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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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 듯이 저는 교회력 맞추어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셋 째 주일 여전히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교회력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상 겪는 어려움의 때입니다. 부활에 대해 설교해야하는데, 부활절에서 이미 한 번 쏟아내고 부활절 둘째주일에 못 다한 이야기를 또 털어내면 그 밑천이 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령강림절’이 오기 전까지 부활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니 골치가 아픈 것이지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오늘을 맞이 하였다고 넋두리를 먼저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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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그 해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그 해 교회 예배에 대해서 기억을 하고 계신가요? 그 해 교회는 참사가 있고 나서 부활절을 맞이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가라앉은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봐 놓고는 우리는 부활을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날의 부활이야기가 여러분은 기억나십니까?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가 여러분은 괜찮으셨습니까? 여러분은 세월호 이후의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김태춘이라는 가수는 그 해를 보내며 이런 노래를 짓고 부릅니다. 그의 콘서트 이름은 복음순례였는데요. 그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한번 들어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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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셨나요?
김태춘은 노래합니다. “당신은 날 위해 해준 게 하나도 없네, 내 집이 불탈 때에도 내 사랑이 날 떠나 갈 때도, 당신은 교회 십자가에 앉아 휘파람만 불고 있었다네. 당신은 날 위해 빌려준 돈이 하나 없네 영혼이 팔려갈 때에도 내 신장이 적출 당할 때도 당신은 날 위해 죽은 적이 없네. 악법이 통과될 때도 악인이 거리를 활보할 때도 재판장 한가운데 재판관의 옷을 입고 당신은 날 위해 해준 게 하나도 없네 지옥에서 보자.”
내 집이 불탈 때 내 사랑이 날 떠나갈 때 너는 날 위해 무엇을 했냐, 너는 교회 십자가에 앉아 휘파람만 불고 있지 않았냐 하는 것이 2014년을 보낸 그의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해 부활절을 보내며 했던 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우리는 했지요.
유럽의 신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아우슈비츠를 지나며 이 같은 질문을 했지요. 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은 자신의 책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에서 홀로코스트 수용소 박물관에 간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글을 워낙 많이 읽었기 때문에 나는 준비가 돼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를 멍하게 만든 하나의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었다. 각종 고문기구를 전시한 수용소 박물관에는 알베르트 마인스링어라는 이름의 수감자가 입었던 헤진 줄무늬 옷 한 벌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두 장의 종이가 진열돼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가 수용소에 입소할 때와 출소할 때에 기록이 남아 있었다. 1939년 입소기록에 따르면 그는 114킬로그램이었고 그의 종교는 가톨릭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미국 행정관의 사인이 된 1945년 기록을 보면 그의 몸무게는 41킬로그램으로 줄어 있었고 종교를 묻는 칸에는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침묵하며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알베르트 마인스링어라는 사람의 6년 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수 년 간에 걸친 배고픔, 아침저녁으로 마주했을 교도관의 구타, 추위와 무더위 속 끊임없이 이어지는 격한 노동, 사방에 분노에 찬 사람들, 이런 것들이 언제 끝날지, 또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들, 114킬로그램이 41킬로그램이 되는 동안 그의 영혼도 그의 신앙도 말라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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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마인스링어의 6년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10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며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신학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요한 밥티스트 메츠입니다. 그는 독일군에 의해 전방으로 강제징집 되어 10대 시절을 보낸 독일의 신학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군대에서 전령을 전달하러 본부로 보내졌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 그와 동고동락하였던 전우들이 연합군의 탱크와 포 공격으로 전멸을 당했습니다. 자대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시체만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과 웃음을 나누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메츠는 그 앞에서 말없이 비명을 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날 하느님은 선하며 세계는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그의 신앙적 환상에 커다란 틈이 벌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후 신학을 공부하며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공포를 파고 들면 파고 들 수록 10대 시절 생긴 그 틈을 메울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틈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 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과 함께 하느님을 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츠는 탐색 끝에 이런 제안을 합니다.
<기억하기>
기독교인의 삶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이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기억해왔습니다. 이 기억은 매주 예배를 통해 반복되고 또 성찬의 빵과 포도주로 재현되기도 합니다. 메츠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지금 고통당하는 자들,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메츠는 이 기억을 ‘위험한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억은 패배에 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승자의 기록이 맞서는 것이 패자들의 기억이라는 것입니다. 패자들의 기억이 계속될 때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메츠의 신학을 공부할 때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기억을 하는 일로 승리를 한다는 말이 조금 힘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어제 세월호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읽을 발언문을 준비하며 메츠의 이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메츠의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는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날 어수선했던 학교의 풍경이 제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날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곱씹고 곱씹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에 젖은 사람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던 기자들을 기억하니 저는 그 기자와는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에 젖은 사람들에게 섣부른 질문보다 담요를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전원구조라며 오보를 전했던 앵커를 기억하니 저는 그 앵커와는 다른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명을 다루는 일에 경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지 정치가 아니라며 노란리본을 달지 못하게 했던 교장 선생님과 친구들을 선동하지 말라며 따로 전화를 했던 친구의 어머니를 기억하니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정과 생각에 한번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겠다 생각할 수 있었고, 청운동 동사무소 앞 농성장을 가는 길목을 막아서고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을 기억하니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무엇이 옳은 일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이 되겠다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은 이렇듯 새로운 힘을 만들어냅니다. 기억은 단순히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억은 지금 남을 해치고 죽이는 자들의 승리로 끝을 맺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우리의 행동을 추동하는 힘입니다. 메츠는 이 일을 부활이라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억으로 하여금 행동하는 것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을 했던 신학자가 찾아낸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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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들과 함께 부활절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기억하기’는 여전한 우리의 숙제라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답게 삽시다. 기억하고, 또 행동합시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