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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속도 / 박남희 |
이 별과의 이별 / 김원경
우주 정원 어디쯤에서 한 점
열로 피어나면서 떨고 있을 흑점,
그것이 내 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다
이런 날 나는 나에게 문병을 간다
울음의 온도를 높여 불온한 별들을 마음에 띄우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
스타(STAR)는 일간스포츠에서나 떴지
가슴 한켠 별들을 띄우는 일은
이 별의 생태에 어긋나는 일이다
궤도를 이탈한 별처럼 나는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이 별에서 자유는 놀이동산에서
한번 쓰다 버린 자유이용권처럼 일종의 은밀한 계약이었다
나를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뒷문은 닫혀있고
세계는 항상 허수아비처럼 허수(虛數)로만 서 있었다
관계가 사라지면 잠들어 있던
부유물들이 어지럽게 역류한다
물방울이 표면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터지듯 이번 생을 견디고 있던 내가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상습적으로 올라온다
눈이 멀기 전 장님이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은
얼마나 아득한 것이었을까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왔다
성지를 순례하듯
영혼이라는 안감을 걸치고 불구의 다리로
제 몸에서 나는 울음소리를 찾아 떠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이 낸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는 것이 아니라 울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980년 울산에서 출생.
경희대학 국문과 졸업.
2004년 《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정해진 이별 / 황학주
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행됐을 사랑이었습니다
진흙수렁에 화단 한 평은 올렸을 사랑이었습니다
내 몸만해도 벌써 말라
조만간 당신이 뒤져보지도 못했을 테지만
신음소리 없는 인연을 바랄 턱도 없었겠지만
사랑은, 병 깨는 소리에 놀라는
참 오래된 밥집만 남은 쓸쓸한 공원 같습니다
무변대핸데 라고 당신 말하겠지만
차라리 내게서 아주 멀리 가는 당신의 전부가
이제 첫 생에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 바다라는 구원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던 거지요
움푹한 영혼이 살았던 방바닥에
입맞춤 하나가 아직 일어나지 않지만
이제야 길을 잃어도 내가 없는 당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한』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등.
현재 아프리카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음.
식후에 이별하다 /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있는 환함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 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 유순한 광대뼈에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天性)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 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1970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컬럼비아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졸업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21세기, 전망> 동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등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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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몸 일으키기 500개 / 유홍준 윗몸 일으키기 500개를 하면 그리움이 없어지지 라켓을 사고 레슨비를 주고 저녁마다 환하게 불 박힌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을 하면 그리움이 없어지지 얼마나 많은지 몰라 이별을 하고 러닝머신을 타는 사람들 이별을 하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가능한 오래 가능한 빠르게 이별에 적응해 나가지 풋살구장에 가서 축구를 하면 그리움이 없어지지 죽기 살기로 몸을 던져 뛰면 그리움이 없어지지 하기사 팔 하나가 부러지거나 눈알 하나가 튀어나오는 게 그리움으로 쩔쩔 매는 것보다는 낫지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9년 제1회 시작 문학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 나는 웃는다』 |
민들레 압정 /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김달진문학상, 시외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등 |
그대 잘 가라 / 도종환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1954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84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등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때문에 그까짓 여자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전북 임실군 출생. 1982년 [21인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으로 <섬진강><맑은 날><연애시집><그리운 꽃편지> <사랑> 등 다수의 시집, 산문집<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등, 동시집 <콩, 너 죽었다> 등, 김수영문학상, 김소월문학상 등을 수상 |
