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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 오준, `사람의 땅 시의 길` 원문보기 글쓴이: 해와
勺詩富林 38강
4장 시와 언어, 4. 投射와 內入의 秘義
2018년 12월 12일
나의 수줍은 램프를 격려하려고
광대한 밤이 그 모든 별들을 켠다.
ㅡ 타고르, "반딧불"에서
강
허수경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나의
배냇기억처럼
모든 계절들 가운데 겨울은 가장 나이 많은 계절이다.
겨울은 추억 속에 연륜을 새겨 넣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과거로 우리들을 되돌려 보낸다.
눈 밑에서는 집도 나이가 많아진다.
오래 전 지난 세기들 가운데, 집은 뒤처져 살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이와 같은 느낌은, 다른 계절의 시간성을 압도하는 겨울을 묘사한,
다음의 바슐랭의 글에 잘 환기되어 있다.
"휘몰아치는 눈과 바람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집들 속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위대한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전설들이
구체적인 의미를 얻게 되어,
그것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이 당장에 실현될 것 같아지는, 그런 저녁들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 어른의 한 분이 기원 천 년에 그런 어느 저녁에
숨을 거두시면서,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Robert Lee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눈 오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이 숲의 주인이 누군지 압니다./ 그의 집이 마을에 있으니,/ 제가 여기 서서 그의 숲에 눈이 쌓이는 걸/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모를 겁니다.//
내 조랑말은 이상하다 생각합니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농가도 가까이 없는데 멈춰 서있는 까닭을/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이 저녁에.//
조랑말이 방울을 한번 흔들어 보네요/ 무슨 까닭인지 묻기나 하듯./ 그 밖에 다른 소리란/ 스치는 바람과 날리는 함박눈 소리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지만,/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습니다.
투사 投射 projection
투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생각을 외부 세계로 옮겨놓는 정신 과정. 이것은 방어적 과정으로서, 개인 자신의 흥미와 욕망들이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처럼 지각되거나 자신의 심리적 경험이 실제 현실인 것처럼 지각되는 현상을 말한다.
참을 수 없는 생각이나 느낌들은 편집증적 투사의 경우에서처럼, 그것들이 투사되기 전에 무의식적인 변형을 거친다.
투사는 만족스럽게 작동하지 않을 때, 그 모습이 서툴게 노출된다. 그것은 특히 편집증적 개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인해 투사는 종종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원시 방어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아동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후의 분석가들은 투사가 초기 유아기에 겪었던 공생 경험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좋은 느낌을 갖고, 사람을 좋게 보고,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보는 사람은 설령 그가 자신의 무드나 태도를 투사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병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산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嶺) 넘어 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不歸), 다시 불귀(不歸).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삼수갑산(三水甲山)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 나니 기험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신현정 시인의 시 두 편
바람난 모자
모자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휘파람새 같은 것으로
너구리 같은 것으로
물고기 같은 것으로
아니 사르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으로
푹 눌러쓰고 싶을 때가 있다.
모자를 쓰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모자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악어 같은 것으로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목 없는 부처 앞을 지나다
저 목 없는 부처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이라도 달랑 올려놓아드렸으면 하다가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주먹 만한 것으로 골라서는
한 백팔 개 정도 한 줄로 공손히 쌓아올려 드렸으면 하다가
하다가 다람쥐라도 올라앉지 않겠나
다람쥐, 금빛 꼬리를 치켜올리고 도토리라도 까먹지 않겠나
잠자리라도 날개를 파르르 눕혀놓지 않겠나 하다가
하다가 차라리 목 없는 거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다 하다가
그냥 가던 걸음 빨리해 지나쳐버렸다
하, 지나치고 보니 그거, 그거, 목도 목이지만 진작에 진작에
목 없는 가슴 아래 잠잠히 모으고 있는 나비 자물통 같은 손부터
홀가분하게 풀어드렸어야 했던 건데.
사랑
조태일
첫눈이 내린다.
어디고 없이 제멋대로
내리고 내리는 것 같지만
내릴 곳을 보아 가며
서둘지 않고 내린다.
첫눈이 내린다.
지상의 왼갖 성명聲明들을 잠재우며
지상의 왼갖 낙서들을 지우며
한량없이
하이얗게 내린다.
