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내가 한국과학 기술원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 이야기 이다
어느날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갖고 찾아와서는
조병화 교수님한테
"저 결혼합니다", "그사람 참 된사람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조병화 교수께서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압니다" 라고 하셨었다.
그 친구는 대학교때 부터 남편감을 사람 됨됨이를 먼저 봐야한다고 늘 이야기 하곤 했는데
드디어 원하던 사람을 만나 우리중에 제일 늦게 결혼을 했는데
조박사님은 그사람 됨됨이가 좋은지 나쁜지는 오래 같이 살아봐야 안다고...말씀하신것 같다.
나는 지금 생각하면 멋모르고
남편이 서울대 졸업했다는것 한가지만 봤던것 같다.
게다가 키 크고 ( 내가 키가 작다보니 키가 큰게 좋아 보였었다)
안경도 쓰고 (내가 그때는 시력이 1.5, 2.0완벽했어서, 안경쓴 사람이 멋져 보였었다)
또 남편은 담배도 많이 피우고(하루 3갑?)
어느날 술 많이 먹고 싸움도 했다던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것 조차도 근사해 보였었다.
그런데 친구가 어느날 "너 저런사람과 결혼하면 불행해 진다"라고 얘기를 해 줬었는데
그때는 그런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때 친구들이 모이면
"우리중에 효*이가 제일 결혼을 잘 못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친정 엄마도
"너 저렇게 까다로운 사람 비위를 어떻게 맞추며 살수가 있겠냐?"
하면서 탐탁해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식구가 먼저 미국으로 와서 살고
엄마가 몇년후에 우리집에 오셔 남편하는걸 보시더니
"너 결혼 참 잘했다. 너한테 꼭 맞는 신랑이야"
하셨었다.
그런데 요즈음 생각해 보니
내가 나한테 꼭 맞는 남편과 결혼한게 아니고
결혼한후에 남편이 나한테 맞추에 주려고 애를 많이 쓴것 같다.
남편은 세심하게 내가 좋아하는것을 챙겨준다.
하루는 내가 "일본어를 배워볼까" 했더니
당장 나를 위해 일본어 배우는 책, 일본어 배우는 비데오등을 주문했었다.
또 내가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니
집안에 TV들와 컴퓨터 모니터를 HDMI로 연결을 하고 Fire TV stick을 설치해서
한군데서 TV를 틀면 Family room, 식탁, 부엌, 책상위, 침실.. 어느곳에서나
일하면서도 뉴스, 드라마, 영화 등을 보게 해 줬다.
그래서 어제는 "왕과 나"라는 옛날 영화를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남편은 외유내강 [外柔內剛] 이 아닌 외강내유 [外剛內柔] 다.
결혼전에는 남편이 아주 센 사람인줄 알았는데
살면서 보니까 속은 아주 여린사람이다.
평생 나한테 양보하면서 살아준...
또 누구와 이해관계로 다툴 일이 있으면 얼른 양보하고 피한다.
남편은 또 평생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면 집에 돌아와 있는 집돌이였다
주위사람들과 술좌석에 어울리는것 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취미생활하고 집안일 도와주는걸 좋아한다
남편은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몇가지는
1) 나는 결혼하고 집에서 살림살이나 하고 살지 생각했었는데
유학시절에 남편이 자기 다니는 대학원에서 컴퓨터 코스라도 수강을 하면 어떠냐 하고 제안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내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공부를 잘 못따라가 남편이 바쁜시간을 쪼개,
같이 내 강의를 들으면서 집에서 따로 내가 이해못한 부분을 가르쳐 주곤 했었다
그때 남편은 사람 살면서 어떤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행여 자기가 일찍 죽더라도 내가 경제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2) 남편 유학시절 한국에서 유학온 K씨가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니
남편은 K씨를 매일 우리집에 오게해서 저녁도 주고
이해못한 부분을 설명해 주곤 했었다
얼마후 K씨는 우리집에 와서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그 과목 A를 맞았는데
너무 감사해서 교회에 감사헌금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남편은 나중에 나한테 "그사람은 고마우면 나한테 빠나나 하나라도 사와야지
웬 교회에 돈을 내나?" 하고 웃었다
3) 1980년대 중반 이야기인데...
