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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번째 사랑어린잔치 준비 모임이 관옥나무도서관에서 있었습니다.
일부님이 늦으신다길래, 기도문을 낭독하며 절을 올립니다.
가족 약속문을 함께 읽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신난다가 정리해온 글을 함께 읽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지난주 모임, 주중에 살림위와 배움지기 일꾼 모임에서 나눈 잔치 이야기를 하나로 정리를 해오셨어요.
- 두번의 정리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살이 붙었다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천일기도를 어떤 목표없이 시작했는데 기도를 하면서 틀거리가 마련되는 것 같다. 잔치는 3년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무엇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글로 정리하면서 깨어야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이 엄중한 시기이구나 싶다. 3년의 마무리와 잔치의 의미는 명징하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을 꽃피우는 것이겠다 싶다. 그래서 이전의 잔치와는 달라지지 않을까.
- 학교에 오다가 6학년 아이들과 아빠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오는 길에 쉬고 있는 것을 봤다. 아빠들이 더 힘들어하더라. 신난다의 정리 글 중 "새로운 몸짓과 방식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구절이 와닿는다. 천일기도를 마감하는 즈음 축제가 열린다. 그 흥분되는 자리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랑어린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다.
- 잔치가 끝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더라. 이번 잔치는 많이 모이는 분들의 마음을 나누는 자리가 됐음 좋겠다. 갖고 있는 것을 나누고 조금씩 덜어내는 잔치.
- 교육공동체, 마을공화국, 축제...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라면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마을공화국이라면 마을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살림위 잔치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렸는데,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다시 대충 써서 올렸다. 신난다가 고생이 많았겠다. 신난다 정리 글에서 덜 드러나 있는 부분은 '사람'이다. 그때 이야기할 때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인공, 주인으로 선다는 부분이 진지하고 크게 다가왔었다.
-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책이 생각난다. 내가 하고 있는 교육공동체, 마을공화국. 그 의미와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표본이나 본보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요즘 잔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잔치가 뭘까라는 질문이 계속 되고 있다. 나에게 잔치는 생명이 생명답게 하는 것 같다. 잔치를 통해 생명이 가지고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한껏 드러나게 하는 자리. 생명이 생명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잔치를 통해 생명이 생명답지 못한 것에 대한 저항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생명을 생명답지 않게 하는 것은 뭐가 있을까.
첫째, 국가가 있다. 실체없는 실체, 국가로 대변되고 작동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 지역과 더불어 세번째는 사람들 삶 속의 관습, 즉 나의 버릇인 것 같다. 내가 나의 버릇을 잘 세우고, 생명답게 꽃 피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저항의 주체는 나이고, 내용은 내가 하고 있는 나의 버릇과 습관에 저항하는 것이 먼저다. 나의 버릇에 저항하는 잔치. 내가 가진 것들을 드러내어 그것들을 치유할 수 있고, 그 힘으로 생명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잔치가 되기를 기도한다.
- 저도 구랑실처럼 잔치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천일의 회향도 같이 가고 있는데, 회향의 의기가 다르게 다가왔다. 천일 동안 목표를 정하지 않고 오면서 천일 동안 만들어진 기운을 내어드리고 나누는 것이 회향인 것 같은데, 무엇을 회향해야나... 배움터의 철학과 스승님들의 말씀,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잔치가 되겠구나 싶다. 순하게 스며드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주인으로 서 있는 것, 주인으로서 회향하게 되는 몸짓, 순하게 잘 했으면 좋겠다.
-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말씀 안 하신 분들 해주셨으면 좋겠다.
