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버크 이야기와 나의 꿈
히말라야 산맥에 우뚝우뚝 솟은, 아무도 서보지 않은 고봉들이 아직 많이 있다. 이를 찾는 이가 매년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으로서는 최고령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73세인 빌 버크(Bill Burke)는 올해 다시 그중 하나를 등정했다. “I'll be back"이라는 문구가 끝말에 담긴 이 소식이 email로 전해왔을 때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지난해 그가 연사인 산악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네 번째 만남이었다. 익숙해지려 낡아 버린 장비를 미리 손수 진열하고, 세미나를 마친 후 가방에 다시 챙기는 모습에서 진지한 그의 삶이 엿보였다. 장비를 챙기는 일에는 누구의 도움도 사양한다. 아마도 생명을 지켜주는 장비 하나하나가 몸 일부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와 첫 만남은 에베레스트 산에서였다. 세 번째 등정에서, 그의 나이 67세로 미국인 등정 기록 64세를 경신한 6년 전이다. 그 후 그는 티베트 루트를 2번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하늘은 허락에 인색한데, 왜 그리도 계속 다가가는지 그 비밀스러움은 해 본 자만이 안다. 그는 72세인 나이에 다시 정상에 서기 위해 티베트로 날아갔다. 네팔 쿰부 루트(남)와 중국 티베트 루트(북)를 동시 등정한 산악인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란다.
See you, Bill. 여섯 번째 초모룽마(에베레스트 산의 티베트어)을 향하는 손을 꽉 잡으며 마주한 얼굴,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서로에게 전한다. 철저히 준비한 산행을 마친 후에는 글, 사진, 동영상으로 말끔하게 마무리하는 산악인이다. 동영상에 나타난 정상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의지, 역경, 성취의 감동적 표현이다. 그에게는 지체장애인 손자가 있다. 빌은 산행에서 생사의 어려움을 마주칠 때마다 ‘내 귀여운 손자는 지금까지 어려운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쯤이야.’ 하며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고 한다. 강연 중 이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삶에서 우러나는 애정과 열정이 감동을 넘어, 온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살아오면서 찾아온 한번 해볼 만한 가치 있는 것들,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쳐버린 일들에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인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니 가슴이 조아려져 답답함을 금할 길 없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최상의 전문인도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진다. 에베레스트 등정에서는 열 중 서넛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이러한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다. 빌은 자연에 순종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어 안전하리라 믿는다. 그는 72세 나이에 자기 기록을 경신하고, 남북 루트를 동시에 오른 유일한 미국인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진솔한 삶조차도 꿈속에서 허우적거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꿈 큰 꿈, 이룰 수 있는 꿈 이룰 수 없는 꿈속에서. 이 표류 속에서 그나마 나를 지켜준 것은 산이었다. 산은 내 삶에서 이정표이고 나침판이었다. 이런 연유로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거대산맥의 최고 봉우리를 서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히말라야에 에베레스트 산(8,848m, 2009 등반), 남미 앤디 산맥의 와스가란 산(6,768m, 칠레, 2007 등정), 알래스카의 데날리(6,190m, 구 메켄리, 2006 등반)가 그들이다. 성공하면 그럴듯한 괴짜로, 못하면 미치광이 취급받지만,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커 퇴색되어가는 바람 속에서도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 지금도 낮은 산이건 높은 산이건 하얗게 눈 덮인 정상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끝이 싸해진다.
일전에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목전에 두고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섰다. 내년에 다시 하며 굳게 약속했지만, 그 후 아쉬움만이 가슴에 서성 인체로 6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마음을 달래려 침상 머리에 고산 등정기가 놓고 잠들기 전 몇 장씩 읽곤 했다. 그때마다 몇 줄 못 가서 성급한 마음이 설산으로 달려가 가슴이 뛰기 시작하여 책을 덮고 등정을 그리며 잠이 들곤 했다. 올해 초 다시 시도하려 일부 장비도 새로 마련했다. 그러나 훈련 중 허리 통증으로 2개월, 자전거 사고로 또 2개월을 보내어 계획이 어긋났다. ‘내년에 다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이 왠지 낯설기만 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빌의 의지는 늘 내 시선을 끈다. 산행 중 전해주는 그의 소식은 식어가는 정상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펴 새벽길을 뛰게 한다. 그는 이번 산행에서 만난 신령스런 느낌을 가득 안고 다시 나타나 묵직한 다래를 잔잔히 풀어낼 것이다. 그의 건강한 모습이 눈에 선하여 어서 보고 싶어진다. 내년에도 멋진 등정을 마치고 ‘I'll be back'이란 말을 다시 들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여명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껴안으며 길이 먼 버거운 희망의 날갯짓에 힘을 모아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굳게 믿고 싶어진다.
글 새김- 덩그렁 한 장 남은 달력에 비춘 저녁노을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바다 저 너머로 잠기는 검붉은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해를 거듭한 이야기가 가슴으로 다가 오면서 한 해의 끝말이 아닌, 삶의 고갯길을 넘어 낭떠러지로 치닫는 느낌이 듭니다. 다시 새겨 본 메마른 표현이어 송구스럽지만, 접하는 이의 가슴을 달구어 'Yes, I Can '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Thanks Billions !
첫댓글' 대해 생각해 봅니다.아버릴 우리네 생
'도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렇게 72세의 나이에도 도전 또 도전
손자를 생각하면서
도전하지 않으면,
내일도 홧팅
자전거 사고로 다치신 팔은
완쾌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