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어제는 신호등 앞에 서기만하면 파란불이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조마조마한 테슬라가 옆 차선으로 가주길래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좋은 자리가 하나 비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문이 닫히는 엘리베이터에서 한 분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 뭐야, 뭐야, 왜 이렇게 아다리가 잘 맞아?’ 이 날 당신의 이름은 아다리. 하느님, 당신은 아다리의 신이었습니다.
그제는 중국집에 가서 우울했습니다. 짜장면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짬뽕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탕수육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세상천지에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먹고 죽을 게 없구나 입이 대빨 나왔지요. 도대체 돼지고기 알레르기는 왜 내게 찾아온 것인지 가는 식당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들어 당신이 조금 미웠습니다. 하다하다 내게 돼지고기를 빼앗아가다니! 이 못된 영감탱이! 당신의 이름을 못된 영감탱이라고 지어볼까 고민하며 누룽지탕을 시켰지요. 한 입 들어보니 입맛에 맞았습니다. 알레르기가 없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하느님, 이 날 당신의 이름은 ‘오히려 좋아’. 당신은 오히려의 신이었습니다.
지난주 주일에 윤영학 집사님이 그랬거든요. 전도사님은 기도를 하시냐고, 곰곰이 생각하다. 한다고 자신있게 말했지요. 한다고요. 하느님께 아다리, 영감탱이. 오히려. 이런 이름을 붙여가며 당신의 얼굴을 내 일상에서 찾고 있으니까요. 이 얼굴도 저 얼굴도 모두다 당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내가 압니다. 하느님, 한 가지 얼굴과 이름에 내가 너무 빠져있지 않게 하시고, 새 얼굴을 만났을 때 너무 이뻐하거나 너무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내게 머무는 동안 가능한 즐겁게 가능한 충실하게 당신과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아다리의 신, 미워도 다시 한 번, 오히려 좋은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