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의 태동과 추구하는 가치
오늘( 5월1일) 경남 유교대학 강의를 맡으신 분은 성신여자대학교 김용재 교수다. 주제는 ‘양명학’ 공맹 유학의 뿌리에서 나온 시대정신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향교에 가서 오늘 공부할 교재를 읽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중에서 핵심적인 내용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았다.
1교시 수업은 유학이 전수 되는 과정을 시대별로 특징지어 강의를 하셨다.
사실 양명학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비주류 학문으로 여겨져 크게 번성하지 못했다. 교수님도 그것을 인정했다.
비록 양명학이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을 지라도 공자의 학문 원류에서 벗어나지 않은 학문임은 분명하다. 공자의 말씀 중에서 ‘性相近 習相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본성은 서로 가깝고 비슷하다. 그러나 살아가는 환경이나 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맹자의 선성설은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그 착한 본성만 잘 지켜나가면 누구나 성인 군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곳간이 비면 인심은 사나워져 반목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도덕성이 붕괴된다. 왕수인은 전쟁으로 피폐되고 도덕성이 붕괴된 현장을 목격하고 傳習錄을 발간하여 주희의 주해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김용재 교수의 강의 중에서 용어의 정의를 달리 규명함도 특이했다. 예컨대 ‘분서갱유’는 ‘갱유분서’가 적합하고, ‘삼강오륜’은 ‘오륜삼강’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는 행위가 일어 난 순서대로 기술함이 옳다고 본 것이다.
양명학은 육상산에 의해 태동하고, 왕수인에 의해 집대성된 학문체계이다. 그런데 김용재 교수님의 교재에는 아예 육상산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로는 주희와 육상산은 동시대 인물로 서로 학문의 대척에서 일가를 이루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왕수인은 주희보다 340여년 후의 인물이다. 왕수인은 주희의 주석이 너무 교조적이고 자의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보고 그것 보다는 통합적인 견지에서 사람의 마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주희의 주석에 비판적이었던 사람이다.
1교시는 왕수인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수업이 종결되었다.
쉬는 시간 중간 즈음에 내가 김용재 교수에게 다가가서 ‘교수님!, 제가 교수님 강의 교재를 다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왕수인만 언급하고, 육상산의 언급이 없음이 의아합니다. 저는 박완식 교수의 강의를 자주 듣습니다. 얼마 전에 박 교수님의 중용강의 중에 ’尊德性 道問學‘이라는 구절을 설명하시면서 이 구절이 후에 양명학과 주자학을 가르는 분기점이 된다고 하시면서 ’尊德性‘을 더 중요시한 학문이 양명학이고, ’道問學‘에 더 방점을 둔 학문이 주자학이라 말씀하시면서 ’鵝湖寺‘에서의 논쟁을 언급하시더라고 말했다. 김 교수님께서 나의 이름을 묻고 웃으셨다.
2교시 수업 시작과 더불어 이렇게 언급을 했다. 오늘 내가 강의하러 올 때는 육상산은 대충 건너뛰고 왕수인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는데 수강자 중에서 지적을 하셔서 육상산과 왕수인을 함께 강의를 하겠다고 하면서 육상산 이야기부터 했다.
양명학의 근원을 세운 육상산(본명육구연)은 송(南宋)나라 시대의 학자로서 명나라의 왕양명보다 340여 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다.
왕양명이 양명학을 완성했다면, 그 기초가 되는 '심학(心學)'의 문을 처음 연 사람은 육상산이다.
육상산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라이벌로서 1175년, 아호사(鵝湖寺)라는 절에서 두 학자가 만나 큰 논쟁을 벌였는데 이를 '아호사의 만남'이라 후대의 학자들이 명명했다.
이 논쟁에서 주희는 "먼저 밖으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格物致知."를
육상산은 "진리는 이미 내 마음에 있으니, 번잡하게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心卽理.“의 입장을 견지했는데
이 논쟁이 훗날 성리학(주자학)과 양명학이 갈라지는 결정적인 기점이 된 것이다.
육상산의 철학은 왕양명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다음과 같은 공통된 핵심 가치를 공유했다.
"우주가 곧 내 마음이다(宇宙便是吾心)": 육상산은 "우주 안의 일은 곧 내 마음 안의 일이고, 내 마음 안의 일은 곧 우주의 일이다"라고 했다. 이는 왕양명의 '심즉리(心卽理)'로 이어지는 핵심 사상이 된 것이다.
이 사상이 추구하는 귀결점은 복잡한 경전 공부나 외부의 지식 탐구보다, 내 마음의 본체를 바로 깨닫는 '단도직입'적인 수양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양명학이 태동하게 된 동기는 성리학이 너무나 교조화와 형식화에 치우쳐 사물의 이치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격물치지'가 학문의 유희나 암기 위주로 변질되고, 지식은 많으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경전의 해석에만 매몰되어 인간의 자율적인 도덕적 주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에서 출발 했다.
왕양명은 이러한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내 마음이 곧 진리"라는 실천적 철학을 제시하며 양명학을 창시했다.
양명학이 내세운 핵심적 가치를 언급하면 첫째, 외부가 아닌 인간의 내면을 집중한다.
둘째, 심즉리(心卽理)로서 마음이 곧 이치이고. 우주의 원리(理)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
셋째, 치양지(致良知)로서 타고난 선한 지혜(양지)를 지극히 발휘하라. 인간은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본능적인 지혜인 '양지'를 가지고 태어나므로,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공부다.
넷째, 지행합일(知行合一)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다. "아는 것은 행함의 시작이요, 행하는 것은 아는 것의 완성이다" 참된 앎은 반드시 실천을 동반해야 한다.
이러한 양명학의 역동성이 훗날 근대적인 평등사상이나 실학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