- 잔치 얘기는 아닌데... 시문학 시간에 창조 이야기가 생각난다. 창조라는 말이 늘 설레였다. 창조란 신만이 할 수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을거란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창조란 사는 것 그 자체인데, 누구든지 사는데, 나는 왜 창조하지 못하는가. 어릴 때는 늘 아침이 신비롭고 경이롭고 기쁨으로 살았었다. 20대 이후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걱정만 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창조를 고민하면서 가짜 인생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진실되게 사는 것이 창조라면 진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쉽고 누구나 아는 것이다. 잔치도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잔치, 그런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확인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20대 때 그렇게 진실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 오늘 산책하면서 보민이가 눈을 감고 5발자국을 걷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도 그렇게 해봤다. 눈을 감고 다섯발을 가고 눈을 떴더니 삐뚤어지지 않게 가고 있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열발자국을 가서 눈을 떴더니 도로 한 가운데 가 있었다.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머무는 곳이 가슴이고 가슴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축제라는 이야기. 나로부터의 혁명인 것 같다. 이 자리가 하늘친구의 마음이나 잔치를 준비하는 마음이나 사랑어린 사람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말로만 하고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잔치는 눈을 감아도, 떠도 같은 그런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 다음 사이트에 가면 유네스코 지정 무형문화재 팝업 창이 뜬다. 터키식 커피가 있길래 들어가봤다. 터키식 커피는 도구부터 다르더라. 커피를 앞에 놓고 나누는 대화, 소통이 터키식 커피의 특징이다. 소통, 우정과 환대. 잔치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생각 났다. 도서관에서도 우정과 환대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천일이 거의 다가오고 잔치를 준비하는 과정, 관옥나무 도서관은 어떤가. 잔치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떤가 생각했다. 터키는 12월에 축제가 있다. 수행자들이 춤을 추는데 같은 동작으로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가슴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17일 동안 하루에 3번 춤추는데 누군가 16번인가를 봤다고 한다. 그 춤을 보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눈감고 계속 도니까 부딪치지 않게 해주는 자가 있다. 그것을 보면 온 몸이 은혜를 입은 듯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우리의 잔치도 우리의 어떤 몸짓이 나를 울리고, 수행자로 거듭나게 할까. 그런 몸짓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소통, 통하게 되는 시간. 운동에서 절, 숭고한 절을 하면 어떨까. 개인의 중심안에서 피어나오는 물결이 되면 좋겠다.
- 솔직히 신난다가 밥도 못먹고 적어왔다니까 짜증이 났다. 지난번에는 환골탈퇴, 뼈를 깎는 아픔을 이야기하더니... 이것도 과정이겠지만... 잔치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게 반갑지 않다. 잘 모르겠다. 적어도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진실되게 털어놔서 자신을 녹여내는 자리였음 좋겠다. 잔치를 할 때마다 환골탈퇴, 어설프게 힘든 환골탈퇴라면 안하고 싶다. 녹록한 과정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이 부분이 와닿는다. 천일천인으로 오롯이 가고 싶었는데 내 안의 중심이 흐트러진다고 생각되어서 절만 하고 빠질까 생각도 했었다.
- 잔치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잔치, 어떤 그림일까. 오늘 교회에서 목사님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시면서 은성아빠에게 설교를 부탁하고 가셨다. 그래서 할머니들에게 재밌는 동화를 들려드린다고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빌려갔다. 오늘 보니 다른책을 골랐더라. 지금까지의 틀을 깬 예배를 하겠다고 하더라. <작은 영혼과 해>라는 책이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게 동화처럼 읽어주었다. 재밌게 하더라. 할머니들께서 정말 열심히 듣더라. 얘기 끝나고 "나는 뭐가 되까잉"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감동적이었다. 은성 아빠가 <사랑>을 따라부르게 했다. 곧잘 하시더라. 그 노래를 함께 부르니까 벅차올랐다. 예배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틀을 깬 잔치가 어려운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노래 하나로 나이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잔치는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와 준비를 해오면 그런 색깔들이 모여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분위기가 거룩하다. 어색하리마치 경건한 분위기다. 잔치 하면 들뜬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만큼 우리가 세련되어져 가고 있구나 싶다. 3년을 정리하는 잔치라고 하지만 내가 깨어있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방학 중에 두더지의 말씀에 자극을 받은 후, 8월 이후 깨어있으려고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다. 무지개 이야기를 들으니까 잔치 속의 한 부분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죽쒀서 개 주는 일은 안됐으면 좋겠다. 사뭇 다르게 잔치를 준비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거다. 어색한 거다. 그동안 잔치를 어떻게 해왔나 보자. 적어도 두번 잔치를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는 이사왔으니 밥한번 대접하자 그랬다. 이제는 그런 일도 아니고 또 잔치를 하자는데 질문을 해 봐야지. 누가 밥달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물어봐야 하지 않나.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가야한다. 뼈대만 잘 되어있으면 나머지는 금방 할 수 있다. 그것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중심도 더 잡고 단순해질거다. 다음주까지는 뼈대가 세워져야 한다. 왜 하는지, 뭘 해야하는지. 이런 분위기를 먹고 가는 거다. 우리들의 모습과 기운을 먹고 가는거다. 오시는 분들이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 할 수 있다. 그동안 천일기도도 마지막 한 순간, 한 날, 그 날 아침이 중요하다. 마지막까지 깨어있을 사람. 누군가 몇 사람. 그 기운에 왔다가는 거다.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여럿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한사람이어도 좋다.
