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 불교신문에서 금강경강송대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금강경강송대회’는 금강경을 쓰고, 암송하고, 그 뜻을 해설하는 것이다. 단박에 마음이 쏠렸다. 평소 안원장님이 금강경 암송하는 것을 보고 그저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경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금강경을 암송하고 그 깊은 뜻을 꿰뚫어야야겠다고 발심을 했다. 올해에 금강경을 암송 못 하면, 내년에 하고, 이생에서 암송 못 하면 내생에 태어나서라도 꼭 암송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에 한 분씩 사경하면서 외우기 시작했다. 한 분을 외우고 다음 날 다른 분을 외우면 전날 외웠던 분이 생각나지 않아서 절망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석 달 정도 지나니 금강경 전체가 고스란히 내 가슴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때의 환희심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금강경 관련 책도 10여권 정도 읽었다. 가장 감명깊은 책은 무비스님의 <신금강경강의>와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 이무개목사의 <금강경 읽기>였다.
드디어 10월 13일(토요일) 서울시 강남구 자곡동 탄허기념박물관에서 금강경강송대회가 열렸다. 아침 6시 13분 서울행 KTX 열차를 타고 남편과 함께 상경했다. 탄허기념박물관에 도착하니 오전 9시이다. 탄허박물관의 외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 전문으로 장엄되어 있고 시험장으로 쓰인 2층 보광명전 전면에도 불상 대신에 동판에 금강경으로 장엄되어 있다. 온 누리에 금강같은 지혜와 광명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발원이 곳곳에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회신청자는 130여명 정도이다. 오전 9시 반 부터 의식이 시작되고 대회장이자 금강선원장이신 혜거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운명은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멸도 후 2,500년이 지난 오늘, 현대인은 마음 밖에서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금강선원은 불교를 신심에서 수행으로 전환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1인 1경을 수지독송하기로 하고, 지난 해 제1회 금강경강송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올해가 2회째입니다. 이 대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1인 1경을 수지독송하는 수행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10시 반 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첫 시험은 예선필기시험으로 금강경 32분 중 지정분을 쓰는 것이다. 100점 만점에 필기시험은 한글로 쓰면 만점이 40, 한문으로 쓰면 50점이다. 오후에 이어지는 금강경암송이 30점, 금강경 이해도 부분이 20점이다. 참석자 네 사람이 나와서 유리통에 들어있는 32개의 동그란 종이 중 네 개를 뽑았다. 네 개의 분은 10분 장엄정토분, 23분 정심행선분, 27분 무단무멸분, 24분 복지무비분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유만만하게 한문으로 금강경을 써서 답안지를 제출했다.
박물관 구내식당에서 떡국과 바나나, 떡으로 마음에 점을 찍었다.
오후 1시부터 열 분의 젊은 스님 앞에 열 명의 참석자가 독대해서 스님이 지정한 금강분을 암송하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다. 나에게는 금강경 18(일체동관분)분을 외우라고 했다. 일사천리로 외우고 나니, 질문을 하셨다.
1) 오안五眼이 무엇입니까?
2) 금강경 3분에 나오는 구류중생란 무엇입니까?
3) 금강경 2분에 “희유세존”이라 했는데 왜 수보리가 그런 말을 했을까요?
4) 금강경 7분에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이란 무슨 뜻입니까?
5) 금강경 2분에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이란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나의 답변 중에서 보충하셨다. “희유세존이란 1분에서 부처님이 대중과 같이 먼 길을 걸어서 탁발을 하고, 발을 씻는 평상시의 일을 똑같이 하시면서 무상정등각을 이룬 분이기에 수보리가 한 말입니다. 1분에 금강경의 대의가 다 들어있어요. 보살님은 일체현성이 무위법으로 중생과 차별이 있어서 뛰어나다고 했는데, 삼승으로 구별된다고 해야 합니다.”
오후 3시에 개별 면담이 끝나고 참석자 모두 함께 금강경암송을 했다. 30분 뒤에 16명의 1차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내 이름도 호명되었다. “95번 정행심 보살님!”
열 분의 스님들 앞에 열 여섯 명의 참석자가 앞으로 나와서 두 줄로 앉았다. 16개의 문제지를 두 개의 통에 말아놓았다. 한 사람씩 문제지를 뽑으면 사회자가 크게 읽어주었다. 문제는 각각 두 개씩이다. 첫 번째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얼떨결에 일어서서 문제지를 뽑았는데 정작 문제가 무엇인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 다만 마이크를 들고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금강경 제 7분 무득무설분에서 부처님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정해진 법도 없고, 정해진 설법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습니다. 혜거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대인들은 모두 마음 밖에서 무엇인가를 구하려고 합니다. 금강경은 종교를 넘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경전입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중생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이고, 종교란 마음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명의 본선이 끝나자 다시 6명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최종 결선인 것이다. 내 이름이 다시 호명되었다. 이번에는 열 분의 스님 중앙에 앉으신 혜거스님이 직접 질문을 하셨다.
5명과 차례로 즉문즉답을 하시고, 마지막으로 내게 물으셨다.
“금강경 26분 법신비상분에서 법신이 비상이면 비상은 법신입니까? 사람들에게 법신이 비상이란 걸 어떻게 설명합니까? 32분의 사구게를 외우고 해석해보세요. 복과 공덕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비상이 곧 법신은 아닙니다. 색과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금강경 앞부분에서부터 계속 나옵니다. 다시 뒷부분 26분에서 부처님이 물어보니 수보리는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책을 찾아보니 원래 범어본에는 여래를 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구마라습이 번역하면서 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방편으로 대중의 입장에서 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는 것을 반어적으로 치고 나온 것입니다. 복은 분명히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복이 심히 많다고 분명히 경전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 복은 새어나가서 마침내 없어지는 유루의 복이지만, 금강경 사구게만이라도 수지 독송하고 타인에게 설하는 공덕은 앞의 공덕으로는 백천만억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복은 사라지지 않고 나무처럼 계속 자라나서 숲처럼 무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11분에서 말한 무루의 복이고, 무위의 복입니다. ”
설명을 다 하고 나니 동문서답이 된 듯 했지만 미련은 없었다. 시간은 예정보다 훨씬 초과되어서 오후 6시 반을 넘겼다. 오후 7시에 예약한 기차는 놓치고 오후8시 기차를 타고 귀가했다.
< 탄허기념박물관 >
<대회장으로 쓰인 보광명전>
<대회장이신 혜거스님>
<오후 16명의 예선 시험 중...>
<우수상을 받다>
<수상자들이 혜거스님과 함께 기념사진>
첫댓글 정말 너무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시 한번 더 축하 드립니다.
축하 축하 또 축하 드립니다.
놀랍습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