물국수 한 그릇 / 이진명 가을날 거둬들인 우주들판의 최고로 높이 쌓아올린 노적가리 고요히, 고스란히 불타오르던 노적가리 우주賞級으로 받은 우주심장 우주 환승역이 있는 종로 3가 혼잡하면서도 슬로우비디오 같은 뒷길의 뒷길 여인숙과 돼지껍데기볶음집 물국수집이 비좁게 붙은 골목 허름한 물국수집의 틀어진 문을 밀고 들어가 3천원짜리 물국수 한 그릇을 그가 사줬죠 3천원 물국수 맛은 4천원짜리 그 이상이 되고도 남을 만치 시원하고 뜨겁고 진하고 그러면서도 뭔지 이상한 금방 배고플 것 같은 맛으로 하여튼 그가 뭘 사줘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죠 내가 계산하려 했는데 웬일인지 그가 얼른 계산하데요 3만원짜리였으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겠지요 물국수집을 나와 커피집에 들어가 탁자를 사이에 놓고 서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생략하겠어요 결론은 대기권이 연기로 자옥한 우주 환승역 입구에서 서로 알 수 없는 채 길을 갈랐다는 것 그가 한번 힐끗 뒤돌아보았던가요 내가 한손을 맥없이 올렸다 내렸던가요 자옥한 환승역 입구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붙박혔죠 3천원짜리 물국수 한 그릇의 이상한 국물맛 묵어 쩐 국물멸치의 비리고 귀귀하고 덥덥하고 쓰겁고 한 멸치똥 맛 이상하게 시원하고 뜨겁고 진하면서도 금방 배고플 것 같은 묽은 국물맛이 세워진 것이 된 텅 빈 몸속을 타고 흘렀죠 묽은 국물맛이 빈 몸속을 통과하고 있을 때 그것의 정체가 영원한 이별인 것을 우주심장이 툭 떨어지는 걸로 분명히 알았죠 그동안 거둬들인 우주들판의 최고로 높이 쌓아올린 노적가리 우주상급으로 받은 우주심장을 떨어뜨린 죄를 무슨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빈 몸을 끌고 지옥도를 발 없이 흘러 내려가 펼쳐지는 아비규환의 지옥철을 눈먼 눈으로 가늠하며 북으로 가는 지옥철로 가까스로 흘러들었죠 이 지옥철로나마 흘러들 수 없었다면 지옥에도 못 가 미아, 우주먼지로 부서져 두 번 다시 상급으로 받은 우주심장을 떨어뜨린 죄를 절대 빌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요 우주 환승역이 있는 자옥한 종로 3가 떨어진 내 우주심장이 마지막 물국수 한 그릇의 인사를 어찌 잊을까요 마른 먼지 낙엽들에 뒤엉켜 11월의 가로에서 2천50년까지는 검게 구르고 있을 겁니다 1955년 서울 출생 1990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
<이별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아름다운 이별' 외
+ 아름다운 이별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오래 빛날 수 있다.
저 높은 곳의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더욱 확실할 수 있다.
누가 이별을 눈물이라 했는가
아픔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빛날 수도 없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더욱 빛나는
이별은 인생의 보석이다.
헤어짐을 서러워하지 말라
이별은 초라하고 가난한 인생에
소중하고 눈부신 보석을 붙이는 일
두고두고 빛날 수 있는
사랑의 명패를 다는 일
(윤수천·시인, 1942-)
+ 사랑법 2
누군가 말했지
헤어져 있을 때 더 많은 축복이 있다고
함께 있을 때 내 님 오직 하나더니
헤어진 지금 온 세상 님으로 가득
(작자 미상)
+ 이별
마음 비우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리움 깊어갈수록
당신 괴롭혔던 날들의 추억
사금파리로 가슴 긁어댑니다
온전히, 사랑의 샘물
길어오지 못해온 내가
이웃의 눈물
함부로 닦아준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가슴 무덤에 생뗏장 입히시고
가신 당신은
어느 곳에 환한 꽃으로 피어
누구의 눈길 묶어두시나요
마음 비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습니다
아픈 교훈만
내 가슴 무덤풀로 자랐습니다
(이재무·시인, 1958-)
+ 이별(離別)에게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리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사라져
오오,
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어둠 속에
어둠 속에
寶石들의 光彩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김현승·시인, 1913-1975)
+ 마음에게
신록이여,
죽은 마음에 움트는 강철의 새 잎이여
나는 이제 어떤 이별도 껴안을 수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랑들이, 저렇게 많은 아픔들이
자기와의 투쟁을 통과하여 이제 막 연록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사람들이라니
(이시영·시인, 1949-)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시인, 1933-2005)
+ 그대는 들으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감는 소리
그 깊은 속눈썹의 떨림을
그대는 들으소서
어둠 속에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는 소리
그대 들으소서
그대를 생각할 때면
혼자 흔들리던 그네처럼
내 마음, 허공 속에
흔들립니다
나의 태양, 나의 태양이여
이제는 돌아서야만 할 시간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은
그대 잠시 돌아보던
노을 속에 적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점점 밝아지던 눈빛
그대만의 별을 찾아 헤매던
내 눈빛의 서러움
그대는 들으소서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그대는 들으소서... 들으소서...
(최옥·시인)
+ 나도 그랬듯이
머지 않아 그 날이 오려니
먼저 한마디 하는 말이
세상만사 그저 가는 바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다오
내가 그랬듯이
실로 머지 않아 너와 내가 그렇게
작별을 할 것이려니
너도 나도 그저 한세상 바람에 불려가는
뜬구름이려니, 그렇게 생각을 해다오
내가 그랬듯이
순간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많은 아름답고 슬펐던 말들을 어찌 잊으리
그 많은 뜨겁고도 쓸쓸하던 가슴들을 어찌 잊으리
아, 그 많은 행복하면서도 외로웠던 날들을 어찌 잊으리
허나,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행복하고도 쓸쓸하던 이 세상을
내가 그렇게 했듯이
(조병화·시인, 1921-2003)
+ 꽃샘추위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정연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