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정신(복길)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올림픽 배구 한·일전이 열린 밤에 나는 밖에 있었다.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이겼구나. 택시를 타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봤어?” 한껏 상기된 기운으로 건네는 친구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마스크 속으로 입꼬리를 실룩이며 웃었다. “못 봤어. 이겼다며? 이겼으면 됐지.” 기운 없는 내 대답이 미안했다.
접전 끝에 5세트. 박정아의 영리한 블로킹과 오지영의 처절한 디깅 같은 것을 생생하게 중계하느라 친구의 숨이 가빴다. 12 대 14 매치포인트, 14 대 14 듀스, 15 대 14 역전, 다시 매치포인트. 연속 4득점 극적인 승리. “이 경기를 놓친 거 두고두고 후회할 걸? 꼭 다시 봐!” 통화가 일방적으로 끝났다. 이제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한·일전만큼 다이내믹했던 오늘 하루를 늘어놓을 차례였는데.
택시에서 내려 곧장 편의점에 갔다. 창가 자리에 앉아 비타민 음료 한 병을 마시고 나니 피로가 풀렸다. 그러자 애써 외면하고 있던 막막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은 일을 관두겠다는 생각을 한 날이었고 동시에 완전히 잊고 있던 대출금의 존재를 알게 된 날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빌리고 다시 그 돈을 갚기 위해 몸의 빚을 내는 일은 이렇게 반복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감수하며 사는 이 굴레가 그날 나를 한없이 무너뜨렸다.
“다음 파리(올림픽) 때는 1차부터 1등 무게로 들어가서 다 이겨버릴 거예요” 아쉽게 메달을 놓친 역도 국가대표 김수현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울컥했다. 이를 물고 말하는 저 ‘오기’가 무엇인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나를 키우는 것은 무조건 더 많은 일을 더 완벽하게 해내는 것밖엔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체력 다음엔 정신력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 마법 같은 단어는 잦은 출장과 철야마저 거뜬히 버티게 해줬다.
“알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휴대전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문장이다. ‘자동완성 기능’에 저장될 만큼 지겹게 뱉은 말은 온몸에 퍼진 염증이 되었다. 안과를 가고, 피부과를 가고, 내과를 갔다. 눈꺼풀엔 안연고를 바르고, 몸에는 스테로이드 로션을 바른다. 속이 쓰리면 위장약을 먹고, 밥을 먹고 나선 소화제를 먹는다. 두통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사 놓은 알약은 찬장에 가득이다. 내게 나타나는 증상들은 대부분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위험신호일 뿐이니, 반드시 검진을 받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의사들의 엄중한 충고도 속절없이 쌓이기만 했다.
“내가 무언가 하나 해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기보배 선수의 해설을 듣고 옛날 생각이 났다.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내가 잘 모르는 파트의 일을 혼자 해결하려다가 시스템을 포맷시키는 대형 사고를 쳤다. 화장실에서 펑펑 울고 있는 나에게 화를 누그러뜨린 사수가 다가왔다. 책임감의 크기를 미리 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감은 책임감이 아니라 부담이고 그건 결국 모두를 다치게 할 거라고. 내 어깨를 다독이는 그 손이 무섭고 다정했다.
시몬 바일스의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몸을 지켜야 한다’는 말과 김연경의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가 공존하는 이번 올림픽은 삶을 하나의 태도로 일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가장 큰 대회에서 보여준 위대한 순간들에 의지해 나는 숨을 고르며 지금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에 ‘죄송하지만 일정이 바빠 어려울 것 같다’는 답신을 보냈다. 처음 해본 거절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괜찮습니다. 다음에 저녁 한 끼 해요!’ 여유를 찾으면 내가 저녁을 사야지. 다짐했다. 2021년에 새롭게 정의된 ‘올림픽 정신’. 나를 이렇게 고무시켰다.
첫댓글 극공감됩니다.
계영배(戒盈杯)의 교훈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