우리교회 교인가정의 아들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은 했는데
우울증에 걸려서 휴학하고 집에 있었다
그학생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학위하고
큰 회사에 다녔었는데 아들을 부끄러워 해서 다른사람들이 알까봐 숨기기만 하는것 같았고
그 교회에 그집과 친한 사람들... 대부분 미국에서 학위하고 웨스팅 하우스등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이었는데...
뒤에서 쑤군 쑤군 이야기만 했지, 아버지도... 친구들도 그애를 구제하려고 노력하는것 같지 않았다
이 소문을 들은 남편은
자기회사에 인턴직을 마련해 그 학생을 다니게 하면서 많이 용기를 얻도록 북돋아 주었다
학생은 일년간 남편 회사에서 일하면서 돈도벌고 자신감도 얻어서
다시 학교로 돌아 가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4) 남편은 중국에서 칭와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온
시바우씨를 회사에 고용했는데 영주권이 없어서 회사에서 신청해 줬다고 한다.
미국법상 미국내에서 영주권을 신청하면 영주권나올때 까지는 외국에 나가면 안된다고 하는데
이 중국총각이 중국에 가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래서 영주권 신청도 무산되고, 미국에 다시 들어올 수 없게 됐었다
회사에서는 이 중국청년을 포기하고 다른사람을 뽑으라고 했는데
남편이 뉴욕주 상원의원 사무실에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주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중국주재 미국 대사관에
"이 청년이 꼭 미국사회에 필요한 인재이니 꼭 미국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두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한다.
상원의원 도움으로 시바우씨와 부인까지 영주권을 받았는데
비용 일체를 회사에서 내 주도록 남편이 결제했다고 한다
이정도 해 줬으면 시바우씨가 남편한테 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삼아 줘도 모자랄 판에
남편은 시바우씨네 장인 장모가 중국에서 다닐러 왔다고 하니까
시바우 식구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우리남편은 이렇게 남한테 바라는게 없으니 언제나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남편은 한국에 가서도 S씨 N씨등 만나도 굳이 자기가 저녁값을 낸다
그 사람들은 삼성 부사장, 은행 상무등으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인데도
남편은 아직도 유학시절 밥사주던 후배들로 생각하고 있다
또 나이가 꽤든 중국남자 다샹증씨가 있었는데
영어도 서툴고 꽤재재 해서 그랬는지 몇년동안 승진도 안시키고 봉급도 안올려주고 했다는데
남편이 회사에 건의해서 씨니어 엔지니어로 승급을 시키고 봉급도 두배로 올려주었다고 한다
남편은 또 5년전부터는 자기는 은퇴할 사람이라고 뒷전에서 지도만 하면서
부하직원들을 대외 모임등에 출장을 보내 세계 전문가들과 인맥을 형성하게 도와주고
같이 한 연구의 논문 발표도 꼭 시바우나 다른 부하직원들이 하게끔 해 줬다
남편은 은퇴하기 전에 시바우씨를 매니저로 승진시켜주었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영어가 서툴러 승진 못시키겠다고 하는걸
남편이 윗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했다고 한다
첫댓글 고박사님 같은 남편,최고의 배우자이지요.
일평생 성실함을 무기로 공부 열심히 하시어 성공하시고
양가 어머님들을 최선을 다해 모셔주시니까요^^
고박사님께서 아내에게 아들들에게 또 어머님과 장모님, 그리고 회사 직원들과 후배들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셨고, 성장시켜 주셨네요.
시바우씨의 경우 한국사람도 아니고 중국인인데도 엄청난 지원을 해 주었네요.
영주권 받기전에 국외로 갈수 없는데, 중국까지 가서는 결혼을 했는데,
회사를 설득해 그의 부인까지 중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올수 있도록 허가를 얻고,
또 상원의원실에 도움을 청해 다시 미국으로 오고, 회사에도 다닐수 있게 해 주었고, 은퇴하시면서 메니저로 승진까지 시켜주었다니 정말 은혜를 많이 입었네요. 시바우씨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고박사님께 도움을 받고 교회 헌금을 하신 분
은혜는 받은 이로부터 갚고, 나중에 주님에게 감사 드리면 되는데, 교회에 감사를 드렸네요.
고 박사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언젠가는 복 받으실겁니다.