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천 년 조상들이 살아놓았던
이이기만 전해 들었던 민족이다.
옛날 누군가
이렇게도 살아 보았고
저렇게도 살아보았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대화가 일어나지 않는 원리가
이해되어야
그러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치를 깨치게 된다.
어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하시지
대화를 나누시지는 않는다.
서로 자신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어려운지
내 앞 인연들에게 말만해도 풀린다.
열녀문과 효자각이
전국에 펴져 있어도
누군가 왜 그러한가를 풀어주는 사람이 없기에
이야기로 전해질 뿐이다.
나도 저 효자처럼 해 보니까?
이런 문제가 있고,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는 연구가 없다.
연구해 본 적이 없기에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대화는
상대 말을 듣고
상대에게 질문을 하고
나와 다른 점을 상대로부터 배우는 일이다.
어른은
젊은이를 모르고
젊은이는 어른을 모른다.
물과 기름으로 분리가 되면
젊은이도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면
오늘 어른보다 더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세상은 갈수록 더 발전되고
성장하는 젊은이는
오늘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화의 근본은 먼저 들어주는 일이다.
들었던 이야기를 가지고 서로가 나누어보면서
대화가 일어난다.
자신이 아는 것만 이야기하면
주장이 되고
다툼이 일어난다.
풀어보면 다 아는 내용이다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만 다를 뿐이다.
답답한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
이해시킬 실력이 없는가?
저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는지
아랫사람이 나를 따르지 않는지
나를 먼저 반성하고 상대 말을 존중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대화가 없다.
이야기만 전해진다.
건국절에 대한
이야기를 다르게 들은 사람만 있다.
광복절에 관한
이야기를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만 있고,
현충일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만 있다.
과거를 산 사람이 전해준 것은 정보다.
정보를 가지고
연구해야 바른 답이 나온다.
이야기만 듣다 보면
답답함을 느끼고
지식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으면
대나무밭으로 나가서 허공에다 이야기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이제는 모여
연구하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4년9월29일
나
너
우리다.
세 사람의 뜻이 같아야
하나의 연구가 시작이 된다.
지식은
공유하고 나누어보는 것이고
상대를 평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보태는 일이다.
그 다음에 오는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이 또 우리가 하는 일에
동참을 한다.
대화는 그때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