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하늘님 이제 잠에서 깨요(한돌 타래)(1)
월간 풍경소리 2020. 01. 20
[1]
열네 명의 악사들이 자기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율하는 모습을 보니까 악사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조율하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이제껏 조율하는 소리를 신경 써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조율하는 소리가 유난히 아름답게 들린다. 각자 조율을 끝내고 소리를 맞추는 모습도 보기 좋고 악보를 뒤적이는 소리도 듣기 좋다. 세상살이가 이런 모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막상 나는 나를 조율한 적이 없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것이 조율이라면 나야말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나는 즐거운 날보다 쓸쓸한 날을 더 많이 살았다.
[2]
내 마음에도 첼로처럼 네 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꿈줄, 사랑줄, 믿음줄, 소망줄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조율하지 않고 살았다.
어떻게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 살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무리 좋은 악기도 사용하지 않으면 삭는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꿈과 사랑과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삭아서 없어지는 것이다. 만약 어린 날의 순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 마음의 첼로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가족, 내 겨레, 내 나라를 위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싶다. 아, 불쌍한 나의 첼로! 줄이 다 삭아 버렸구나
[3]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는것도, 땀 흘리며 산에 오르는 것도 다 그런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음 조율을 하면 하루가 평화로울 텐데 그 쉬운 것을 하지 않으니 즐거움이 없다. 비 내리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맞는 나무들을 보면 푸르던 잎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살아도 봄이 되면 새잎이 돋는다. 사람들은 비 내리면 우산을 쓰고 찬바람 불면 따뜻한 곳을 찾으니 마음에 새잎이 돋아날 겨를이 없다.
[4]
연주하기 전에 음을 맞추는 것이 조율이고 풀어진 나사를 조이는 것도 조율이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거울을 보는 것도 조율이고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망설이는 것도 조율이다.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조율은 군대 수송부에서 보았던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라는 글귀다. 수송부 요원들은 날마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쳤다. 덕분에 차들은 고장 나지 않고 늠름하게 보였다. 나도 그시절에 마음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쳤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후회가 된다. 젊은이들이여, 떠나간 사랑 슬퍼하지 말고 희망에 속았다고 세상을 원망하지 마라. 날마다 마음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면 가시덤불 같은 이 세상,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
역도 선수가 역기를 들어 올리기 전에 심호흡 하는 모습은 역기를 들어 올릴때보다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할까 말까 하는 그런 마음처럼.
나도 어릴 때는 순수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조율 없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율하는 방법을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이나마 순수를 지니고 있었을 텐데…. 조율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날마다 한마디씩 해 주는 것도 조율이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인도하는 것도 조율이다.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면 아이들 스스로 조율하는 법을 배우며 컸을텐데 부모가 아이들을 계속 조율하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분신이 되고 스스로 꿈을 찾는 더듬이도 퇴화되는 것이다. 끊어진 기타줄 정도라면 다시 새 줄로 갈아 끼우면 되지만 한 번 퇴화된 더듬이는 되살리기 어렵다.
[6]
꼬마 해바라기는 얼른 자라서 담장 너머 세상을 보고 싶어 했지. 담장 밑 세상보다 훨씬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날마다 해님한테 빌었지.
빨리 어른이 되게 해 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커버린 꼬마 해바라기는 마침내 담장 너머 세상을 보게 되었지. 그런데 그날 뒤로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여버렸어. 품고 있던 꿈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건지, 담장 밑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해바라기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어. 해바라기는 풀어진 꿈 줄을 어루만지며 다시 감기로 했지. 하지만 끊어질까봐 쉽게 감지도 못했어. 해바라기는 하느님한테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을 해달라고 기도를 했지.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번갯불이 하늘을 가르고 우르르 쾅하는 소리가 들렸어. 해바라기는 하늘에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 지. 주르륵 쏟아지는 빗속에서 해바라기는 숙였던 고개를 더 숙이고 허둥지둥 담장 밑을 내려다보았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어린 날의 그 세상은 보이지 않았어.
[7]
동물 가운데 가장 욕심이 많은 동물은 사람이다. 그래서 조율을 할 줄 모른다.
그 동물이 지구를 해치고 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자연은 오히려 그 동물을 보호하려고 애를 쓴다. 태풍 불고 홍수 나고 가뭄 들고 하는 것이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고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저지른 죄도 모르면서 자연을 원망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얘기다. 자연은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사람은 자연을 원망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고는 하나 결국 그들에 의해서 지구는 멸망될 것이며 자연은 그 뛰어난 동물을 안타까이 여겨 점점 더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사람들이여, 이제라도 반성하고 조율을 시작하자. 그나마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지구에게 사죄하는 것이고 멸망을 늦추는 일이다.
[8]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거짓으로 들릴 수 있고 부모의 사랑 어린 얘기도 아이들한테는 잔소리가 될 수 있다. 말은 하지 않을수록 좋은 거지만 굳이 하겠다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는 것이 좋다. 말이 많은 사람은 조율이 안 된 것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조율이 풀어진 것이다. 제 마음을 조율하지 못하는 천사는 제 마음을 조율할 줄 아는 악마보다 못하다.
[9]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백성들을 위해서 나름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준비도 없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뒤늦게라도 백성들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만약 그 일을 게을리하면 무능이요, 구석구석 느슨해진 나라의 나사를 제대로 조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무능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학생회장 한번 하고 감방 한번 갔다 온 이력을 밑천 삼아 정치판에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을밑천 삼아 뛰어든 재력가도 있고 얼굴을 밑천 삼아 뛰어든 연예인들도 있다. 물론 교수나 법조인들도 많지만. 내 말은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과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 백성들은 정말 대통령 복도 없고 국회의원 복도 없다. 언제쯤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 나라를 조율해 줄 것인가. 산이 산 되고 강이 강 되고 사람이 사람 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