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도 쓸쓸하시다
하느님도 인간에게 사랑을 바라다가 쓸쓸하시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가 소리없이 지나가는 들녘에 서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지 알 수 없어라
그대는 광한루 돌담길을 홀로 걷다가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나니
미소로서 그대를 통과하던 밝은 햇살과
온몸을 간지럽히던 싸락눈의 정다움을 기억하시라
뿌리째 뒤흔들던 간밤의 폭풍우와
칼을 들고 설치던 병정개미들의 오만함을 용서하시라
우듬지 위로 날마다 감옥을 만들고
감옥이 너무 너르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나니
그대 가슴 위로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어
하느님도 쓸쓸한 저녁 무렵
삶은 때때로 키스처럼 반짝거린다
(정호승, '잎새에게' 전문,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서)
늦가을 마지막까지 매달린 잎세에게 건네는 시인의 위로이다.
흔히 가을은 쓸쓸한 계절이라고 하는데, 스산한 바람이 부는 저녁 들녘에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다.
더욱이 마지막 열차가 지나는 시간이란 더욱 쓸쓸함을 자아낼 법하다.
여름철 녹음을 이루던 나뭇잎들은 가을이 되어 다 떨어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을 시인은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고 한 것이다.
늘 비추던 밝은 햇살과 간혹 드리치던 싸락눈, 그리고 뿌리째 뒤흔들던 폭풍우를 겪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나무 근처의 병정개미들이 떼를 지어 오가고, 새들이 날다가 똥을 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시인은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생각한다.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을 빙자한 시인의 생각일 것이다.
서로를 불신하는 인간 사회의 면모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비록 가을 저녁의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삶은 때때로 키스처럼 반짝거린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랑하는 이와 키스를 하는 시간만큼 빛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