의 경계선에서, 바다와 육지의 대척점에서 뿌리 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맹그로브>는 결국 ‘이불 같은 밀물이 밀려와/ 머리끝까지 아버지를 덮’는 것으로 끝난다. 살기 위해 생을 다해 고군분투하지만 아버지로서 한 곳에 뿌리 내려야 하는 것, 죽어 한 곳에 눕지만 생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은 부동의 동자의 삶이요, 곧 이데아의 삶이 된다.
인간이 종내에 머무르는 곳은 죽음밖에 없다. 부처의 예수의 마호메트의 공자의 삶이 우리들의 마음에 머무르기 전에 꼭 죽음이라는 제례를 맞이했다. 아버지들은 맹그로브의 삶을 살다가 이불이 머리끝까지 덮일 때 우리 마음에 이데아 하나를 새긴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하나의 삶이 나무의 거친 피부처럼 제 아무리 거칠게 흘러왔다 하더라도 그건 계절의 가혹함을 새기는 나이테에 불과하다. 나무의 나이테는 불가항력적인 모순으로 올라가면서 하산한다. 성체로, 씨를 뿌리는 모체로, 뒤돌아서면 우주의 좌우가 바뀌듯 뿌리는 내려가면서 나무를 올린다.
이 나무의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는 삶, 이가 기가 되고 기가 이를 형성하는 기괴한 삶의 이야기가 인간 사고의 영역이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서정시가 많이들 도달했던 고지였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맹그로브>는 다시 시작된다. 나무의 삶을 살았으나 한 인간의 숙명으로 설명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 자연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사의 한 보편적 개인을 이야기 하는 것, 그리하여 인간이 자연의 순리로 귀속되되 단순히 자연으로서 나무의 무기력한 삶이 아닌 것.
남상진의 시는 자연현상을 읽어내는 눈이 거칠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결코 자연에 종속되지 않게 하는 묘사점을 지니고 있다. 한 곳에 뿌리박는 나무의 삶이 온통 바다를 헤매야지만 가능하다는 그 서늘한 통찰력이야말로 애지가 기다려온 한 톨 씨앗이 물컹한 진흙 바닥을 단단히 찌르는 생의 알박기가 아닌가 한다.
이번 <애지가 선정한 한 편의 시>에서는 말에 대한 감각적 감수성이 두드러진 시들이 다수 후보에 올랐다. 김석 시인의 <사방치기>도 그렇고 강윤미 시인의 <보르게세>도, 김혁분 시인의 <株式, 主食>도 언어유희적 성격이 강했다. 어느 모로나 시적 내공이 두터운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언어의 성찰이 돋보였다. 서정적 이미지의 정수를 보여주는 손택수 시인의 <냉이꽃>도 마지막까지 애지가 차마 놓지 못한 수작이었다.
변하되 변하지 않는 것, 그게 삶이라는 이데아의 극치라면 애지는 시이면서 시가 아닌 삶을 지향한다. 시처럼 살고 싶되 시 자체가 삶이 될 수 없다는 그 모호한 이율배반에 ‘단단히 뿌리 내’리는 맹그로브처럼 애지는 뿌리를 ‘밖’으로 밀어 올릴 것이다. 그것이 문학에 대한 비판이요, 비판만이 정신인 애지의 기괴함이다. 마치 맹그로브 뿌리에 숨어사는 시라는 물고기가 거기서만 산란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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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준 프로필
전라남도 벌교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수료.
2018 여름호 『애지』 신인상 등단.
(31122)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황로 11-11(성황동 38-11) 예닮하우스 4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