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歌皇) 나훈아
유태용
만약 음악이 없다면 우리 생활은 어떨까? 생활이 삭막해지고 무미건조할 거라 생각이 든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해 좋은 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클래식을 들으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활력소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나는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여 같이 따라 부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대중가요란 글자 그대로 일반 대중들이 부르는 노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사랑, 즐거움 등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가사를 짓고, 곡을 붙여서 가수가 부르는 게 대중가요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로 갈린다. 대체로 엘리트라고 자칭하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싫어하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타지에서 한 나는 명절이면 시골에 있는 형님 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바깥 경치 구경이 심심해서 내가 좋아하는 대중가수의 노래가 들어있는 카세트를 틀었다. 첫 소절이 나오기도 전에 운전하던 집사람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노래라고 트나. 당장 끄세요.” 어린 딸이 말하기를 “아빠.시장 노래 꺼,”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는 대중가요란 저급하고 수준 낮은 소음 정도라 생각했던 것 같다. 더불어 이런 종류의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을 속으로 얼마나 경멸 했을까. 서로 다른 취미와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 가수 중 내가 처음 좋아했던 가수는 배호였다. 저음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따라 부르다 보니 내 목소리에 어울리는 것 같아 어디를 가서 노래 부를 기회가 되면 배호 노래를 먼저 불렀다. 주위에서도 배호 노래를 잘 부른다고 했다. 대학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 때 부른 배호의 노래 “파도”는 강당에 모인 청중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 후 나의 애칭은 유파도가 되었다.
가황 나훈아를 처음 본 건 부산 서면에서다. 직장 선배를 만나기 위해 서면에서 제일 큰 유흥업소에 들어갔다. 마침 그날이 나훈아가 업소에 출연하는 날이라고 했다. 당시 나훈아는 대중가요계에서 대스타로 활약하던 때이다. 출연을 모르고 업소에 드른 선배와 나는 이왕 온 김에 나훈아 노래 한번 들어보자며 의견이 일치했다. 장내가 정리되더니 실내조명이 일제히 꺼지면서 양쪽으로 늘어선 팬들의 환호 소리와 박수를 받으며 나훈아가 등장했다. 모든 것이 희다. 흰색 정장에 흰색 구두, 검은 부분은 얼굴과 머리 색깔뿐이다. 텔레비전으로 본 나훈아는 몸집이 클 거라 생각했는데, 실물은 날씬했다. 한 시간여에 걸친 자신의 히트 노래를 들으면서 나훈아라는 가수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의 노래는 특색이 있었다. 높은 음정에서 한번 꺾어 주는 것 ‘꺾기’라고 하는 창법은 어떤 다른 가수들도 흉내 낼 수가 없는 독특한 부분이다. 노래 한 곡마다 온 힘을 쏟아 부르는 그의 노래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일반적으로 작사가가 작사하고 작곡가가 곡을 붙이고 가수가 노래하는데, 나훈아는 스스로 작사, 작곡, 노래한다. 가사 내용도 시적이면서 서민들 애환을 노래한 것이 많다. 가황이라는 애칭이 아깝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일상에 지치고 힘든 국민에게 나훈아의 노래 봉사는 온 국민을 열광케 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비유한 ‘테스’형은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노래였다. 남북 교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쪽 가수와 연예인들이 북쪽으로 갈 때도 나훈아는 “내가 왜 독재자에게 가 노래를 불러야 하나. 내 노래를 들으려면 지가 오라케라.”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존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엿볼 수 있었다.
나훈아가 은퇴한다고 한다. 은퇴 공연을 마치면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앞으로는 나훈아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는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 줄 거로 생각된다. 자주 텔레비전에 나타나지 않고 간혹 얼굴을 비출 때 툭툭 던지 듯 하는 말이 국민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곤 했다. 남자가 어떤건지를 보여준 영원한 대중들의 히어로 가황 나훈아 형님을 보내며... “박수 칠 때 떠나라.”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