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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천일염에 대한 이 책의 저자 황교익과 염전업자들과의 의견 차이가 갈등으로 부각되어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천일염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라는 염전업자들의 의견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동안 한국의 천일염이 프랑스의 게랑드 염전에서 채취된 것보다 뛰어나다는 의견을 듣기도 했던 터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지금, 왜 저자가 그런 주장을 하게되었는지에 대해 그 배경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어떤 의견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저자가 그러한 주장을 펼치게 되었던 근거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도 종종 언급되고 있지만, 저자는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음식비평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던 인물이다. 특히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먹었던 ‘쑥과 마늘’은 ‘쑥과 달래’였을 것이라는 추론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그대로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니 더욱 공감하는 정도가 커졌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책의 마지막인 4부의 제목이기도 한 ‘맛 칼럼니스트는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라는 주장도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정치는 정치인에게’라는 의식이 특히 강한데, 그러한 일반의 견해가 지금과 같은 ‘무정치의 정치’라는 현상을 낳게 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 ‘맛 칼럼니스트’ 뿐만이 아니라, 전공이 무엇이든 학자들도 ‘정치적 견해’를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음식을 정치에 이용했던 과거의 그릇된 사례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의견에 공감할 수 있었다.
최근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전통음식’이 허구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하나씩 깨우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의 내용 역시 언제부턴가 대중들에게 하나의 ‘신화’로 자리를 잡은 음식에 대한 ‘상식’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궁중음식’의 실체는 기껏 일제 강점기 ‘요릿집’에서 만들어진 식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든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사찰음식’ 역시 본래 사찰과는 거리가 있는 ‘새로운’ 음식일 뿐이라는 것들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남도’의 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남도밥상’이 과연 ‘전통적인 상차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예전부터 지니고 있었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지금의 ‘남도밥상’은 상업화된 형태로 만들어진 상차림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농토가 비옥하고 넓었던 남도 지역의 산물이 다양하기에, 음식의 종류나 양은 비교적 여타 지역에 비해 풍족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서울에서 온 친구들에게 나는 ‘서울의 맛집보다 이곳의 평범한 식당의 음식이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실제로 가격이 저렴한 식당을 안내하더라도 만족하며 먹는 친구들의 입에서, 그에 대한 긍정의 답변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저자는 ‘남도 음식은 맛있다’라는 선입견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갑과 을의 밥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한 관념이 허구적이었음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예컨대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이유에 대해서 근거를 통해 논하고 있다. ‘치느님 치느님 맛없는 치느님’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야식인 치킨은 맛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그저 튀김옷으로 그 실체가 가려져 있을 뿐이라고 단언하다. 이밖에도 1부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들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들의 실체와 그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책을 읽고 나서 저자의 의견에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2부의 ‘한식 세계화 네버다이’에서는 이른바 ‘한식’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정권 영부인의 ‘한식 세계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 알 수가 있었으며, 결국 음식은 문화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웅녀는 마늘을 먹지 않았다’는 제목의 3부에서는 이른바 ‘향토음식’이 실은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여기에서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내용은 규격화된 제사상의 상차림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었다. 나 역시 평소 형식만 남은 제사의 상차림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제사조차 필요 없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에 대해서는 선뜻 찬성하기가 쉽지 않지만, ‘명절 증후군’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명절 때의 과도한 음식 장만은 분명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을 즐기기에,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식당이나 음식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기꺼이 응하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간혹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였다. 누군가 내가 생각한 맛집들을 적어두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에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은 이른바 ‘맛집 리스트’를 파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입맛은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이기에, 때로는 소개한 식당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반응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 다음부터는 식당들을 소개하면서, 철저히 내 입맛에 맞춘 것이라고 강조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결국 누군가의 기준에 의해서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음식의 다양성과 풍부한 의미를 거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때문에 음식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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