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있는 김밥집에 갔습니다
주말 오후라 분주했습니다. 한쪽 테이블에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이 떡라면을 시켰습니다. 얼굴이 우왁스럽고 머리가 하앴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말 붙이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강인해 보였습니다.
제가 주문한 김밥이 나올 때쯤 그의 음식도 나왔습니다. 라면 냄새가 코끝에 알짱거리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러 그의 품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는 라면 그릇을 껴안듯 하더니 눈을 감고 기도를 했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나의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내려 놓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네.
북한산 겨울 산행을 갔다가 노적사에서 따뜻한 밥 한끼 얻어 먹고 나오는데 벽에 붙여 놓은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싸갖고 간 도시락은 새끼를 낳고 배를 굶주려 뼈가 드러난 떠돌이 개와 눈이 마주쳐 내어줬습니다. 겨울이라 먹을게 없었을 텐데 젖 먹이느라 애썼겠다 했습니다. 산다는 게 밥 한끼 잘 먹고 마음 편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음식 한 그릇 내게 오기까지 씨 뿌리고 돌보고 거두고 유통하고 마름질해서 온갖 양념 버무리고 만드는데 하나님 당신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북한산 어디쯤 자라고 있을 젖먹이 강아지부터 허리 꼬부라지고 눈이 어두운 저의 어머니, 동녘교우 식구들 올 한해 다들 밥 잘 먹고 마음 편안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