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부가
같은 일을 하시다보니
몸이 불편하시다.
자식들이 늘
일을 그만두시라고 권한다.
시간이 지나
막내 아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모님 댁으로 찾아간다.
한 분은 다리를 절고
한 분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까지
일하시는 모습이 안 쓰러워
그만하신다는
각서를 쓰시라 한다.
할머니는
유하신 분이라
각서를 써 주었지만
할아버지는 완고하신 분이다.
내가 집에만 있으면
병날 것 같으니 해야 한다고
아들과 밤늦게까지 말다툼하고 갔다.
다음날부터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만둔다고 하시면서
인사를 다니신다.
부모님은
더 이상 자식들 보기에
존중되지도 않고 존경받는 삶이 아니라
걸림돌로 작용한다.
참으로 대책 없는 고집 센 노인으로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를 모른다.
지금은
다리를 절고 힘도 없고 경제도 없지만
과거 한 동네를
주름잡으시던 분이시다.
그분에게
도움 안 받는 사람이 없고
지금도 나서면
누구나 인사를 한다.
그런 아버지가 힘이 없다고
강제로 은퇴식을 연다고 해도
따를 수가 없다.
아직 자식들이
아버지를 연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보면서 연구하라는 것이다.
왕년이
그렇게 잘 나가던 나도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지
자식에게 교과서로 보여준다.
너희들도 지금은 잘 나가도
돈이 무엇인지
경제가 무엇인지
인연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말년에 나처럼 산다고 보여주는 삶이다.
참으로 묘한 은퇴식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오늘 저 할아버지를 보면서
국민들이
같이 연구 하는 일이다.
내일 먹을 끼니가 없다면
다시 나와야 하는 것이 삶이다.
자식들이 모아서 준다고 해도
언제까지인가?
아들들이 경비를 된다고 하는순간부터
오만 일들이 일어난다.
병원비가 늘어나고
노인네들이 얼마나 먹을 것만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할 일 없으면 아픔이 오고
자식들이 차례로 병원에 들락거려야 한다.
부부가
같이 병원에 입원한다면
그때도 아들들이 경비를 댈 수가 있는가?
없다면
지켜보면서 내 공부하는 일이다.
은퇴식은
존경받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졸업하면 다음으로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고 해야 바른 것을 찾는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4년10월6일
회사를 은퇴하면
누군가 모시러 온다
갈 곳이 없다면 명퇴가 되고
갈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다시 인생을 산다.
졸업하고 갈곳은 있는가?
사람은
평생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