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내 문장의 발상은 시였다. 기본이 그랬다. 그러므로 산문이 잘되지 않았다. 산문으로 쓰기는 했지만 그것이 시의 문장 비슷한 것으로 나왔다. 말하자면 불완전한 산문이었던 것이다. 정작 산문다운 산문이 쓰인 것은 오십 대 초반. 이미 산문집을 몇 권 낸 뒤의 일이었다.
이미 낸 산문집 몇 권은 필요악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산문작가가 아니다. 특히 독자들에게 그랬다. 열 권도 넘는 산문집을 냈는데도 내가 산문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의 독자들은 한사코 나의 시만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다.
그런데 왜 산문을 쓰는가? 시로 쓰고서 남는 말이 있어서 쓰는가? 아니면 시로서 쓸 수 없는 말이 있어서 쓰는가? 그 둘 모두가 해당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후자의 편이 좀 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산문에는 시가 따라갈 수 없는 좋은 점, 덕성이 있다. 품이 넓어서 인생을 감싸주는 여유가 있다.
나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문장을 나의 산문에게 요구한다. 오해가 없는 문장을 요구한다. 까다롭지 않은 문장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그래야 한다. 시의 문장에서는 약간의 애매모호가 인정된다고 그러겠지만 산문의 문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자기 주장만 줄창 늘어놔도 안 된다. 독자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산문 쓰기가 어렵다. 독자한테 호응받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산문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산문은 나에게 매력의 영역이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낸 산문집 가운데서 가려 뽑은 글들만 모은 책이다. 일테면 산문 선집이다. 나로서는 첫 번째 책이고 또 이것은 내가 문단에 나온 지 50년을기념해서 내는 책이기도 하다.
(下略)
2019년 가을 입구
나태주 씁니다.
나태주 산문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