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3
3.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줄거리
드팀전의 허 생원은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밤이 들어, 허 생원은 조 선달과 동이와 함께 나귀를 몰고 다음 장으로 발을 옮겼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달이 훤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레,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개울가에 메밀꽃이 활짝 핀 달 밝은 여름 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다. 그는 오늘도 이 얘기를 조 선달에게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 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된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 봉평이라는 말에 허 생원은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이튿날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득 그는 나귀를 몰고 가는 동이의 채찍이 왼손에 잡혀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그 자신도 왼손잡이였던 것이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배경 : 어느 여름 밤,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메밀꽃 핀 달밤의 산길
성격 : 낭만적. 탐미적. 시적(서정적)
표현 : 낭만적 흐름을 보이면서도 사실적 묘사가 많이 나타남. 대화의 진행과 암시에 의한 주제 부각. 지명의 반복으로 의식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냄
제재 : 장돌뱅이 허 생원 일행의 삶
주제 : 장돌뱅이의 인생 유전과 인연. 인간 본연의 애정문제
등장 인물
허 생원 : 주인공. 서정적인 일면도 있음. 유랑의 원형을 가진 떠돌이 인생. 과거의 추억 속에 살아가는 외로운 장돌뱅이.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기 전에는 죽을 때까지 장터에 남겠다는 낭만주의적 성향의 인물. 소심하고 숫기가 없는 인물.
조 선달 : 보조적 인물. 원만한 성격.
동이 : 행동에서 허 생원의 친자식으로 암시되는 인물. 의부의 행패로 가출한 애숭이 장사꾼으로 솔직하고 순박한 청년
이해와 감상
소설이 지닌 산문성보다는 오히려 시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작품은 '소설의 교과서'라 일컬을 정도로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우수한 소설의 하나로 주목된다. 특히, 이효석 문학 세계가 가장 잘 응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괴로운 인생의 삶의 현장을 묘사하기보다는 인생을 자연과 융화시킨,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두 가지 기본 줄기는 남녀간의 만남과 헤어짐, 부자의 상봉을 통한 친자 확인이다. 특히 부자 상봉의 모티프는 오래 전부터 신화나 야담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것(대표적인 '유리왕설화'가 있지요)으로, 이효석은 이러한 기이한 부자 상봉의 모티프를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달밤의 산길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내었다. 인생을 자연과 융화시킨 예술성, 시적인 장면 묘사, 유추를 중심으로 한 사건 전개,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문체, 향토색 짙은 서경 등이 작품의 주제와 잘 어우러지고 있는 심미주의, 낭만주의 경향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사 단위의 정연한 안배나 인간과 짐승과의 융합과 화해의 구조를 통하여 제시한 혈연적인 연기(緣起) 관계의 암시 등 그 짜임새와 포석이 완벽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역시 도시적 성격과는 거리가 먼 '산길→달빛→메밀꽃→개울'로 이어지는 산수화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삶의 고통보다는 자연에 동화되어 회상을 반추하며 떠돌아다니는 한 장돌뱅이의 정한과 애수는 물론, 인연의 미학, 즉 애욕의 신비한 연쇄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만큼 이효석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정적주의(靜寂主義)를 택하면서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인다.
나귀와 허 생원은 서로 밀접한 신분 관계(동고동락)에 있으며, 나귀가 허 생원의 정감의 원형이 되고 있다. 즉, 나귀와 나귀의 생태를 통해서 인간의 애욕과 출생의 비밀, 피붙이를 찾는 부성애를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자연 미학의 근거에는 인간의 동물적 차원이란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의 특징은 공간적 배경이 직접 작품의 주제에 관여한 점이다. 이 작품 전체의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땅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팔십 리의 밤길이다. 이 밤길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즉 일정한 목적지로 가기 위하여 설정된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통로가 아니다. 이 밤길은 떠돌이 주변인, 유랑객들에게는 정신의 고향으로서의 안식처이다.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밤길 --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자연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환상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세계이다.
부드러운 달빛이 흐르는 달밤에만 괴이한 옛 연분 이야기를 꺼내는 허 생원의 심리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되고, 이를 더없이 말고 밝게 하는 낭만적인 배경과 분위기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더듬는 허 생원의 내면세계를 입체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더구나 인간과 동물의 애욕을 교묘하게 병치시킨 구성 방식은 이 작품의 독특한 묘미라 할 수 있다. 허 생원이 술집에 들어가 충줏집을 탐내고 있을 때, 그의 당나귀는 암놈을 보고 발정을 한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하는 아이들의 말이 허 생원에게는 자신에 대한 조소처럼 느껴진다. 또, 단 한 번의 일로 강릉의 피마에게 새끼를 보게 했던 '나귀'의 운명은 '성씨 처녀'와의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이 된 로맨스에서 '동이'를 얻게 된 그것과도 같다. 뿐만 아니라, 당나귀의 까스러진 갈기, 개진개진한 눈은 허 생원의 외양과 흡사하다. 이와 같이 허 생원과 나귀는 어떠한 주체와 객체 사이의 완벽한 정서적 융합을 이루고 있으며, 작품의 효과면에 있어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단, 작품의 말미에서 허 생원과 동이가 부자간이라는 암시를 주는 '왼손잡이'에 대한 서술은 그것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고려할 때 부자연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이는 의미의 함축성이라는 면에서, 문학만이 갖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효석 문학의 특질을 거의 다 읽어낼 수 있다. 문맥을 통하여 읽어 낼 수 있는 자연과의 친화, 본원적인 인간의 삶과 원초적인 사랑이 이효석 문학의 주제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이라면,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문체, 배경와 인물 및 사건의 긴밀한 조화, 치밀한 플롯 구성,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사실성 강한 묘사 등은 기법과 관련하여 이효석만의 스타일을 형성시키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글동산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