3년 전에는 어떤 학교였었나. 최소한의 정성과 혼이 깃들어 있지 않는 잔치. 그것 없이 잔치를 한다면 그걸 왜 하나. 먹고 마시려고? 맨날 먹고 마시는 데 그짓을 또 해. 누구도 다른 무엇을 모른다. 그런 걸 본 경험도 없다. 그런 상이 없으니 만들어가봐야 하지 않겠나. 작년에도 이런 물음들을 묻고 또 묻고 했다. 묻고 또 묻고 해야지. 모여서 이야기하니까 되어가는 것 같다.그런게 배움이라고 본다. 이런 과정이 배움이다. 마을과 지역과 대중을 불러서 하는 잔치를 하는데 생각없는 잔치를 하겠다면 정신나간 짓이다. 발품팔 자신이 없다면 돈 들여서 뷔페부르면 된다. 그런 각오를 가진 누군가 있다. 저 사람이 아니고 내가 되면 안되나.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현실적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잔치가 되어야한다. 돌아가면서 한번 더 질문을 해보시면 좋겠다. 정신 혼이 살아 숨쉬는 잔치를.
- TV에서 기씨의 종가 제각을 관리하는 50대 부부를 보았다. 아침마다 풀을 깎고 아름답게 살더라. 아내가 말하길 "아무것도 안주는데 늘 즐겁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웃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됐다." 남편의 매력이 너무 밝고 행복한 모습, 3년동안 변함없이 모시는 마음이라는 거다. 밥상모임을 하고 학교 일도 정신이 없다. 나에게 체화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마음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있다. 마음하나. 첫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게 행복하겠구나 싶다. 그 부부는 비오는 날은 소쇄원을 간다. 어떤 때에 어디를 가는 것처럼, 우리 학교에서 가을에는 국수를 준다더라. 그런 것. 변함없이 자연에서 좋은 것을 만끽하고 이런 마음이 모월 모일에 내가 초대하는 날도 있겠구나. 그러면 매일 잔치겠구나 싶다.
- 내 아이가 몸이 약하고 사회성이 부족하고 예민해서 이 학교는 매일 걷는다해서 보냈다. 와서 보니 철학이라는 게 있더라. 한번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나도 아이도 배워가는구나 생각한다. 잔치라는 게 그런 거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모여서 생각하는 것. 그게 모여서 학교 애만 맡겨놓고 나몰라라 하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철학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새로운 에너지를 모이게 하는 잔치였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부모님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전에 모임에서 10년 넘은 부모들이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는 의미로 말을 꺼냈는데 두더지가 그쯤되면 열심히 일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 하셨다. 그런가. 생각했다. 새로운 에너지, 열심히 일해야 할 사람들이 만나서 풀어나가는 잔치가 되면 좋겠다.