높고높은 하늘을 지나서
가파른 절벽을 지나서
풀잎들의 머리 위를 지나서
움직이는 것들 위에 내린다
숨쉬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꿈꾸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오오, 오오, 소리치지는 않고
오오, 오오, 그 입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귓바퀴 근처에 내린다.
보아라, 보아라, 소리치지는 않고
보아라, 보아라, 그 입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눈앞에
뺨 비비며
첫눈은 그렇게 그렇게
붐빈다.
내사 內射 introjection
외부에 있는 쾌락의 동기를 자아가 환상을 통해 자기 속으로 들여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 정신 과정은 주로 히스테리/신경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외부세계로부터 가능한 많은 대상을 자아 내부로 끌어 들여와 동일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엄마-아이의 관계에서 사랑과 전이라는 기초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아이가 정신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는 반면, 망상증 환자가 불쾌해진 충동을 자아 밖으로 추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투사(Projektion)와 대조된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욕동과 관련하여 보통 떠올리는 '사랑-증오'의 대립항 말고도 '사랑하기-사랑받기'의 능동-수동항이 가능한데, 이때 사랑 욕동의 목표는 바뀌지 않으면서 그 대상이 타인에서 자기로 선회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특징으로, 가학-피학증이나 관음-노출증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라캉은 이렇게 내사와 합체가 혼동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에게 투사되는 '내사된 대상들' 대신 내사되는 것은 늘 '기표'라고 역설하였다. 즉 "내사는 언제나 타자의 말에 대한 내사"라는 것이다. 이 타자의 말(법)에 상징적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이 곧 내사이며, 투사가 이미지와 관련되는 상상적인 현상이라면 내사는 기표들과 관련되는 상징적 과정이다.
화살
김기택
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뜨거운 미꾸라지처럼
머리통을 과녁판에 묻고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며 퍼져나가고 있다
가엾은 비눗갑들
이선영
비눗갑 속에 담긴 문드러진 비누의 몰골을 볼 때면
지금 그 비눗갑이 느끼고 있을 슬픔을 알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대부분의 새 비눗갑들에
처음 얹혀지는 비누는 탄탄한 비누여서
보기에 따라서는 비누가 비눗갑 안에 담긴 것이 아니라
비눗갑의 숨통을 누르고 앉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마치 몸에 잘 맞는 아내를 얻은 듯 그때 비눗갑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가?
그러나 뭇사람의 손때가 묻고 물만 닿아도 녹아나는
비눗갑이 일찍이 상상해본 적이 없는 비누의 허약한 체질은
얼마나 비눗갑을 놀라게 하고 실망에 빠지게 했을 것인가?
나날이 작아지는 비누들 나날이 풀어지는 관념의 물컹한 살집들
오, 가엾은 비눗갑들이여, 그들은 비누에 대해
얼마나 순진한 기대와 어리석은 집념을 품고 있었던가?
한 개의 비누만을 담았던 비눗갑이란 이 세상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더러, 젊거나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망가지는 비눗갑은 유감스럽지만 흙 속 깊이 버려지곤 한다
경험이 많은 비눗갑들이여, 온갖 비누치레에 닳아빠지고 몸을 더럽힌
그럼에도 오래 건재하는 비눗갑들이여, 그때쯤이면 평안할 수 있는 건지
가라앉는 발자국들
장석남
언 호수에 눈 내려 흰 광장인데
누군가 가로질러 걸어간 발자국
덜컹 내려앉는 가슴
저만치 갈수록 수심水深은 깊겠고
망설임도 깊어졌으리
새는 제 발자국 걷어 날아오르지만
저 무게로는 날아오르지 못했으리
제 발걸음 속으로 꺼져 들어갔을까?
깨우침처럼
깨우침처럼
고요히 건너편에 닿았을까?
되돌아선 발자국은 없다
왜 저 두려움 위를 걸어갔을까?
그 심정을 나는 한 두어 뼘쯤은 알기에
펄럭이며 바람 속을 더 걷는다
또다시 눈이 내리고
발자국은 곧 속절없이 눈 속에 묻혀
발자국끼리만 다정히 가라앉는다
망설임끼리만 다정히 가라앉는다
물이 되는 발자국들
돛을 단 발자국, 물결 위에 나타나리
詩
Pablo Neruda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게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는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픗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결한 지혜,
그리고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