-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도 모아지지 않았다. 나도 인간극장이야기를 하겠다. 91세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더라. 곱게 나이든 할머니. 자식들 온다고 가래떡을 뽑았는데 방앗간 주인에게도 나눠주고 떡을 싸가지고 배에 감춰서 시장에 가는데 왜 그러냐 물었더니 "사람들도 많은데 다 드릴 수도 없고 미안하고 부끄럽잖아." 하신다. 열심히 농사일을 하시는 분인데 풀 뽑으러 가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더라.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 눈으로 보면 내가 언제 이걸 다하나. 싶은데 손이 내가 할테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한다더라. 우리 잔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 구랑실의 문자를 받았다. 배움지기들이 문자를 보내면 "외로워요. 꼭 오세요" 이런 말로 들린다. 같이 가신다길래 왔다. 카페에 사랑어린잔치가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해야 된다니까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 주인들이 누구인지(웃음) 잔치에 대한 생각은 쉬웠으면, 요란하지 않고 편안한 잔치였으면 한다. 천일기도의 마무리이니 가벼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소통 방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무지개 이야기처럼 소통 방법이 변화할 수 있겠다. 천일기도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놓치기 쉬울 것같다. 일꾼 수련 중에 두더지 말씀이 생각난다. 반디가 왜 배움지기들에게 혹독하게 하느냐 물었더니 두더지가 같이 살려고 그런다고 답하셨다. 이 사람들은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철학을 갖고 밥모심, 걷기를 하고 있는데 맞다는 근거도 없고 하고 있을 뿐인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 말씀을 들으니 하나로 통합되는 느낌을 받았다. 천일기도와 철학. 그런도화선이 잔치뿐 아니라 여러가지가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 비해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단어도 품격있어지고 거룩해지고 어려워지고 아름다웠졌는데 분위기는 냉랭해진 것 같다. 쉽고 따뜻한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통찰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내서 하면 좋지만 나처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요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한가위 전후로 앓이를 하고 있다. 이 학교로 오기전에 시련을 한번 겪었던 그때 그 마음들이다시 온다. 내가 3년 과정을 거치면서 깨어있지 못했구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 잊고 있었구나. 올 초 받은 글귀가"완성단계에 이르러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였다. 내가 지금 해야할 것들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마을공화국이라는 말, 마을 국가가 아니고 마을 공화국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고 회자되는지 생각이 들더라. 국가와 공화국의 차이는 크다. 국가는 일방적이고 지시적이라면 공화국은 각자가 주인이 되어서 함께 마음을 모으는 느낌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함께 어울려 노는 마을공화국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생각했을 때 가족약속문이떠오른다. 가족약속문에 우리가 여기, 이곳에서 해야할 것들이 담겨있다. 내가 어떻게 깨어서 보느냐. 그런 것들로 인해 나의 앓이도 마무리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 노래 부름
- 다음주 일요일 천일기도, 천일회향문의 초안을 구랑실이 작성하면 한다. 100개 기도문도 다음주 안에 초안을 가지고 천일회향문을 준비해나가자. 집중해서 준비하고 다음 주에 한번 더 만나면 좋겠다. 살림위, 배움지기 단위에서 알기 쉽게 정리하고 된다면 작년 준비했던 것도 첨부해서 구체적으로 일정까지 살펴보면 좋겠다.
여기 온 이유는 하나, 정성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잔치는 학교의 대사,. 큰일이다. 큰일을 치루는 자세로 마음을 모으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두번째, 내 자식을 보내는 곳에서 잔치는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학교에 대해 더 알 수 있다. 덕분에 나도 함께 어울려 놀면 잔치가 끝나면 훌쩍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 우리 스스로 중심에 서는 일이다.
일도 다 때가 있다. 정성을 들일 때가 있고, 앉아 있을 때가 있고, 움직일 때가 있다. 찬란한 태양을 가로막고 있는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고 느낀다. 빛을 받고 살것이냐 먹구름을 보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살 것인가. 찬란한 태양을 받고 살 것인가. 나와 인류의 불행과 고통이 끝나가는 것을 잘 느꼈으면 좋겠다. 시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새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 잔치가 되어야 한다. 고통받은 사람들이 위로받는 잔치면 좋겠다. 똑같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런 사람들이 위로받는,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마음 모으며 염원하는 것이 최소한의 일이다. 간절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천박하다. 우리 삶이 볼품이 없다. 정신이 깃들어 사는 사람, 혼이 있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답은뻔하다. 이번에는 내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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